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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세 종교 이야기> 정리

by iamcool 202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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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종교 이야기 >

- 202010203& 정리 완료

 

< 1, 세 종교의 기원, 아브라함 시대 >

* 1대 아담-> 2대 가인, 아벨, --> 10대 노아-> 11대 셈, , 야벳--> 20대 아브라함

-> 21대 이스마엘, 이삭-> 22대 야곱-> 12지파

 

1. 수메르 문명의 특징

* 기원전 9500년경 시리아 부근에서 인류 최초의 농업이 시작

* 기원전 5200-4500년경 에리두를 필두로 도시국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기원전 4000년경

- 우르에서 다리 건설에 필수적인 아치를 벽돌로 만들었다(-> 이후 돔으로 발전)

- 수메르에서 청동 야금술을 사용해 도구와 무기를 만들었다.

* 기원전 3500년경

- 우루크에서 최초의 문자(수메르 문자) 사용

- 수메르에서 바퀴 달린 탈것을 사용

*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인들은 동전을 제조- 세켈

* 기원전 2600년경 수메르에서 원판바퀴를 이용해 전차(사륜전차)를 만들어 전투에 사용

* 기원전 2400년경 바퀴살이 있는 바퀴 등장

-> 기원전 2350년경 사륜전차가 이륜전차로 진화

* 기원전 2100년경 우루남무가 인류 최초의 법 반포

 

2.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 기원전 5000년경 최초의 도시국가 에리두가 성립

* 기원전 3200년경 인류 최초로 수메르 문자가 만들어졌다

* 수메르 문명이 가장 융성했던 때는 기원전 제3천년기로, 역사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이 1000년의 기간을 크게 초기 왕조 시대(2900-2350), 아카드 왕조 시대(2350-2150), 우르 제3왕조 시대(250-2000)의 세 시대로 구분한다

- 아브라함은 우르 3왕조 시대의 사람

* 기원전 2100년경 우르의 지구라트 건설

 

3. 수메르 문명 당시의 문란했던 사회상

1) 점토판에 쓰인 수메르 신화

* 아브라함 당시 수메르 사회는 다신교 사회

- 수메르 신의 숫자는 36백명

- 대홍수 설화와 낙원 설화 등이 히브리 <성경>에 직간접 영향을 미쳤다

 

2) 성적 행위가 종교의식의 하나

* 아브라함 시대에 가나안 민족은 농경을 주재하는 바알 신과 아세라 여신을 믿었다

- 신전 제례에 참가하는 사람은 여사제와 성행위를 했다

* 수메르 우루크에서 이난나 여신이 등장

-> 이난나 여신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다

- 우르(난나)/ 가나안(아스다롯)/ 아시리아(밀랏타)/ 바빌로니아(이슈타르)/ 그리스(아프로디테)/ 로마(비너스)

 

3) 신전 매춘이 만연하다

 

4) 새로운 세상이 준비되다

- 우상숭배와 음란이 심각했다.

 

 

 

 

< 2, 유대교는 어떻게 탄생되었나? >

 

* 아브라함은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인류 최초로 유일신을 믿은 첫 번째 인물이다.

 

* 그 뒤 유대교가 유대인의 민족 종교로 자리 잡은 것은 이집트를 탈출한 시기로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과 율법을 받으면서부터다.

 

* 노아로 부터 10대 아브라함(20)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 & 이삭

: 기원전 2004년 엘람의 침입으로 우르의 멸망

-> 기원전 2000년경 아브라함 가족은 하란으로 이주

->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선택을 받음

->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유목 생활

->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음(-> 이스마엘의 열두 아들이 아랍 12부족의 조상이 됨)

-> 99세에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민족의 조상으로 삼는 계약을 맺음(계약의 징표는 할례)

-> 100세에 이삭을 낳음(-> 후손은 유대인이 됨)

-> 아브라함, 이삭 대신에 속죄양을 바침.

-> 최초의 유대인 땅 헤브론을 사들이고 유목민 생활을 마감한 후 사망.

 

1. 신과 맺은 영원한 계약

1) 하느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다

 

2) 노아의 큰아들에게서 셈족이 나오다- 노아는 아담의 10대손(9대손?)

(1) 하느님은 타락한 세상을 물로 씻어내고 노아를 선택해 그 가족을 구해냈다.

 

(2) 노아는 세 아들 , , 야벳이 각각 셈족, 함족, 아리아인의 조상이 되었다.

* 첫째 아들 셈

-> 중동아시아계- 히브리, 시리아, 아시리아, 페르시아, 아라비아, 몽골 족

* 둘째 아들 함

-> 아프리카와 가나안- 이집트, 에티오피아, 리비아 등 아프리카계과 가나안 사람들

* 셋째 아들 야벳

-> 유럽- 코카서스인과 아리아인 등

 

3) 아브라함 당시의 주변 정세

* 기원전 2350-2150년 아카드 왕국 시대

* 기원전 2150년경 아카드 왕국, 구티족에게 멸망

* 기원전 2100년경 우투헤갈의 신하 우르남무가 왕위 찬탈하고 우르 제3왕조 건설

* 기원전 2004년 우르 제3왕조, 엘람에 멸망

* 기원전 2000년경 아브라함,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이주

 

4) 아브라함을 선택하다

 

5) 히브리, ‘강 건너에서 온 사람들

* 아브라함 부족, 가나안 지역에 정착

* 아브라함 86세에 첫 아들 이스마엘을 얻다

 

6) 계약의 민족

*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에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민족의 조상으로 삼는 계약을 맺는다

 

7) 계약의 징표, 할례

 

8)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심판받고, 우르는 땅속에 매몰되다

 

9) 이삭이 태어나고 이스마엘이 쫓겨나다

*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이삭이 태어남

-> 사라는 하녀 하갈과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는다

-> 이스마엘의 12 아들이 12 부족의 조상이 된다

* 이스마엘은 아랍인의 조상/ 이삭은 유대인의 조상이 된다

 

10) 아브라함의 순명, 자식을 바쳐라

 

11) <성경>에서 제사의 의미

* 흠 없는 속죄양을 인간 대신 받아 인간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을 연 것이 제사의 유래였다.

* 그 뒤 아브라함 신앙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 하느님 이외에 어떤 다른 신도 섬기지 못한다

- 하느님과의 계약의 징표로 할례의식을 행한다

-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에 인간을 희생 제물로 써서는 안된다

 

12) 하느님의 보편성이 담긴 약속

* 이삭 번제물 사건으로 하느님은 보편성이 담긴 약속을 반복해서 제시했다

- ‘너의 후손의 덕을 입어 지상의 백성은 모두 축복을 받으리라

 

13) 최초의 유대인의 땅 헤브론, 강인한 역사를 웅변하다

* 아브라함,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헤브론을 사라를 안장시키기 위해 사들임

-> 아브라함, 유목민 생활을 마감하고 헤브론에 묻힘

 

14) ‘이스라엘의 유래

* 야곱= 이스라엘(하느님과 씨름하다는 의미)

- Jacob(제이콥), Jack(), Jake(재키)

 

15)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 대신이 되다

*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은 형들에게 밉보여 이집트로 팔려간다

-> 이집트 왕(힉소스 왕가)의 꿈을 해몽하고 이집트 부왕이 되었다

->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형제들을 이집트로 초대

-> 이삭과 형제들이 이집트에 정착

-> 추후 야곱의 아들 10명과 요셉의 아들 2명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된다

 

16) 파라오의 유대인 말살정책

* 기원전 1580년경 테베의 왕 아모스는 힉소스 족을 물리치고 제18왕조를 개창

-> 남아있던 힉소스족과 그들이 불러들인 다른 민족들을 노예로 삼았다

- 이당시 이집트에 거주하는 유대인의 인구는 2백만명 정도

 

2. 출애굽기

1) 민족 전체가 노예가 되다

* 유대민족은 430년간 2백만명의 큰 민족으로 번성함.

-> 람세스 2세가 유대인을 건설노예와 수공업 노예로 혹사시킴

 

2) 모세의 영도

* 유대인 노예의 아들 모세를 이집트 공주가 발견해 키움

-> 동족을 못살게 구는 이집트 병사를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주

->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신을 만나고 백성을 구하라는 명을 받음

-> 열가지 재앙

 

3) 재앙이 넘어가다

* 마지막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의 죽음이었다

* 유대인은 대문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서 재앙을 피했다

- 이날을 유월절(과월절)이라 부름

- 이날 밤 파라오는 모세에게 이집트를 떠나도록 한다

- 이렇듯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날이다

 

4) 엑소더스

* 기원전 1220년경 엑소더스

- 장정만 60만명

 

5) 하느님을 표현하는 거룩한 생활

* <토라>는 유대인들에게 어떤 장소, 어느 때든지 거룩하라고 가르친다.

