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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유라시아사

<교양인을 위한 중앙아시아사> 정리

by iamcool 2022.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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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을 위한 중앙아시아사

by bluebird(19122일 정리 완료)

 

 

** 간단 정리

 

1. 시대 구분

1) 아리아 시대(이슬람 이전 시대)

- 기원전 5,000년경부터 기원전 7세기경까지의 기나긴 선사시대와 그 이후부터 기원후 9. 10세기까지의 역사시대

* 아라아계 민족(주로 이란계)/ 다양한 종교(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등)

* 초원에는 강력한 유목국가, 오아시스에는 도시 국가

 

2) 투르크 이슬람 시대

- 기원후 9. 10세기부터 18, 19세기에 이르는 1,000년간

* 투르크화+ 이슬람화

* 14-15세기에 최전성기-> 17, 18세기 정체기-> 18, 19세기 러시아와 청에 정복됨

 

3) 근현대

* 20세기 소련과 중국에 종속

* 1990년대 초 소련 붕괴하면서 중앙아시아 5개국이 독립

*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한족화가 급속히 진행됨

 

2. 중앙 아시아의 투르크화(-> )

: 6-8세기 초원지대-> 12-13세기 파미르 동쪽 오아시스 지대-> 16세기 파미르 서쪽 오아시스 지대

*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는 먼저 초원 지대에서 시작되어 아리아계 유목민을 대신해 투르크계 유목민이 진출함에 따라 6세기부터 8세기에 이르기까지 완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파미르 동쪽의 오아시스 지대에서는 위구르의 서천과 카라한조의 성립과 동시에 12, 13세기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투르크화가 완료 되었다.

* 파미르 서쪽의 오아시스 지대는 카라한조 시대에 투르크화가 진전을 보았고, 16세기 우즈베크의 진출이 투르크화를 더욱 진행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 지역에는 마지막까지 이란적 요소가 뿌리 깊게 남아 있던 탓에 완전한 투르크화는 실현하지 못했다.

 

3.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 )

1) 7-8세기 제1단계

- 아랍군의 중앙아시아 정주 지대 정복과 소그드인 등 아리아계(이란계) 정주민의 이슬람화

-> 소그드 지방과 토하리스탄 등 파미르 서쪽 오아시스 지대의 이슬람화가 급속히 진전

 

* 705-715년 우마이야조 장군 쿠타이바의 중앙아시아 원정

->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에 큰 영향

* 751년 압바스조, 당과의 탈라스 전투에서 승리

-> 중앙아시아의 지배를 확고히 함

 

2) 9-10세기 제2단계

- 이슬람화된 이란계 중앙아시아 정주민의 이란 이슬람 국가(사만조) 수립

-> 파미르 서쪽 오아시스 지대에는 이슬람만이 유일한 종교로 남게 되었다.

* 875년 중앙아시아 최초의 이슬람 국가 사만조 성립(875-999 혹은 819-999)

- 호라산과 트란스옥시아나가 중심

- 이슬람화된 이란계 정주민이 세운 국가

- 사만조는 투르크인 노예 군인을 적극 활용

 

3) 10-11세기 제3단계

-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유목민의 이슬람화와 투르크 이슬람 국가의 성립

 

(1) 사만조는 초원 지대 투르크계 유목민의 이슬람화에 기여했다.

(2) 카라한조도 서서히 이슬람화 되었다.

-> 카라한조는 파미르 동쪽과 서쪽 지역의 이슬람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4) 13-15세기 제4단계

- 투르크 이슬람 세계의 완성

 

* 13세기 전반 중앙아시아, 몽골제국의 일부가 됨

* 14세기 전반 중앙아시아의 몽골인 중 다수는 투르크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슬람을 믿고 있었다.

-> 이렇게 투르크화와 이슬람화된 몽골인들을 차가타이인이라고 부른다.