 

6) 40년 동안 만나를 먹다

* 유대인은 40년간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며 유목 생활을 한다.

 

7) 꾸중 들은 모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 모세가 하느님의 명대로 바위를 향해 말하지 않고 화를 내며 지팡이로 쳐서 물이 나오게 한 행위는 하느님의 영광을 자신이 취한 큰 죄였다.

 

8)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지내는 유월절 축제

 

9) 누룩은 교만의 위험성을 암시

 

10) 유대인에게 ‘40’의 의미

- 유대교에서 40년간의 광야생활은 아주 중요한 집단적 기억이다

 

11) 십계명

*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40일 만에 십계명을 받고 내려옴

-> 그 사이 유대인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함

-> 모세가 십계명으로 금송아지를 부심

-> 다시 40일만에 십계명을 받아 내려옴

*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해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두 번째 십계명 판을 갖고 내려온 날이 유대인의 속죄일 욤 키푸르.

 

12) 십계명의 요지

* 하느님 공경+ 인간사랑

 

13) 율법, 성문 율법과 구전 율법

* 유대인에게 율법은 두 종류가 있다

- 하나는 글로 쓰인 성문 율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말로 전해 내려온 구전 율법이다.

 

cf) 토라= 모세 오경

일반적으로 '토라'는 율법서를 가리킨다. 구약성경은 율법서인 토라와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토라이다. 토라는 곧 모세 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권의 책을 가리키나 좀더 넓은 의미에서 성경 말씀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경 전체란 오로지 구약성경만을 가리킨다. 따라서 히브리어의 토라는 모세 오경 혹은 구약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14) 유대교의 본질, 율법

 

15) 율법 정신, 시대를 앞서다

*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요르단 강 동편 모압 광야에서 죽었다

* 모세는 죽기 전 유대민족의 새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웠다.

 

16) 예정되어 있었던 고난의 역사

 

 

 

 

< 3, 유대교는 어떻게 종교로 자리 잡았나? >

* 유대교는 크게 세 번에 걸쳐 민족 종교로 자리 잡을 수 있던 계기를 마련했다. 아브라함과 모세, 바빌론 유수기의 선지자들에 의해서였다.

 

1. 예루살렘, 성지가 되다

1) 가나안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시작

* 기원전 13세기 여호수아의 지도로 장정 숫자만 60만명인 유대인들이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2)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그리스보다 400년 빨라

*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독특한 정치체제인 지파 민주주의를 탄생시킨다.

그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12 지파 족장이 영토를 분할 통치하면서 종교의식만 같이 했다.

* 지파연맹 공동체는 모든 지파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특징을 지녔다.

* 지파연맹은 왕이 아닌 일종의 연맹 대표에 해당하는 판관을 민의로 선출했다.

 

3) 팔레스타인과의 악연

* 필리스티아 사람들을 성경에선 블레셋 사람들이라 불렀다.

 

4) 전쟁이 잦아지자 세계 최초 입헌군주제 도입

* 기원전 1100년경 이스라엘인들은 함 족의 블레셋 사람(필리스틴 사람)에 대항할 효율적인 전쟁 지휘권을 확립하기 위해 왕정체제를 수립했다.(기원전 1030년 사울을 왕으로 추대함)

 

5)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다

* 기원전 1010년 다윗왕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수도로 만듬(헤브론-> 예루살렘)

-> 다윗왕은 성전을 준비했고, 하느님의 법궤(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함.

-> 솔로몬왕 때 성전 완공됨.

 

cf) 언약궤

- 십계명 석판을 보관했던 도금형 나무상자

 

6) 다윗 왕 시대의 영토, 현재 이스라엘의 다섯 배

* 다윗의 업적 세 가지

- 예루살렘을 수도로 만듬

- 성전을 준비

- 하느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함으로써 예루살렘을 상징적이고 이상적인 성지로 만듬

 

7) 다윗, 호구조사로 벌 받다

* 다윗, 호구조사 했다가 벌 받아 7만명의 백성이 역병으로 죽음.

 

8) 예루살렘 성전과 언약궤

* 성전은 솔로몬왕 즉위 11년에 완공되었다.

* 기원전 586년 유다 왕국이 바빌로니아에 망할 당시 언약궤가 없어졌다.

 

2. 북이스라엘 왕국, 우상숭배로 멸망하다

1) 왕국이 둘로 갈라지다

* 솔로몬 왕은 말년에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고 결혼동맹으로 맞아들인 후궁들의 우상숭배를 묵인함으로써 하느님께 큰 죄를 지었다. 하느님은 솔로몬 사후에 나라를 둘로 쪼개겠다고 말했다.

* 기원전 930년경, 솔로몬 사후 왕국이 둘로 갈라지다.(이스라엘 왕국, 유다 왕국)

-> 북 이스라엘 왕국, 바알 신을 숭배함.

 

2) 전쟁이 200년간 계속되다

* 두 왕국은 200년간 전쟁을 함.

 

3) 선지자 이사야, 구세주를 예언하다

* 기원전 8세기의 이사야는 메시아의 새 시대가 올 것을 예언했다.

 

4)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 천대받는 혼혈, 사마리아인

*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의해 북 이스라엘 왕국 멸망(10 지파는 사라짐)

-> 이스라엘과 아시리아의 혼혈인 사마리아인이 등장

 

3. 1차 이산, 유대인 방랑시대의 시작

1) 예레미야의 예언

*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언

* 신이 옛날 모세 시대에 맺은 계약을 새 계약으로 대체할 날이 올 것이고 예언

 

2) 1, 2, 3차 바빌론 유배

* 기원전 601년 유다 왕국, 바빌로니아에 속국이 됨.

-> 기원전 600년 유대인의 반란

-> 기원전 597년 예루살렘 함락 & 1차 바빌론 유수

-> 기원전 5872차 침공 & 기원전 5862차 바빌론 유수

-> 기원전 582년 유다 왕국 멸망 & 3차 바빌론 유수

* 1차 이산부터 1949년 이스라엘 건국까지 약 25백년간을 유대인 방랑시대라 부른다.

 

4. 유대교의 변화

1) 성전 중심에서 율법 중심으로

*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인해 성전 중심에서 율법 중심으로 전환

 

2) 배움의 중요성이 강조되다

* 공동체 시나고그가 탄생

 

3) 유다이즘의 발생

* 율법학자들을 중심으로 할례와 율법을 더욱 잘 준수하고,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유다이즘이 발생했다.

* 바빌론 유수 시기에 오늘날 유대교의 종교적 틀이 대부분 형성된다.

 

4) 시나고그, 유대인을 강하게 만들다

* 시나고그에는 성직자가 따로 없다.

* 랍비는 성직자가 아닌 학자다.

 

5) 셰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어라

 

5. 유대인의 귀환

1) 에스겔의 환상과 귀환

* 에스겔, 환상을 보고 이스라엘 부활을 예고

 

2) 유대인들 고레스 칙령으로 귀환하다

* 기원전 538년 고레스 칙령(유대인의 귀향을 허용)

-> 기원전 5371차 귀환(4만명)

-> 기원전 5202차 귀환 & 기원전 515년 성전 재건.

 

cf) 바빌론 유수기

- 기원전 586-538년 사이의 50여년간

 

3) 유대교와 조로아스터교

* 조로아스터교

-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를 믿음

- 회개, 메시아의 재림, 심판, 천당, 지옥, 부활과 같은 교리가 있다

* 유대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

- 메시아 사상, 여호와와 사탄의 대립

6. 유대교를 바로 세우다

1) 유대교의 아버지, 에스라

* 기원전 4443차 귀환

- 에스라의 영도 하에

* 에스라는 토라를 완결하고 이스라엘을 율법 중심의 공동체로 만들었다

-> 이방인과의 혼인 금지, 토라의 편집 완성, 모세 율법의 준수

 

* 기원전 4284차 귀환

- 느헤미야의 영도하에

*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고 서민의 부채를 탕감하였다

 

2) 안식일 준수

* 에스라는 모세 율법 준수를 위해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을 지키도록 했다.

* 안식년- 유대 사람이 7년마다 1년씩 쉬는 해

* 희년-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공포되었던 해방의 해. 노예에게 자유를 주고, 가난 때문에 조상의 소유를 팔아야 했던 자들에게 그것을 돌려주었고, 땅을 쉬게 했다

 

3) 예루살렘과 바빌론에 민족의 기틀을 마련하다

* 15백년간 바빌론은 유대인 커뮤니티의 중심지가 되었다

*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히브리어와 바빌론의 언어인 아람어를 같이 사용하게 되었다.

 

4) <토라>의 완성

* 에스라에 의해 토라가 완결되어 그뒤 수정 없이 그대로 전해진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보고 있다.

* 성경의 주석인 <미드라시>가 생겨났다

-> 미드라시는 탈무드의 기초가 된다

 

7. 유대교 개혁과 복지제도

1) 느헤미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서민의 부채를 탕감하였다.