* 14세기 전반 몽골 차가타이 칸국의 몽골인들 중에 전통을 유지하던 모굴(동차가타이, 모굴 칸국)도 이슬람을 수용

* 15세기 마지막까지 불교를 믿었던 중앙아시아 동단의 투르판 분지 일대도 이슬람화한 모굴의 진출로 이슬람화한다.

-> 이로써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가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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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중앙아시아의 역사 >>

 

< 1, 중앙아시아란? >

 

1. ‘역사적 중앙아시아

* 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등질성을 띠고 있는 투르크 이슬람 세계를 역사적 중앙아시아로 규정

-> 과거 소련에 속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5개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

 

2. 지리적 특징

1) 지리적 특징: 광활한 사막, 고산준령, 극단적인 건조함

 

2) 인간이 거주할 수 있었던 두 부분

(1) 오아시스

* 농업을 중심으로 상업과 산업이 활발

-> 정주민의 세계/ 오아시스 성곽도시가 발전/ 도시문명 번성

* 오아시스와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육상 교통로인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 교류 활발

 

(2) 초원(스텝) 지대와 산간 목지

* 중앙아시아 북부 일대

* 유목민의 세계

 

3. 민족이라는 용어

*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민족

= 중앙아시아 밖에 사는 외부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계 언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에 의해 문화 활동을 영위해온 사람들을 가리켜 사용하는 편의적인 용어

* 이 책에서 민족이라는 용어는 언어를 중심으로 한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 중앙아시아의 인종

처음에는 아리아어(인도, 유럽어)를 사용하는 백색 인종(코카소이드)-> 9-10세기 경 알타이계 언어(투르크어, 몽골어, 만주어)를 구사하는 황색 인종(몽골로이드)가 들어오면서 혼혈화

 

4. 시대 구분

1) 아리아 시대(이슬람 이전 시대)

- 기원전 5,000년경부터 기원전 7세기경까지의 기나긴 선사시대와 그 이후부터 기원후 9. 10세기까지의 역사시대

* 아라아계 민족(주로 이란계)/ 다양한 종교(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등)

 

2) 투르크 이슬람 시대

- 기원후 9. 10세기부터 18, 19세기에 이르는 1,000년간

* 투르크화+ 이슬람화

* 14-15세기에 최전성기-> 17, 18세기 정체기-> 18, 19세기 러시아와 청에 정복됨

 

3) 근현대

* 20세기 소련과 중국에 종속(사회주의화)

* 1990년대 초 소련 붕괴하면서 중앙아시아 5개국이 독립

*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한족화가 급속히 진행됨

 

 

< 2, 아리아시대(이슬람 이전 시대)의 중앙아시아

 

1. 아리아 민족의 세계

* 처음에는 아리아 민족의 세계였다가 9, 10세기를 경계로 오늘과 같은 투르크 민족의 세계로 바뀌게 되었다.

 

1)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지대에서 다양한 인도, 유럽계 언어가 사용되었다.

a) 소그드어

* 인도, 유럽어족 가운데 인도, 이란어파의 중기 이란어에 속한다.

* 4-10세기 사료가 남아 있으나 그 뒤 사어가 되었다.

 

b) 호라즘어

*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남서부 호라즘 지방에서 호라즘인들이 사용하던 언어

* 중기 이란어

* 3-14세기경 사용되었으나 이후 사어가 되었다.

 

c) 박트리아어

* 토하리스탄에서 기원 전후 시기 박트리아 왕국이나 쿠샨 왕국 시대에 사용하던 언어

* 중기 이란어

* 기원 전후부터 7-9세기까지의 사료가 남아 있지만 그 후에는 사어가 되었다.

 

d) 사카어(호탄어와 툼슈크어)

* 곤륜 산맥 북쪽 기슭의 호탄과 툼슈크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사용되던 언어

* 중기 이란어

* 6-10세기까지의 사료가 남아 있으며 그 후에는 사어가 되었다.