* 기원전 444- 느헤미아, 유다 지방 총독으로 부임 & 예루살렘 성벽 재건

* 느헤미아- 안식년에 부채탕감 시행, 이후 동족끼리 이자 못 받게 하였다

 

2) 복지제도

* 유대인 복지공동체의 구심점, 쿠파- 구호기금을 모금

* 능력에 따라 모으고, 필요에 따라 배분하다- 일종의 공산주의 분배 시스템

* 유대인에게 자선은 의무

 

8. 2차 이산

1) 알렉산더, 유다 왕국을 점령하다

* 기원전 330년 페르시아 멸망 후 유대는 그리스(알렉산더 제국)의 속국이 된다.

-> 유대인 알렉산드리아로 대거 이주/ 그외 지중해 연안,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주변으로 이주

 

2) 유대인, 헬레니즘 문화에 빠지다

* 기원전 3세기경에 이르러서는 헬레니즘 제국 내의 유대인들은 우수한 헬레니즘 문화에 푹 빠져 벌써 헬라인이 다 되어 있었다.

* 특히 젊은이들은 히브리어를 거의 잊어 보리고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3)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최고 업적, 70인 역 <성경>

* 알렉산드리아 유대 현인 72명 토라를 그리스어로 번역

-> 기원전 300년경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최고 업적, 70인역 <성경> 탄생

 

4) 시련의 시작, 실패한 반란이 화를 부르다

* 기원전 200년 셀레우코스 왕조가 지배하던 시리아 왕국이 유다를 정복

-> 기원전 168년 예루살렘 유대인의 반란-> 시리아 왕국의 안티오코스가 진압

-> 시리아 왕국의 안티오코스 4, 유대교 말살정책 시행(유대교 종교의식 금지, 제우스 숭배 강요)

 

5) 역사상 첫 종교전쟁, 마카비 반란

* 기원전 166년 유대 마카비 반란

-> 기원전 164년 반란군 예루살렘 회복하고, 기원전 142년 하스모니안 왕조 설립

-> 100년간 하스모니안 왕조가 존속됨

 

6) 하시딤이 양분되다

* 기원전 152년 하스모니안 왕조의 요나단이 정권과 제사장직을 독식(대제사장직은 대대로 사두개파의 직분이었다)

-> 경건자 그룹 하시딤이 요나단을 지지하는 바리새파(구전 율법 존중)와 그를 반대하는 에세네파로 분리됨

 

cf) 하시딤

경건한 사람들이란 뜻. B.C. 2세기경에 엄격한 율법주의적 생활을 추구했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헬레니즘화에 대항하여 세속을 멀리하고 경건한 율법주의적 생활을 주장하며, 메시야 대망 사상을 가졌다. 처음 마카비 반란에 협력했으나 종교의 자유만을 고집하며 결별하였다. 후기 바리새파와 엣세네파는 하시딤의 후예로 알려지고 있다.

 

7) 알렉산드라 여왕, 최초의 의무교육 실시

* 하스모니안 왕조 알렉산드라 여왕, 전국에 학교를 짓고 노소 구분없이 남자들 의무교육을 실시

 

8) 유다 왕국, 로마의 속주로

* 기원전 64년 로마, 시리아 왕국 멸망시킴

* 기원전 63년 유대는 로마의 유다이아(Judaea) 주로 편입됨.

 

cf) 유대인 역사에 있어 로마 시대

-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이스라엘을 접수한 때부터 7세기 무슬림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할 때까지 약 7백년간

 

9) 유대인 종파들

(1) 친로마파

* 헤롯당- 헤롯 왕가의 지지자들

* 사두개파- 구전 율법을 배척하고 오직 <모세오경>만을 경전으로 받들어 대사제직을 맡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

 

(2) 반로마파

* 바리새파- 성경과 구전 율법 모두 신봉, 율법학자 다수, 반로마적이었지만 무력사용에는 반대

* 열심당- 유대인 독립을 무력으로 호소

 

(3) 금욕

* 에세네파- 사해 쿰란에서 금욕적 공동체 생활을 한다

 

10) 당시 유대인들의 상황

* 로마제국 곳곳에 유대인들은 상류계층에 진입했다- 로마제국 인구의 10%를 차지

* 반면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의 삶은 힘든 편이었다.

* 당시 여자, 어린아이, 노예는 율법과는 거리가 있는 자들로 여겨졌다.

 

11)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갈등 폭발

* 기원전 37년부터 팔레스타인은 자치 통치를 했다- 잔인한 폭군 헤롯이 통치

* 헤롯이 죽고 로마제국의 직접 통치로 바뀜- 서기 6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로마 속주로

*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과 그리스인의 갈등이 생김

-> 칼리굴라 황제를 핑계 삼아 그리스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반유대 폭동을 일으켰다

 

12) 2차 이산의 시작, 대규모 반란 & 1차 유대-로마 전쟁

* 66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남(1차 유대 로마 전쟁 발발, 66~73)

- 반란은 로마 군과 유대인 간의 전쟁이자 또 그리스인과 유대인 사이의 전쟁이었다. 동시에 유대인끼리의 내전이기도 했다.

-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보복 학살이 자행됐다.

* 68년 베스파시아누스, 예리코 탈환

* 69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로 추대

* 70년 티투스, 예루살렘 함락- 통곡의 벽과 티투스 개선문

-> 이 전쟁으로 바리새파를 제외한 다른 유대교 종파가 모두 전멸했다.

- 1차 독립전쟁을 주도한 열심당과 자객당, 상급 제사장 대지주 귀족 중심의 사두개파, 쿰란 수도원 중심의 에세네파가 모두 소멸되고 오직 바리새파만 살아남았다.

 

13) 요하난 벤 자카이의 노력으로 유대교가 살아남다

*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 베스파시아누스의 도움으로 예루살렘 근처 야브네에 유대학교 예시바를 세움

-> 예시바가 유대교와 전통을 이어가다

* 요하난 벤 자카이, 바리새파를 이끌고 텔아비브 남동쪽 야브네에 율법학교를 개설

-> 랍비를 양성

 

14) 마사다 전투

* 마지막으로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열심당원들은 절벽 위 요새 마사다에서 대항하였다.

-> 73년 마사다 항전 끝남.

->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고 예루살렘 거주를 금지 시킴

- 동로마 시대에는 일 년에 딱 하루,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한 아브에만 출입을 허용했다.

 

15) 로마제국의 종교정책

* 로마제국의 종교정책 두 가지

- 종교적 혼합정책

- 황제숭배 정책

 

16) 도미티아누스, 황제숭배 강요

* 11대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살아생전 황제숭배를 강요한 최초의 황제였다.

* 95년 전후로 박해가 극심해진다

-> 93-96년경 사도 요한, <요한 계시록> 완성

 

17) 바르 코크바 반란이 진압되고 유대인의 나라가 사라짐

* 1322차 유대 로마 전쟁 발발(바르 코크바 반란, 132~135)

-> 135년 로마에 의해 진압됨

* 135년 반란 진압되고 유대인의 나라가 완전히 사라짐

- 유대인들은 주권, 영토, 국민모두를 잃는다

- 국민의 2/3가 죽었다

- 2차 이산이 시작된다(북부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북아프리카로 이주)

 

18)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 하드리아누스의 세 가지 금지령

- 안식일 준수금지

- 토라 연구금지

- 할례금지

 

19) 디아스포라

* 두번의 디아스포라

- 1차 이산: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

- 2차 이산: 135년 로마제국에 의한 디아스포라

* 디아스포라 수칙과 커뮤니티 조직에 대한 규정을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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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의 경전, <모세오경>

1. 구약성경: 기원전 1200년경에 시작하여 8백년 이상에 걸쳐 기록되었음

 

2. 유대교 성경 <타나크= 히브리 성경>= 율법서(Torah)+ 예언서(Neviim)+ 성문서(Ketubim)로 총 24

- 유대교는 히브리 원문이 남아 있지 않으면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의 <구약성경> 보다 권수가 적다.

- 토라는 유대인의 경전/ 예언서와 성문서는 보조 경전으로 본다

 

cf) 유대교는 <구약>만을 경전으로 인정/ 기독교는 <구약>과 예수 이후의 복음서인 <신약>을 함께 <성경>으로 믿는다/ 이슬람교는 여기에 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가 쓴 <코란>이 보태진다.

 

3. 히브리 성경(타나크)의 도입부 다섯 권이 <모세오경>이다.

- 모세오경= 토라(율법서)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구전 율법에 해석을 덧붙인 <탈무드>

1. 기원전 6세기 에스라에 의해 구전 율법을 글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2. 기원전 210년경 유다 하 나지는 구전 율법을 모아 <미쉬나>를 완성.