 

e) 토하라어(쿠치어와 아그니어)

* 천산 산맥 남쪽 기슭의 쿠차, 카라샤르에서 투르판 분지에 이르는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사용되던 언어

* 인도, 유럽어족의 켄툼 어군

* 6-8세기 무렵까지 사용되었으나 이후 사어가 되었다.

 

f) 프라크리트어

* 곤륜 산맥 북쪽 기슭의 크로라이나(누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기원후 2-4세기 선선 왕국(누란왕국) 시대에 사용되던 언어

* 고대 인도어의 속어이다.

* 이 언어글 사용하여 쓰인 문서가 카로슈티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까닭에 이를 카로슈티 문서라고 부른다.

 

2) 기원전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나 산간 목지에서는 스키타이 등의 이란계 유목 민족, 즉 아리아 민족이 활약하고 있었다.

* 기원전의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는 스키타이와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대월씨, 사카 등의 이름으로 기록되던 유목 민족이 활동하고 있었다.

* 스키타이와 사우로마트의 자손은 오늘날 코카서스 지역의 오세티야 지방에 사는 오세트인들로 추정된다.

* 사카, 스키타이, 월씨가 모두 같은 아리아계(그중에서도 이란계) 유목민을 다르게 부른 것이라는 볼 수도 있다.

 

2. 초원의 유목국가

* 중앙아시아에서는 이미 청동기 문화 시대에 속하는 기원전 12세기 무렵부터 유목민의 활동이 시작

* 기원전 9세기경에는 타고 다니기 위한 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 기마 유목민

* 기원전 6세기에는 유목민을 중심으로 한 유목국가 탄생

 

1) 기원전 6세기 후반 흑해의 북쪽 대초원에 스키타이(=사카) 출현

* 200여년간 북쪽의 스키타이와 남쪽의 아케메네스 왕조가 대립

* 알렉산드로스의 북방 원정군 격퇴

* 동방에서 진출한 사르마타이(사르마티)에 밀려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기원전 3세기 중반 완전히 해체

 

2) 대월씨

* 처음에는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동쪽(하서회랑)에 유목

-> 기원전 2세기 흉노에 밀려 서쪽 우즈베키스탄 방면으로 이동하여 아무 강변의 토하라 지방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박트리아(대하)를 정복

* 또 같은 시기인 기원전 2세기경 오늘날 키르기스 부근에 오손으로 불리는 유목국가가 존재(코카소이드로 추정)

 

3) 기원전 2세기경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그 주인공이 이란계 유목민(스키타이, 대월씨)으로부터 알타이계(투르크계, 몽골계) 유목민으로 바뀌었다.

 

4) 흉노의 발흥(기원전 221-기원후 89, 310년간)

* 기원전 3세기 말,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오르도스 지방을 중심으로 발흥하여 주변에 있던 대월씨와 동호 등의 국가들을 격파하고 몽골 고원의 유목 지대를 통일

* 기원전 2세기 중반까지는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동쪽 오아시스 지대도 지배하여 한에 대항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 2세기 후반 한 무제는 장건을 서쪽의 대월지에 파견하여 동맹을 맺으려 했으나 실패

* 기원전 1세기 중반 분열

* 기원후 2세기 중반에는 내몽골 자치구의 동부를 본거지로 한 선비에게 몽골 고원의 지배권을 상실

* 분열한 흉노의 일부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쪽으로 이동

-> 핀족이나 슬라브 등의 민족과 융합되어 볼가 훈족이라는 새로운 민족을 형성하여 4세기 남러시아 초원에 등장

-> 5세기 아틸라를 따라 유럽에 칩입(흉노, 훈 동족설)

 

5) 선비(기원전 209-6세기)

* 기원전 2세기 중반 몽골 고원을 지배

* 3세기 전반 몽골 고원에서 누리던 지배권 상실하고 여러 부로 분열

* 4세기 북중국으로 이주하여 516국 시대를 열었다.

 

6) 유연(330-555, 220년간)

* 동호의 후예/ 투르크 몽골계 연합체

* 선비족 탁발부에 부속되어 있다가 이후 분화

* 4세기 말부터 5세기에 선비가 남하 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몽골고원에 유연이 출현

* 탁발부가 세운 대국과 대립-> 이후 북위와 대립

* 6세기 중반 돌궐에 멸망

* 6세기 유럽에 나타난 아바르가 유연이라는 설이 있다.

 

7) 고차국(487-541, 54년간)

* 5세기 초엽, 유연의 지배하에 정령칙륵이라고 불리는 유목민족이 존재

* 그들의 일부는 5세기말 유연이 쇠퇴하자 서쪽의 중앙아시아(준가르 초원)로 이동하여 고차국을 세웠다.

* 칙륵은 투르크라는 말의 음차

 

8) 돌궐(552-744, 200여년)

* 552년 돌궐의 성립

* 583년 수의 분열책으로 동돌궐(581-630), 서돌궐(581-657)로 분열

* 유목민족 최초의 문자 사용= 돌궐 문자

* 744년 위구르(카를룩, 위구르, 바스밀 연합세력)에 멸망

 

9) 위구르 제국(744-840, 96년간)- 중국 당 나라 시대

* 중국 안사의 난(755-763)에 개입

* 돌궐 문자 사용

* 840년 키르기스에 멸망

-> 위구르의 서천 & 정주화-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대의 투르크화 촉진(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대를 아리아 민족의 세계에서 투르크 민족의 세계로 변모시켜 나가게 된다)

 

3. 오아시스 지대의 국가- 아리아 시대에 강력한 통일국가가 없었다.

->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68페이지 참조

 

* 기원전 6000년기 투르크메니스탄 일부 지역에서 원시적인 농경생활을 시작

* 기원전 2000년기 이러한 초기 농경 문화는 청동기 시대에 전성기를 맞는다.

* 기원전 2000년기 중반 이후 이들의 문화는 급속히 쇠퇴했다.

* 기원전 2000년기 후반, 투르크메니스탄의 평야 지대와 무르갑 강변의 오아시스인 마르브 등지에서 새로운 농경 문화가 성립, 발전(아리아 민족으로 추정)

* 기원전 10-7세기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대에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오아시스 성곽도시)가 출현

-> 이들 도시가 동맹을 맺어 국가가 탄생

* 기원전 6세기나 4세기의 박트리아나 소그드가 국가라 부를 만 하다.

- 이때의 국가는 오아시스 도시의 연합체

 

1) 파미르 고원의 서쪽 지역의 오아시스 도시 연합체가 있었던 지역

* 소그드 지방(소그디아나): 중앙아시아 오아시스의 중심지/ 후대에 티무르 제국의 발상지/ 실크로드가 교차하는 지역

* 호라즘 지방: 이란계 호라즘 왕국

* 토하리스탄 지방: 박트리아 왕국, 쿠샨 왕국

* 페르가나 지방: 시르 강 상류 유역/ 18세기 코칸드 칸국

 

2) 파미르 고원의 동쪽 지역(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오아시스 도시 연합체가 있었던 지역

* 카슈가르(카쉬가르)

* 호탄: 호탄 왕국

* 크로라이나: 누란 왕국, 선선 왕국

* 쿠차, 카라샤르, 투르판: 고창 왕국, 천산 위구르 왕국

 

3) 쿠샨 왕국(60-480, 위키는 30-375)

- 아리아 시대에 오아시스 국가 중 유일한 강력한 국가

 

* 서기 1세기 중반, 토하리스탄 지방에 출현한 오아시스 국가

* 쿠샨인은 토하리스탄 토착 이란계 정주민으로 추정

* 카니슈카 왕(124-147) 때 전성기: 대승불교와 불상이 탄생, 힌두교의 대중화

* 241년경 사산조 페르시아에 멸망

 

4. 주변 세력의 진출

 

1)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 한나라, 당나라 시대에 동투르키스탄 지역에 진출

: 흉노나 돌궐 등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대를 지배했던 유목국가를 약화시킬 목적으로 중국이 중앙아시아에 진출하게 된다.