 

3. 3백년여 년간 많은 랍비들이 <미쉬나>에 대한 보충설명과 해석을 더해 <게마라>를 만듬.

 

4. <미쉬나>와 그 주해 <게마라>를 한데 모은 것이 <탈무드>이다.

- 탈무드는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 약 1천년 동안의 현인들의 말과 글을 모은 지혜서다.

- 탈무드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4세기 말경 팔레스타인에서 나온 것과 6세기 초 내용이 보완되어 바빌로니아에서 나온 두 종류가 있다.

- 요즘 유대인이 보는 탈무드는 대부분 바빌로니아 탈무드다. 63.

 

** 현대 유대교의 세 흐름

- 전 세계 1500만명 유대인 중 660만명이 미국에 살고 있다

 

1. 미국 유대교의 세 분파

1) 정통파 유대교: 미국 유대인의 10%

- 율법과 전통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

 

2) 개혁파 유대교: 미국 유대인의 35%

- 현대 흐름에 맞춰 진보된 유대교파

 

3) 보수파 유대교: 미국 유대인의 26%

- 중도보수적인 유대교파

 

2. 이스라엘 유대교

- 전체 인구 800만명 중 550만명이 유대인

- 정통주의 유대교만이 공식적이고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유일한 유대교

- 60%가 힐로니(세속주의)/ 15-20%가 하레디(극단적 정통주의) 혹은 다티(정통주의)/ 나머지가 마소르티(전통적으로 유대교 전통들을 지키지만 정통주의만큼 교조적이지 않다)

 

 

 

 

< 4, 기독교는 어떻게 탄생되었나? >

 

1. 예수의 생애와 기독교의 탄생

* 기원전 8세기경 선지자 이사야가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

 

* 메시아(Messiah)= 구세주=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어로는 크리스토스’= ‘예수 그리스도

 

* 기원전 4년 예수가 탄생.

- 히브리어 여호수아’/ 그리스어 예수‘/ 뜻은 야훼는 우리의 구원

 

* 예수는 유대인인데도 배타적인 선민사상과 형식화된 율법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 십계명과 율법의 알맹이는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 요약했다.

- 예수는 율법과 할례 없이도 그를 통해 하느님을 믿고 회개하면 누구나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복음을 전파했다.

- 예수는 유대인의 전유물이었던 유일신교 유대교를 온 인류에게 개방해 보편종교로 탈바꿈시켰다.

 

*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은 예수가 세리, 창녀, 나병환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비판했다.

 

* 서기 30년 오순절, 예루살렘에 순례 온 제자들이 그리스도교를 창교했다.

 

cf) 오순절

- 오순절(五旬節)은 한자어 풀이와 같이 50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예수의 부활(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일요일에 성령 강림이 이루어진 역사를 기념한다는 의미이다.

 

*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 5, 기독교는 어떻게 종교로 자리 잡았나? >

 

1. 열두 제자의 활약

1) 예수, 열두 제자를 뽑다

*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한 이후, 복음 전파를 위해 최초로 뽑은 제자가 열두명이다.

* 열두 제자

- 베드로(시몬)와 그의 형제 안드레(안드레아)/ 세베대(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타대오(유다)/ 빌립(필립보), 바돌로메(나타나엘, 바르톨로메오), 도마(토마), 세리 마태(마태오), 가나안 사람 시몬, 가롯 유다(가리옷 유다)

->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가 자살한 뒤 마티아를 뽑았다.

 

2) 성령 강림

* 예수는 부활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하다 승천했다.

* 그리고 승천한 뒤 열흘이 지나 오순절이 되었다.

->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을 때 성령이 임함을 체험했다

->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고 제자로 합류했다

-> 신앙공동체가 성립

-> 예루살렘 교회가 성립

 

3) 제자들의 순교

 

* 최초의 순교자는 야고보

- 예루살렘에서 헤롯 아그리파 왕의 칼에 순교당했다.

- 그의 유해는 스페인 서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 베드로

- 로마에서 순교

-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다. 때문에 로마 카톨릭 교회와 동방정교 교회는 그를 초대 교황으로 받든다.

 

* 사도 요한

- 신약의 <요한복음>, <요한 제1>, <요한 제2>, <요한 제3>, <요한 계시록>의 저자다.

- 밧모 섬(파트모스 섬)에 귀양

 

* 안드레

- 예수의 첫 번째 제자

- 안드레의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

 

* 그외 제자들도 대부분 순교했다

 

2. 원시 기독교 사상의 변화

1) 사도 바울의 회심/ 바울, 유대교와 기독교를 구분 짓다

*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환영을 경험하고 회심

*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나사렛파)로 이해했다.

-> 점차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한 베드로가 이끄는 유대 기독교인과 유대교 전통을 거부한 바울 중심을 지도자로 하는 이방 기독교인으로 나뉘어졌다.

 

2) 바울의 주장을 인정한 예루살렘 종교회의

-> 예루살렘 종교회의에서 베드로는 바울의 주장을 인정하여 이방인은 할례와 음식정결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3) 보편적 기독교의 탄생

* 바울은 지중해 전역에 전도 여행을 떠남

-> 보편적 기독교의 탄생

 

4) 바울의 3대 교리, 기독교를 세계화시키다.

(1) 예수를 인류의 보편적 구원자로 정립했다

(2) 성령 개념을 도입해 삼위일체론을 만들었다

(3)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음으로써 인간이 구원에 이르도록 했으나 이는 전적으로 하느님 뜻에 따른다는 예정설을 지지했다

 

* 바울은 65년 로마에서 순교

 

5) 신약성경

* 신약성경은 고대 그리스어의 방언의 일종인 코이네로 쓰여졌다.

* 신약성경(27)= 복음서(4)+ 역사서(1)+ 바울로의 편지(13)+ 공동 서한(8)+ 예언서(1)

* 현재의 신약성경은 서기 50~150년 사이 1백년에 걸쳐 쓰였다.

 

6)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

* 구약은 하느님과 유대민족과의 약속이라면,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범위를 이방인에게까지 넓힌 것이다.

* 하지만 이후 기독교 문명의 번성은 포교와 전쟁이란 양자택일적 강압 수단에 의한 것이 많았다.

* 반면 유대교에는 포교나 전도라는 개념이 없다.

 

3. 유대교의 한 분파였던 초기 기독교

1) 박해를 받은 초기 기독교

* 초기 기독교인이 박해를 받은 원인은 예배의식에 대한 로마인의 오해 때문이었다. 그들이 비밀리에 모여 예배 보는 모습에서 식인풍습과 근친상간 그리고 무신론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 기독교인이 핍박받은 가장 큰 이유는 황제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 64년 네로 황제는 로마 대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에게 돌리고 극심하게 박해했다.

 

2)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라선 이유

* 68년 로마 군의 예루살렘 성 포위를 보고 임박한 세상의 종말을 확신한 유대 기독교인들은 집단 탈출을 감행

-> 유대인들은 나사렛파를 비겁한 배신자들로 여기고 곧 운명을 걸고 신앙공동체를 함께할 수 없다고 보았다.

 

* 90년 야브네 종교회의에서 <구약성경>을 확정하면서, 사무엘 랍비가 회당 예배 때마다 바치는 18조 기도문 가운데 이단자들을 단죄하는 제12조에 나사렛 사람들곧 기독교인들을 덧붙였다. 그 결과 기독교도인들은 더 이상 유대교 회당 예배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독자적 종단으로 독립했다.

 

3) 지하묘지 예배당, 카타콤

* 서기 200년 부터 기독교인들은 로마 시내의 카타콤이라는 지하묘지 동굴에서 은밀하게 예배를 드렸다.

 

4. 기독교, 로마제국의 국교로

1) 로마제국의 혼란과 디오클티아누스의 개혁

* 3세기 로마의 위기

* 284년 발칸 반도 출신의 장군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 즉위

* 29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시작

*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신들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대대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함- ‘대박해

 

3)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 312년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의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하고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선언함.

*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선포

-> 기독교 공인

*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믿었던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 신앙이 초기 기독교의 의식이나 제도, 관습, 교리 등에 영향을 미쳤다.

* 32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일요일을 공식 휴일로 도입하다.

* 324년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는 마지막 패권을 놓고 결전을 벌여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을 통일했다.

* 325년 니케아 공의회, 삼위일체 교리 채택

->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유대교가 해롭다고 판단하고 박해하기 시작했다.

*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로마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플로 개명

-> 성 소피아 성당 건설

* 콘스탄티누스 황제, 성 베드로 대성당과 개선문을 세우다.

- 349년 로마의 성 베드로 바실리카 완공

* 365년 라오디게아 공의회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예배일을 정식으로 안식일(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게 된다.

 

4) 암브로시우스 교부, 교권을 확립하다

* 374년 암브로시우스, 밀라노 교부가 되다

* 390년경 테살로니키에서 일어난 학살에 대해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책임을 물었다.