 

(1) 한나라의 서역 경영

* 기원전 170년대 흉노, 서역 국가들을 지배(동북도위 설치)

* 기원전 2세기 후반, 전한의 무제(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의 서역 경영

- 기원전 139년 장건의 실크로드 개척

- 기원전 121-119년 한무제, 서쪽 변방에 하서사군 설치

- 기원전 104년 대완 원정

* 기원전 60년 쿠차 근처에 서역도호부 설치

* 서기 73년 후한, 반초 서역 파견

* 서기 97년 감영, 대진국(로마 제국)에 파견-> 안식국(파르티아)를 거쳐 조지국(시리아)까지 도달

* 130년 이후 한의 서역 지배 유명 무실화

 

(2) 당나라의 서역 경영

* 630년 당, 하물(하미) 복속시키고 이주를 설치

* 640년 당, 투르판 분지의 한인 왕국이었던 고창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곳에 서주를 설치하였다.

* 천산 산맥 북쪽 기슭에 진출하여 짐사(Jimsar)의 북쪽에 정주를 설치했다.

* 당의 서역 지배의 중심은 안서도호부였다.

: 640년 고창에 설치-> 648년 쿠차로 이전

: 안서사진(카라샤르, 쿠차, 호탄, 카슈가르)이 거점

-> 파미르 동쪽의 오아시스 지대 완전 장악

* 657년 당, 서돌궐을 멸망시키고 702년에 정주에 북정도호부를 설치

-> 중앙아시아 초원지대 장악

* 751년 당, 파미르 서쪽 오아시스 지대를 지배하고 있던 압바스조와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

-> 이후 당은 서역에서 서서히 후퇴

 

2) 서아시아 세력의 중앙아시아 진출- 기원전 6세기 중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서기 3세기 중반 사산조 페르시아-> 서기 7세기 이슬람 세력

* 기원전 6세기 중반, 파미르 서쪽의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대는 이란을 본거지로 하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 서기 3세기 중반에는 이란의 사산조 페르시아가 쿠샨 왕국을 공략하여 토하리스탄을 지배했다.

* 서기 7세기에 사산조를 쓰러뜨린 이슬람 세력이 이란을 거쳐 중앙아시아에 도달

-> 8세기부터 본격적인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가 시작

 

3) 유럽의 중앙아시아 진출

=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이 유일/ 중앙아시아에 진출했지만 정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 원정의 결과로 박트리아 왕국이라는 그리스인을 지배자로 하는 헬레니즘 국가가 타생

 

* 기원전 4세기 후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 329년 알렉산드로스, 중앙아시아에 출현

-> 토하리스탄 제압/ 마라칸다(사마르칸트) 점령/ 시르 강변에 알렉산드리아 건설(아마도 현재의 호젠트)/ 시르강 북쪽의 스키타이 용병과 전투

-> 327년 알렉산드로스, 군대를 토하리스탄에 남겨 두고 떠남

* 알렉산드로스 사후 토하리스탄은 셀레우코스 왕국(시리아왕국, 이란- 소아시아, 기원전 312-기원전63)이 지배

* 기원전 246년 그리스인을 지배자로 하는 박트리아 왕국의 탄생(BC 246- BC 138)

-> 기원전 2세기 중반 대월씨에 의해 멸망

 

 

< 3, 투르크이슬람시대의 중앙아시아: 투르크화와 이슬람화 >

 

* 투르크화란 기본적으로 중앙아시아에 투르크 민족이 진출한 결과, 중앙아시아의 민족들이 기존에 쓰고 있던 자기네 언어 대신에 투르크어를 사용하게 된 현상을 가리킨다.

* 이슬람화란 중앙아시아에 이슬람 세력이 진출한 결과, 중앙아시아의 주민들이 기존에 믿던 여러 종교 대신에 이슬람을 믿게 된 현상을 의미한다.

* 이슬람화의 경우, 이슬람을 믿는 아랍 민족이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7세기부터 시작되어 실로 800여 년의 긴 세월을 거쳐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것이다.

 

1.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

1) 초원 지대의 투르크화

* 예로부터 스키타이와 사카 등으로 불리는 아리아계(이란계) 유목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 그러나 아리아계 유목민들은 기원전 3세기에 알타이계 유목민인 흉노의 압박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했다.

 

(1) 5세기말 투르크계 고차의 중앙아시아 진출

= 투르크 민족으로서 가장 일찍 존재가 확인되는 집단은 정령이라는 집단이다.

* 기원전 3세기 정령은 몽골 고원의 북부,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흉노의 지배를 받으면서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다.

-> 기원후 1세기 흉노의 지배를 벗어남

-> 2-3세기 선비가 활약할 당시에는 선비 거주지의 북쪽에서 세력을 키움

-> 3세기 후반 선비가 붕괴하자 고차정령이라는 이름으로 몽골 고원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 4세기 중반 정령칙륵이라는 명칭으로 등장(칙륵이란 투르크라는 음을 전사한 것)

-> 5세기 초엽 유연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5세기 말 유연이 쇠퇴하자 정령칙륵의 일부가 서쪽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준가르 초원)으로 이동하여 고차국을 세웠다.

-> 6세기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는 철륵이라는 유목민이 널리 분포

 

(2) 6세기-8세기 초원 지대는 돌궐과 위구르 등 투르크계 유목 국가의 지배하에 있었다.

->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의 투르크화 완결

 

2) 오아시스의 투르크화

- 9세기 초원 지대의 위구르가 붕괴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1) 위구르 멸망 후 일부 위구르족은 서진하여 몇 개의 나라를 세웠다.

* 840년 위구르, 키르기스에 의해 멸망

* 위구르 제국 멸망 후 일부 위구르족은 서진하여 몇 개의 나라를 세웠다.

->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 이주 후 위구르인들은 위구르 문자라고 부르는 새로운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 그러나, 이란어 계열인 타지크 민족은 20세기에 타지크 사회주의 공화국(현 타지키스탄 공화국)을 형성-> 파미르 서쪽의 오아시스 지대가 완전히 투르크화 되지는 못했다.

 

a) 감숙성에 감숙 위구르(하서 위구르, 감주 위구르, 간수왕국, Gansu Uyghur Kingdom/ 894-1036 혹은 1026/ 142년간) 성립

 

-> 1026년 탕구트 출신의 이계천(서하 태조)에 의해 멸망

-> 이들의 후손은 유구르족

 

b) 천산 동부 지방에 작은 위구르 국가 성립: 천산 위구르 왕국(= 서주 위구르, 화주 위구르, 고창 위구르, 아이슬란 위구르, 서 위구르 왕국/ 848-1036, 188년간)

-> 천산 위구르 왕국 시대에 이 지역의 투르크화

 

* 12세기 카라키타이의 지배를 받음

-> 13세기 초 몽골에 복속됨.

* 천산 위구르 왕국의 위구르인들이 국제적인 상인으로 활약

 

c) 천산 북쪽에 있던 투르크계 카를루크족에 흡수되어 카라한 왕조(=Karakhanid/840-1212, 372년간)를 세움

- 천산 서부의 추 강변에 있는 벨라사군에서 독립

- 카라한조는 파미르 동쪽 지대와 서쪽 지대의 투르크화에 영향을 미침

-> 카라한조 시대에 파미르 서쪽 오아시스 지대의 투르크화가 진전

 

* 9세기 말 카슈가르 정복-> 10세기 후반 호탄에 원정군 파견, 11세기 초 호탄 정복-> 11세기 중반 쿠차 정복

* 999년 가즈나 왕조와 연합하여 이란계 사만왕조를 멸망시킴

-> 카라한조가 파미르 서쪽 오아시스 지대를 지배

* 1047년 파미르를 경계로 동, 서로 분열되어 셀주크조, 카라키타이조, 호라즘 샤조 등의 지배를 받음.