- 교권을 확립

 

5)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채택하다.

* 4세기초 교회에 대한 그리스 문화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교회 언어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바뀌었다. 이를 계기로 4세기 말에는 로마제국의 공식 언어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바뀌게 된다.

 

5. 가톨릭의 분열과 종교개혁

1)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의 분열

* 1세기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 다섯 개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 730년 비잔틴 제국의 레오 3세 성상숭배 금지령 선포.

* 1054년 졍교회와 로마교회의 분리

- 이로써 하나의 교회에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의 네 개의 교회연합 곧 정교회와 로마교회가 분리 되었다.

 

2) 종교개혁의 발생

 

(1) 12세기 성경주의를 신봉하는 발도파 등장

-> 1229년 툴루즈 공의회에서 평신도의 성경 읽기, 번역, 소지 금지조항을 채택.

->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은 자는 화형에 처함

 

(2)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 1517년 마틴 루터가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는 내용의 95개조 반박문 발표

-> 루터가 <신약성경><구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 종교개혁 발생

 

* 독일에서 루터를 중심으로 개혁운동이 일어날 때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에 의해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가운데, 제네바에서는 칼뱅의 세속적 종교운동이 꽃을 피우게 되었다. 칼뱅의 제자 낙스는 스코틀랜드에 가서 장로교 전통을 심었다.

 

* 종교개혁의 결과 기독교는 개신교, 로마 가톨릭 교회, 동방교회로 분리됨.

 

* 루터는 유대인을 개종시키려 하다 실패하자 유대인을 비난하고 독일 곳곳에서 추방함.

 

(3) 장 칼뱅, 상인 곧 유대인을 지지하다.

 

6. 유대교 입장에서 바라본 예수

* 유대인은 예수를 구세주가 아닌 위대한 선지자의 한사람으로 보고 있다.

* 유대교는 예수가 창시한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인 에세네파라는 극좌파에서 독립해 나간 종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 유대교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을 거부한다.

 

 

 

 

< 6, 이슬람교는 어떻게 탄생되었나? >

 

* 무함마드가 610년경 이슬람교를 창시= 신정일치의 종교

 

1. 이슬람교의 출현

1) 이슬람교의 탄생

* 570년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탄생

* 610년 무함마드 40세에 알라의 첫 계시를 받는다.

-> 문맹이었던 무함마드가 하느님의 메시지인 <코란>을 받아서 외웠다(천사 가브리엘로부터 23년간 계시를 받았다고 함)

-> 무함마드가 외운 것을 그의 제자인 자이드 빈 사비트등 추종자들이 기록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코란>이다.

 

* 무함마드는 하느님의 마지막 성경인 <코란>을 계시 받아 이슬람교를 인류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선택된 최후의 예언자였다.

 

2) 무함마드의 승천

*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 성전산의 황금 돔 사원을 지음

- 원래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던 곳

-> 기원전 950년경 솔로몬이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음.

-> 예수가 부활 승천

-> 무함마드가 승천

-> 638년 이슬람 세력이 이곳에 우마르 사원을 건설.

 

3) 헤지라

* 622년 헤지라(메카에서 메디나로)

*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신정국가 체제인 움마를 건설했다

- 메디나 헌장을 반포

 

4) 메카 정복 & 사라센제국의 출발

* 630년 무함마드, 메카 정복

* 631년 아랍 부족들은 대표단을 보내 무함마드에게 충성경약을 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약속했다.

 

* 무함마드는 처음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도에게 관대 했으나, 유대인과 기독교도드이 무함마드를 거부하자 적대적으로 돌변했다.

 

* 632년 무함마드 영면.

 

2. 이슬람교 경전

1) 이슬람교의 경전들

(1) 코란

-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는 공식적인 이야기들을 모은 기록

-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신의 참된 말씀

 

(2) 이슬람교의 경전= 토라+ 자부르+ 인질+ 코란

a) 토라

- 모세가 기록한 구약성경 도입부의 모세오경

- 유대교나 기독교의 모세오경과 다름

- 이슬람에서는 모세가 기록한 율법서는 현존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b) 자부르

- 다윗의 시편

- 오직 다윗의 시만을 의미

c) 인질

- 예수의 복음서

- 예수가 직접 쓴 복음서을 의미

- 이슬람에서는 기독교 복음서를 인정하지 않음

d) 코란

-> 토라, 자부르, 인질은 왜곡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코란만을 읽고 행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2) 코란

* 코란은 무함마드 사후 20년 후에 완성되었다.

- 신약성경의 약 80% 분량

- 첫 수라는 알라 외에는 다른 하느님은 없고, 나는 무함마드가 그의 선지자임을 믿는다

* 코란의 내용은 크게 신조, 윤리, 규범의 세 가지로 나뉜다.

* 코란은 아랍어로 기록되어 있다.

- 아랍어 코란을 원칙적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할 수 없다.

- 번역된 코란은 코란이라 하지 않고 타프시르라고 한다

* 이슬람교에서는 코란 이외에 하디스가 있다

- 이슬람교 경전으로 인정되지는 않으나 코란의 보조 역할

* 예수의 사명은 모세에게 내려졌던 <토라>의 내용을 확증하고, 새로운 복음서를 이 땅에 가져와 인류에게 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 코란은 구약과 신약성경의 종합 판이라고 생각한다.

 

3) 이슬람교의 65

(1) 6(이맘)= 여섯 조항으로 된 절대적인 믿음

- 알라와 천사, 성전(경전), 예언자, 최후의 심판, 정명(예정론)에 대한 믿음

 

a) 알라에 대한 신앙

- 가장 기본적인 신조는 알라 외에는 없다는 유일신 신앙이다.

 

b) 천사에 대한 신앙

- 천사, (Jinn), 사탄 등 영적 존재를 믿고 있다. 무슬림은 대천사 가브리엘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

 

c) 예언자들에 대한 신앙

* 예언자의 수는 124천명

* 코란에는 28명의 선지자가 나오며, 그 가운데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 여섯 명을 가장 중요한 선지자로 여긴다.

- 그중에서도 무함마드는 마지막 선지자요, 가장 큰 자요, 완성자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를 신성시하지는 않는다.

 

d) 거룩한 경전에 대한 신앙

* 이슬람교에서는 알라가 계시한 104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 이중에서 토라와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과 <코란>의 네 개만 남아 있는데 그중 <코란>을 제외한 세 개는 전달과정에서 변질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e) 부활과 심판에 관한 신앙

* 최후의 심판을 강조

 

f) 정명에 대한 신앙(예정론)

* 무슬림들은 언제나 알라의 주권을 강조한다. 기독교에서처럼 하느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조화가 아니다. 무슨 일이든지 알라의 뜻으로 돌린다.

 

 

 

(2) 5(이바다, 다섯개의 기둥, 실천 5)= 다섯 개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실천 의무

- 수니파에만 해당됨.

- 신앙고백(샤하다)과 예배(살라트), 종교 기부금(자카트), 금식(사움), 순례

 

a) 신앙고백(샤하다)

*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예언자라는 구절을 반복해서 외우면 누구든지 무슬림이 될 수 있다.

 

b) 기도(살라트)

*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며 금요일에는 특별 기도를 하라.

 

c) 자선(자카트)

* 믿음에 따라 이웃에게 베풀어라

 

d) 금식(사움)

* 9월 라마단 시기에 단식하라

 

5) 메카 순례(하즈)

* 메카를 순례하라

- 일생에 한번은 행해야 한다

 

e) 지하드: 6번째 실천사항으로 지하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 큰 지하드와 작은 지하드가 있다

- 큰 지하드란 자신 내면의 성찰을 통한 욕망과 욕구와의 투쟁을 말한다

- 작은 지하드는 자신의 민족과 종교에 대한 탄압과 억압에 대한 저항을 말한다

 

 

 

 

< 7, 이슬람교는 어떻게 종교로 자리 잡았나? >

 

1. 이슬람교의 팽창

1) 632-661년 정통 칼리프 시대(29년간)

* 초대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친구 아부 바크르

- 632년 칼리프 추대

- 634년 사망

 

* 2대 칼리프는 우마르

- 635년 다마스쿠스, 638년 팔레스타인, 640년 시리아, 641년 이집트 점령

- 642년 사산조 페르시아 정복

- 644년 기독교도에 의해 암살당함

 

* 3대 칼리프는 오스만

- 656년 암살당함

 

* 4대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인 알리

-> 알리가 오스만 암살 세력의 배후일 거라 의심

-> 오스만의 옴미아드 가문은 복수를 주장하며 무아위야를 중심으로 뭉쳤다.

-> 무아위야와 알리가 협상을 통해 화해를 했지만, 이 협상에 불만을 품은 알리의 강성 추종자가 661년 알리를 살해한다.

-> 무아위야가 왕위에 오르면서 옴미아드 왕조(661-750)가 시작됨.

 

2) 이슬람 세력, 지중해 해상권 장악과 지중해 교역 주도

 

3) 이슬람제국의 이베리아 반도 통치

* 589년 서고트의 레카레드가 왕위에 올라, 카톨릭으로 전향하고 유대인을 박해하기 시작

* 711년 이베리아 반도 정복(이후 8백년간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

- 이슬람교는 기독교를 배척했으나 유대인에게는 관용을 베풀었다

- 대부분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이슬람교 통치권 안에 들어오게 된다

* 732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패배

 

4) 아바스 왕조

* 8세기 중엽, 무함마드의 일족인 아바스 가문이 시아파, 이란인 이슬람교도들과 협력하여 우마미야 왕조를 타도하고 아바스 왕조(750-1258)를 열었다.

-> 그 뒤 아바스 왕조는 우마미야 왕조를 타도할 때 적극 협력했던 시아파를 탄압하고, 메소포타미아 한복판에 원형의 신도시 바드다드를 수도로 정하고 중앙집권제를 확립했다

-> 바그다드의 번영

 

5) 유대인들 이베리아 반도로 몰려오다

* 그 뒤 이베리아 반도의 우마이야 가에 이어 모로코, 튀니지, 중앙아시아, 이란 동부, 이집트 등에도 독립정권이 출현해 칼리프의 직할지는 점차 축소되었다.

 

* 이베리아 반도에 후우마미야 왕조(알 안달루스, 756-1031) 성립: 수도는 코르도바

-> 유대인에 비교적 종교적 관용을 보이는 편이라서 유대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몰려옴(이베리아 반도 유대인이 중세에는 세계 유대인의 절반을 차지하게 됨)

-> 코르도바는 서유럽 최대 도시로 번성하게 된다.

 

* 이슬람교 세력의 중심축이 바그다드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옮겨 왔다.

- 이 무렵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 내에서 무슬림과 기독교, 유대교 신자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면서 공통의 관습과 문화를 오랫동안 형성했던 유일한 지역이었다.

 

5) 이슬람, 세 명의 칼리프 체제로 쪼개지다

* 10세기 초 북부 아프리카에 파티마 왕조(909-1171)가 일어나 칼리프 칭호를 사용하며 아바스 왕조의 권위를 부정하자, 이베리아 반도의 우마이야 왕조도 칼리프라 칭해 이슬람 세계는 3인의 칼리프 체제가 되었다.

 

*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의 분열과 스페인 왕국의 대두

 

6) 지중해 교역의 주역, 유대인

* 이슬람교는 처음부터 상인에게 높은 도덕적 가치를 부여했다

- 유대인의 상업과 교역 활동 번성

* 유대인이 주도하는 지중해 무역이 번성

 

7) 이슬람교 사회의 분열과 스페인 왕국의 대두

* 1031년 코르도바의 마지막 왕 힉셈 3세 사망 & 코르도바 왕국의 분열

* 1085년 톨레도가 가톨릭 세력권에 들어감

-> 소왕국의 왕들은 아프리카 북부의 알모라비데 족에게 도움을 요청

-> 알모라비데가 소왕국을 정복

* 1085-1145 Almoravid rule(무라비트 왕조)

* 1147-1238 Almohad rule(무와히드 칼리파조): 광신적인 이슬람교도인 알모아데 족

*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이슬람 세력은 카스티야 왕국을 주축으로 한 가톨릭 연합군에 대패-> 레콘키스타의 발판을 마련

 

8) 투르크의 이슬람화

* 10세기 투르크의 이슬람교화

- 921년 불가 강 중류의 불가르 족이, 960년 텐산 산맥 남북로의 투르크 족이 이슬람을 받아 들임.

- 740년 경부터 동아프리카에 이슬람교가 퍼지기 시작해서 1010년 경에는 사하라 사막을 넘어 수단 지방에 있는 왕국들까지 이슬람 세력이 영향을 미쳤다.

-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투르크군이 비잔틴 군을 격파하면서부터 서아시아의 이슬람화, 투르크화가 시작되었다.

 

9) 셀주크투르크, 실크로드를 장악하다

* 1037년 셀주크 투르크(1037-1194) 왕조 성립

* 1071년 말라즈기르트 전투(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틴 제국을 격파

- 실크로드 장악

- 육해상 실크로드를 잇는 중개무역으로 번성

 

10)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유대인 이동(북부 카톨릭 국가로 이동)

* 1121년 베르베르인이 세운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의 알모하드 왕조(1121-1269) 성립

* 1146년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하여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탄압을 함.

-> 이 때 유대인들은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 왕국으로 피신함.

-> 이슬람 왕국의 상업적, 문화적, 사회적 기반이 쇠퇴/ 스페인 왕국은 경제 번영

 

cf) 위키백과 연대표

11~12세기 알모라비드 왕조(1050s-1147, 무라비트 왕조, 모로코의 베르베르 왕조)

-> 12~13세기 알모하드 왕조(1121-1269,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 지배)

 

11) 13세기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 유대인을 보호하다.

* 13세기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는 알모하드의 박해를 피해 도망 온 유대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12) 알람브라 궁전의 영묘한 매력

* 그라나다 토후국(1230-1492/ 262년간)

- 알람브라 궁전을 짓고 250년간 유지되었다.

 

2. 이슬람교 종파들

1) 종파 분열의 역사

* 수니파

- 4대 칼리프와 이후 칼리프들의 정통성을 모두 인정

- 무함마드 혈통이 아니어도 그의 부족인 무라이시 족 출신이라면 칼리프가 될 수 있다

 

* 시아파

- 알리만을 정당한 후계자로 인정

- 칼리프의 정통성은 무함마드의 혈통만 인정

 

* 무아위야는 본래 선출 임명직이었던 칼리프 지위를 세습화로 고정시켰다.

* 680년 쿠파의 총독이었던 우베이둘라가 알리의 차남인 후세인 알리를 공격해 그 일가를 괴멸시켰다-> 이후로 시아파가 수니파로부터 분파

 

2) 수니파= 전승주의자

* 전 세계 무슬림의 83% 이상

* 수니파는 무슬림 공동체 즉 움마의 순나’(관행)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

 

3) 시아파= 분리파

* 전 세계 무슬림의 16%

* ‘시아 알리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에서 나온 명칭

*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위와 딸인 알리와 파티마의 차남 후세인 이븐 알리가 680년 지금의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반란을 일으켜 참혹하게 살해되자 그를 기려 주류파에서 독립해 생겨났다.

* 이맘에 대한 견해

- 수니파에서 이맘은 <코란>을 읽고 예배를 인도하는 정도의 사람을 가리킨다

- 시아파에서 이맘은 알리와 후세인의 후계자로 <코란>의 신비를 밝혀 신도들을 빛과 은총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격상됐다.

* 열두 이맘파

- 87312대 이맘이 사라졌고 언젠가 지상에 구세주로서 나타탈 것이라고 믿는다.

 

4) 수피- 신비주의적 종파

- 수피즘은 진리가 말이나 이론에 있는 게 아니라 알라에게 몰입되는 체험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수피즘은 이슬람교의 전통적인 율법은 존중하되, 일체의 형식은 배격한다

- 수피즘은 예수를 사랑의 복음을 설교한 이상적인 수피로 본다

 

5) 수니파 근본주의의 발흥= ISIS(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

*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 이후 세운 친미 시아파 정권에 반대하여 결성된 무장단체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 2014년 칼리프 제도의 신정일치 이슬람 국가 선포

 

 

 

 

< 8, 세 종교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

 

1. 같은 점

1) 유일신

* 세 종교의 공통점은 유일신을 믿는 일신교라는 점이다.

*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을 종교의 최고 조상으로 섬긴다.

* 유일신의 명칭

- 유대교에선 신의 이름 YHWH를 발음하지 않고 대신 아도나이’(나의 주님)라 읽는다.

- 기독교에선 야훼혹은 여호아

- 이슬람에선 알라

* <구약성경>은 세 종교 모두의 경전이다

- 세 종교 모두 예루살렘을 성지로 여기고 유일신에 의한 창조, 종말, 최후의 심판, 영원한 내세라는 종교관도 일치한다

 

2) 세 종교의 뿌리, <구약성경>

* 오늘날 <구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다.

* 세 종교의 경전을 보면, 유대교는 <구약성경><탈무드>이며, 기독교는 <구약성경><신약성경>, 이슬람교는 <토라>와 다윗의 시편, 예수 복음서 그리고 <코란>이다.

 

3) 부활과 최후의 심판

* 세 종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견해

- 유대교에서 마지막 날메시아가 도래

- 기독교는 최후의 심판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그리스도의 재림 때 최후의 심판이 있으며,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앞에 서게 된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에서 심판은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행해진다

- 이슬람교에서는 부활의 날, 심판의 날이 세상의 마지막 이전에 선행된다.