* 12세기 초 동, 서 모두 멸망

 

cf) 위구르 문자

* 원래 초원 시대 위구르인들은 돌궐 문자를 사용했다.

-> 위구르의 서천 이후 소그드 문자를 차용한 위구르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13세기 몽골 문자로 발전

-> 17세기 만주 문자로 발전

 

(2)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대의 투르크화 과정 요약

* 파미르 동쪽의 오아시스 지대에서는 위구르의 서천과 카라한조의 성립과 동시에 12, 13세기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투르크화가 완료 되었다.

* 파미르 서쪽의 오아시스 지대는 카라한조 시대에 투르크화가 진전을 보았고, 16세기 우즈베크의 진출이 투르크화를 더욱 진행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 지역에는 마지막까지 이란적 요소가 뿌리 깊게 남아 있던 탓에 완전한 투르크화는 실현하지 못했다.

*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지대의 투르크화는 유목민의 정주민화와 관계가 깊다.

- 위구르나 카라한조의 투르크 민족은 정주 지대로 들어가 정착 생활을 하였다.

- 유목민의 문명화가 그들의 정주민화와 관련된다는 학설이 있다.

 

2.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

 

1) 7-8세기 제1단계

- 아랍군의 중앙아시아 정주 지대 정복과 소그드인 등 아리아계(이란계) 정주민의 이슬람화

-> 소그드 지방과 토하리스탄 등 파미르 서쪽 오아시스 지대의 이슬람화가 급속히 진전

 

* 705-715년 우마이야조 장군 쿠타이바의 중앙아시아 원정

-> 파미르 서쪽 오아시스 지대의 이슬람화에 큰 영향

* 751년 압바스조, 당과의 탈라스 전투에서 승리

-> 중앙아시아의 지배를 확고히 함

 

2) 9-10세기 제2단계

- 이슬람화된 이란계 중앙아시아 정주민의 이란 이슬람 국가(사만조) 수립

-> 파미르 서쪽 오아시스 지대에는 이슬람만이 유일한 종교로 남게 되었다.

 

* 875년 중앙아시아 최초의 이란 이슬람 국가 사만조 성립(875-999 혹은 819-999)

- 호라산과 트란스옥시아나가 중심

- 이슬람화된 이란계 정주민이 세운 국가

- 사만조는 투르크계 노예 군인을 적극 활용 & 노예를 압바스조에게도 보냄

 

3) 10-11세기 제3단계

-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유목민의 이슬람화와 투르크 이슬람 국가의 성립

(1) 사만조는 초원 지대 투르크계 유목민의 이슬람화에도 기여했다.

(2) 카라한조도 서서히 이슬람화 되었다.(10세기 카라한조의 군주가 먼저 개종)

-> 카라한조는 파미르 동쪽과 서쪽 지역의 이슬람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 11세기 초 카라한조, 불교 국가 호탄 정복

* 11세기 중반 카라한조, 쿠차 정복

* 다만 파미르 동쪽 지역에는 카라한조 시대에도 불교가 왕성한 천산 위구르 왕국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 때문에 중앙아시아 전 지역의 이슬람화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4) 13-15 세기 제4단계

- 투르크 이슬람 세계의 완성

 

* 13세기 전반 중앙아시아, 몽골제국의 일부가 됨

-> 그러나 몽골인들은 투르크화, 이슬람화 되어 갔다.

* 14세기 전반 중앙아시아의 몽골인 중 다수는 투르크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이슬람을 믿고 있었다.