 

2. 다른 점

1) 예수에 대한 관점

* 기독교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자 신이라고 믿는 반면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단지 하느님이 보낸 선지자(예언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한다.

* 예수에 대한 유대교의 견해

- “예수는 마술을 써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배교하게 했으므로 유월절 전날 처형되었다

* 예수에 대한 이슬람교의 견해

-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사실과 기적을 행한 사실을 믿는다

-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하느님께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셨으며 가롯 유다가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보고 있다.

- 심판의 날이 까까워오면 예수는 다시 지구로 재림한다고 믿는다

- 이슬람교는 이렇게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하면서도 참 선지자는 바로 무함마드라고 믿고 있다.

 

2) 구원에 대한 견해

* 유대교는 율법에 의한 구원

- 하느님이 준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하면 구원된다고 생각한다

* 기독교는 믿음에 의한 구원

- 우리 대신 십자가의 피로 속죄하신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될 수 있다

* 이슬람교는 행위에 의한 구원

- 의무 5행을 철저히 지킨다

 

3) 메시아에 대한 견해

* 정통파 유대교에서는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 개혁파 유대교에서는 집단 메시아 사상을 믿고 있다.

- 유대민족 전체가 메시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재림 구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신다고 한다.

* 이슬람에는 구세주란 중재자가 없다. 누구나 알라를 믿고, 선행을 쌓으며 진실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4) 원죄사상

* 기독교에서는

-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을 원죄라고 한다. 이 죄가 자손대대로 전해 내려온다는 사상이 원죄 사상이다.

- 다만 예수를 믿으면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 보혈의 피로 대속했기 때문에 원죄에서 벗어난다고 가르친다.

* 유대교에는

-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죄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 죄가 후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원죄 사상은 없다.

* 이슬람교는

- 원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느님이 아담과 하와를 용서했기 때문에 원죄는 성립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인류의 원죄를 씻어내는 예수의 대속이라는 개념 또한 없다.

 

5) 천사와 악마의 존재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뿐 아니라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천사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 유대교에서 천사는 여호와가 불로 창조했다는 영적인 존재들로서 신과 인간의 중재자이다.

- 기독교에서 천사는 인간보다 지혜롭고 능력이 뛰어난 영으로 정의되어 있다.

- 이슬람교의 천사는 인간을 섬기도록 만들어졌다.

* 천사는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로 나뉘어 졌다. 악한 천사가 바로 악마(사탄).

 

cf) 유명한 천사들

1) 어떤 의미론 같은 혈통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라는 3대 대천사가 있다고 한다. 다만 라파엘의 경우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만 받아들인다고 알려져 있다. 라파엘의 성경적 근거가 제2경전인 '토빗기'에 있기 때문.[15] 또한 4대 천사 라고 해서 우리엘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는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2) 천사 명단

* 4대 천사=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

* 에녹서- 사리엘 · 라구엘 · 라미엘

* 정교회- 셀라피엘 · 예후디엘 · 바라키엘

 

6) 세 종교의 안식일 차이

* 금요일은 이슬람, 토요일은 유대교, 일요일은 기독교의 안식일이다.

* 원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를 의미했다.

- 원래 세 종교의 안식일은 유대교의 안식일과 같았다.

* 365년 라오디게아 공의회에서 기독교 예배일을 정식으로 일요일(태양신의 날)로 바꾸게 되면서 기독교의 안식일은 일요일로 정착된다.

* 유대인들이 이슬람교를 받아 들이지 않자 무함마드가 예배일을 금요일로 바꾸었다.

 

7) 사제의 유무

(1)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사제가 없다- 하느님과 평신도가 직접 소통하는 것

* 유대교에는 원래 모세의 형 아론에서 시작된 제사장 혈통이 있었는데 중간에 없어졌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고 40년 뒤 로마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사두개파를 멸족시켜 사제직 혈통이 없어져 버렸다. 그 뒤 지금까지 2천년 동안 평신도들이 유대교를 지켜왔다.

* 유대교의 랍비는 공부를 많이 한 공동체의 지도자

* 이슬람의 이맘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

(2) 기독교에는 하느님과 평신도 사이에 사제가 있다. 사제는 신과 인간의 중개인을 의미한다.

a) 가톨릭에는 신부를 사제라고 부른다.

b) 개신교에는 만인제사장설에 따라 사제가 없다고 하나, 대부분 목사가 사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8) 종교마다 약간씩 다른 십계명

-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의 십계명은 약간씩 다르다.

 

9) 종교에 따라 <구약성경>의 권수가 다른 이유

* 유대인 <타나크TANAKH>는 총 24

-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로 구성

- 90년 유대인들은 야브네에서 종교회의를 열고 히브리어로 쓰인 24권의 <성경>만을 정경으로 확정

 

*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72인이 모여 히브리어 <성경>을 당시 공용어였던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할 때 히브리어 <성경> 24권이 39권으로 나뉘어 그리스어 <성경>으로 번역됐다.

 

* 가톨릭의 구약성경은 46

- 382년 로마 주교회의에서 제2경전 7권을 더 포함해 46권의 <구약성경>27권의 <신약성경> 목록을 확정했다.

- 2경전 7권은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기 상권, 마카베오기 하권이다.

 

* 개신교의 구약성경은 39

- 개신교는 제2경전을 외경으로 여기며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기존의 39권만을 <구약성경>으로 인정했다.

 

10) 세 종교의 선교활동

(1) 유대교에는 선교활동이 없다

- 어머니가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를 믿으면 유대인으로 간주한다.

- 예외적으로 미국의 개혁파 유대교는 비유대인과 결혼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2)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한다.

* 이슬람교는 두 가지 신앙 증언만 하면 입교가 허락된다.

 

 

 

 

< 9, 반목과 갈등의 역사 >

 

1. 로마제국의 유대인 박해

* 서기 37년 반유대인 폭동

-> 유대인이 이베리아 반도와 동유럽으로 이주

* 로마 제국의 유대인 억압 정책

- 농사를 지을 수 없게 하였다

- 전쟁에 군인으로 참가할 수 없게 하였다

- 유대교 개종자와 기독교도의 결혼을 금지시켰다

* 425년 유대인은 정부 관직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었다.

*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엽까지 나폴리, 로마, 밀라노, 제노바 등 도시에서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 6세기 유대인의 노예 소유 금지

* 7세기 중반 유대인의 토지 소유 금지

 

2. 이슬람교의 유대인 박해

1) 팔레스타인의 새 주인

* 614년 유대인은 페르시아와 연합해 기독교도들과 싸워 예루살렘 성을 정복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친유대정책은 3년도 못가 반유대정책으로 돌변했다.

* 622년 비잔틴 제국이 팔레스타인을 탈환

* 640년 이슬람 세력이 팔레스타인의 새 주인이 되었다

 

2) 유대인의 시련, 그라나다 대학살

* 베르베르 무슬림들이 코르도바를 점령한 후 유대인을 박해

-> 1066년 그라나다 유대인 민중봉기 때 유대인 5천명이 학살 당함

-> 이때 많은 유대인들이 반도 북부에 있는 스페인 왕국으로 이주

* 1086년 알모라비드 사람들이 소왕국을 정복하고 알모라비드 왕국이 성립

* 11세기 유럽 대륙에서 유대인과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도의 증오가 심해짐

-> 그러나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는 이슬람 왕국에서 탈출해 오는 유대인들을 보호해 유대교는 카스티야에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3) 유대인, 몸에 노란 표시를 해야

* 1090년에는 남쪽 이슬람 왕국이 본격적으로 유대인에게도 이슬람교 신앙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 유대인들은 몸에 노란색 표시를 해야만 했다.

 

4) 개종 아니면 죽음

* 12세기 초 북아프리카 산악지대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발흥해 1천 년 동안 북서 아프리카에 존재했던 기독교 공동체가 전멸했다.

* 1146년 이슬람 근본주의 알모하드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해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탄압에 나섰다. 이제 유대인은 개종 아니면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다.

* 1198년 예멘에서는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모두 참수했다.

 

3. 가톨릭의 이슬람교와 유대인 박해

1)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 유대인 공직배제

* 1078년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 유대인 공직 배제하는 법령을 선포

 

2) 십자군 전쟁

* 1077년 예루살렘이 중앙아시아에서 쳐들어온 이슬람 셀주크투르크의 손에 떨어졌다.

* 1096-1099 1차 십자군: 프랑스 제후가 주력

- 유대인 학살은 1096년 프랑스 루앙에서 시작해 십자군을 따라 라인란트의 도시들로 퍼져 나갔다.

 

3) 피로 물든 예루살렘

* 1099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슬람교도와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 비슷한 시기에 메츠, 트리어, 마인츠, 퀼른, 레겐스부르크, 프라하 등지에서 유대인 학살이 발생했다.

 

4) 인노첸시오 교황의 유대인 박해

* 1147-1148 2차 십자군- 독일과 프랑스 제후가 주력

* 1187년 이슬람의 살라딘 장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1189-11923차 십자군

* 1202-12044차 십자군

- 인노첸시오 교황 주도

- 1204년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고 라틴제국을 건설

*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종교재판소를 만들어 교황의 명을 따르지 않는 자 백만 명 이상을 살해했다.

* 인노첸시오 3세는 1215년에 열렸던 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일련의 반유대 칙령을 제정해 유대인 식별마크 착용을 의무화 했다.

 

5) 맘룩의 시대

* 1258년 몽골, 바그다드 정복

* 1260년 아인잘루트 전투

- 이집트계 맘루크왕조 군이 시리아 주둔 몽골제국 군을 격파한 전투.

- 같은 해 다마스쿠스를 정복하고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학살

* 1291년 맘룩은 성 요한이 이끄는 십자군을 격파

* 1301년 맘룩, 기독교와 유대인에 대한 박해

- 카이로에 있는 모든 교회와 회당을 폐쇄

 

6) 유대인 박해와 추방이 관례화되다

* 십자군 운동은 유대인 역사에 있어서 유럽 내 유대인들의 안정된 공동체 생활이 끝나고 유대인들에 대한 민족적 혐오감이 강화되기 시작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 1349년 흑사병을 유대인 탓으로 돌려 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 14세기 살아 남은 유대인들은 흑사병과 박해를 피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등 동유럽으로 대거 도피했다.

 

7) 유대인 추방은 일거양득

* 독일, 프랑스, 영국과 이탈리아 등에서 유대인 추방이 있었다.

* 중세에는 유대인이 죽으면 그의 재산과 채권은 영주에게 귀속되었다. 그래서 기독교도 위정자들은 그들을 죽이거나 추방하고 재산을 일시에 몰수하기로 마음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8) 1492년 스페인, 유대인 추방령의 비극

* 스페인을 통일하던 해인 1492년에 스페인 왕국은 유대인 추방령을 발표했다(유대인 추방= 재산 몰수)

-> 유대인 17만명이 추방당함.

->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 중 10만명은 인근 포르투갈로 이주 했으나, 1497년 포르투갈에서도 추방 당함.

-> 플랑드르의 브뤼셀과 앤트워프, 오스만 제국, 이탈리아, 북아프리카(특히 모로코) 등으로 이주

-> 이베리아 반도의 경제력이 중부 유럽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4. 유대인이 박해를 많이 받은 이유

1) 기독교의 대부업 금지

* 11793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기독교인의 이자 수취가 정식으로 금지되었다.

 

2) 유대인의 대부업

* 유대인은 이방인에게 이자를 받을 수 있다.

-> 유대인이 대부업을 도맡게 되었다.

 

3) 유대인, 정보교환으로 부를 일구다

* 유대인 랍비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커뮤니티 간에 편지를 교환했다.

-> 유대인들은 상품과 환시세의 변동을 파악하고 이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했다

-> 뱅커(환전상)의 출현

* 유대인은 암흑의 중세 시대에 동방무역을 독점하면서 부를 쌓았다.

 

4) 문맹사회에서 글을 아는 독보적 존재

* 유대인들이 상업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글을 쓸 줄 알았기 때문이다

* 지혜와 정보를 나누는 오랜 관습- 공동체 의식

* 도움이 필요한 형제를 돕는 것은 유대교 계율

 

5) 중세에 반유대주의가 강했던 이유

(1) 유대교와 기독교간 교리상의 차이다. 유대교는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다.

(2) 유대인의 폐쇄적인 생활 태도

(3) 경제력

 

5. 나치의 반유대주의

1) 히틀러, 유대인은 곧 좌익이라는 등식을 만들었다.

 

2) 1단계, 노골적인 유대인 박해와 제3제국 탄생

- 나치가 정권을 획득한 19322월 말부터 시작

- 유대 상점의 약탈, 유대인에 대한 산발적 폭행, 유대 상점에 대한 불매운동 등

 

3) 2단계, 뉘른베르크법

- 1935년 뉘른베르크법 제정

- 독일인과 유대인의 결혼 금지/ 유대인의 공민권 박탈

- 유대인임을 가리는 기준은 조부모 중에 유대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여부로 판단

 

4) 3단계, 반유대주의를 전 유럽으로 확산

- 조직적인 폭력이 이루어지고 대량으로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보냈던 시기

- 1938년 유대인 망명자가 파리 주재 독일 참사관을 살해

-> ‘제국 수정의 밤

- 당시 공산주의 배후는 유대인이라는게 보편적인 시각이었다

 

5) 4단계, 게토에 수용되다.

- 193992차 대전 발발 후부터 모든 독일계 유대인과 오스트리아 유대인들을 폴란드에 마련한 게토에 보내졌다.

 

6) 5단계, 대학살 감행

- 5단계는 1941년 러시아 침략 이후 강제수용소의 목적이 구금에서 살인으로 변한 시기다.

- 유럽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나치의 통제 아래 있던 유대인 9백만 명 중 6백만명을 학살

 

7) 히틀러의 3대 적

- 공산주의자, 소련 공산체제를 주도적으로 세운 유대인, 슬라브 족

 

6.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전쟁

1) 영국의 이중 플레이

* 1915년 맥마흔 선언

- 영국이 아랍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을 도와준다는 내용

* 1917년 벨푸어 선언

- 옛 유대인의 땅에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

 

2) 이스라엘 건국

* 1948년 이스라엘은 국가를 선포

- 기원전 63년에 망한 지 정확히 2011년 만에 나라를 되찾음

 

3) 1차 중동전쟁

- 건국 선언한 날 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다섯 개국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

-> 이스라엘의 승리

-> 이스라엘은 유엔안 보다 50% 많은 지역을 점령/ 아랍인 80만명이 고향을 떠남, 이들을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부른다.

 

4) 2차 중동전쟁 뒤 공대공 미사일 개발

*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위기) 발발

-> 2차 중동전쟁 뒤 공대공 미사일 개발

 

5) 이스라엘, 국제적 신뢰를 상실하다

*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 발발

- 1967년 시리아에 대규모 공격 감행

-> 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지역과 그때까지 이집트가 통치하고 있던 가자지구를 점령

 

6) 4차 중동전쟁, 탱크가 힘을 못 쓰다

*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발발과 제1차 석유파동

- 이집트와 시리아가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기습 공격-> 미국의 지원으로 이스라엘 승리-> 1974년 유엔군 중동 파견-> 1978년 이스라엘, 시나이 반도 이집트에 돌려줌 &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인정

* 1979년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 협정 체결.

 

7. 이후의 팔레스타인 분쟁사

1) 레바논 내전과 백향목 혁명

- 1975년 이슬람 좌익 연합과 기독교 우익 군부세력의 충돌로 레바논 내전 발발

-> 이스라엘, 시리아의 개입

-> 이후 30년 가까이 레바논은 시리아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된다.

-> 2004년 백향목 혁명으로 시리아 군은 레바논에서 철수 하게 된다.

 

2)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협정

* 1979년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협정 체결

 

3)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

* 1988년 가자지구에 이슬람저항운동, 하마스가 창설

-> 그해 11월 팔레스타인국민협의회(PNC) 독립 선언

 

4) 마드리드 중동평화협정

* 1964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설치

* 1991년 마드리드 중동평화협정 시작

* 1993년 이-팔 오슬로 협정 체결

*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A) 수립

 

5) 이스라엘, 가지지구 공격

* 2003년 이스라엘 가자지구 침공

* 2008년 이스라엘이 가자를 공습

* 2012년 가자 공습

* 2014년 가자 공습

 

cf) 시오니즘, 유다이즘

* 시오니즘

-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띠며 이를 위해 폭력도 서슴치 않는다

* 유다이즘

- 평소 경건한 생활을 위해 <성경>과 전통을 중시하는 유대인 고유의 사상이다

 

8. 세계 종교인 분포

* 세계 인구 71억명 중

- 33% 기독교(235천만명)/ 23% 이슬람교(164천만명)/ 13.8% 힌두교(98천만명)/ 7.1% 불교(59백만명?)/ 23.2% 기타 및 무종교(165천만명)/ 0.21% 유대교

 

* 일본인의 57%, 중국인의 52.2%가 종교가 없다

 

* 기독교 중에서

51% 가톨릭(12억명)/ 18.6% 개신교(44천만명)/ 정교회(28천만명)/ 성공회(91백만명)/ 기타 기독교 분파(37천만명)

 

* 이슬람교 중에서

83~88% 수니파(136천만~144천만명)/ 11~16% 시아파(18천만~26천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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