-> 이렇게 투르크화와 이슬람화된 몽골인들을 차가타이인이라고 부른다.

* 13세기 차가타이 칸국의 성립(1226-1347, 121년간)

* 1347년 차가타이 칸국 동, 서로 분열

* 14세기 전반 몽골 차가타이 칸국의 몽골인들 중에 전통을 유지하던 모굴(동차가타이, 모굴 칸국)도 이슬람을 수용

* 15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마지막까지 불교를 믿었던 중앙아시아 동단의 투르판 분지 일대도 이슬람화한 모굴의 진출로 이슬람화한다.

-> 이로써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가 완성

 

 

< 4, 중앙아시아의 융성: 몽골 제국과 티무르 제국 >

 

1. 몽골 제국

* 1206년 칭기스 칸, 몽골제국 건국

* 1211년 금 정벌-> 1234년 금 멸망시킴

* 1219년 호라즘 정벌-> 1225년 호라즘 멸망시킴

* 1236년 조카 바투(1남 조치의 아들)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유럽 원정에 나섬.

* 1240년 몽골, 러시아 정복: 타타르의 멍에(1240-1480, 240년간)

* 1242년 우구데이 사망 후 바투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원정을 통해 얻은 광활한 지역을 조치가의 소령으로 정한 후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조치 울루스

* 12605대 칸 쿠빌라이 즉위(아리크 부케와의 투쟁에서 승리)

 

2. 차가타이 울루스의 자립

1) 1259-1304(45년간) 칭기스 일족의 내분이 있었다.

= 카이두(오고타이의 손자) <-> 쿠빌라이(툴루이의 4, 몽케 칸의 동생)

-> 1301년 카이두 패배하고 사망

* 1269년 탈라스 회맹

- 차가타이 가문의 바라크, 우구데이 가문의 카이두, 베르케 사후 조치 가문의 뭉케 테무르의 대리인이 탈라스에서 회맹하고 셋이서 제국의 속령이었던 마 와라 안나흐르를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바라크가 살해 당하자 차가타이 울루스는 카이두에 예속됨

-> 아리크 부케 아들들, 차가타이가 바라크의 아들 두아가 우구데이가 카이두에 합류하면서 카이두 세력과 쿠빌라이가 대립하게 된다.

* 1294년 쿠빌라이 사망 & 테무르 즉위

* 1300-1301년 몽돌 고원 서부와 알타이 일대에서 카이두와 원나라 군대가 충돌

-> 카이두 패배하고 사망

-> 차가타이 가문의 두아와 카이두의 아들 차파르는 테무르에게 복종을 맹세

-> 1305년 제국의 분쟁 종식

* 1306년 카이두의 후견을 받았던 두아(차가타이 후손)는 차파르(카이두의 아들)를 물리치고 차가타이가의 주권을 확립(1310년 차바르는 원나라에 투항)

-> 우구데이 칸국의 영토는 카안 울루스와 차가타이가 분할

* 케벡(두아의 아들)은 마 와라 안나흐르와 페르가나를 발전시킴

* 타르마시린(케벡의 동생)은 세미레치에 지방에 살던 아미르(유목 집단의 우두머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킨 나머지 그들의 손에 살해되고 만다.

* 마 와라 안나흐르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과 세미레치에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이 대립

 

2) 1340년대 차가타이의 분열

(1) 차가타이 칸국 1225 – 1340s

(2) 1340년대 동서로 분열

* 서 차가타이(1340s – 1370)-> 티무르에 의해 멸망, 티무르 제국(13701507) 성립

* 동 차가타이(= 모굴리스탄 칸국) 1340s1680s

 

cf) 마 와라 안나흐르, 세미레치에

* 마 와라 안나흐르= 트란스옥시아나

* 세미레치에= jeti su(현 카자흐스탄 남동부)

 

3. 티무르 제국의 성립(1370-1507)

 

1) 티무르 제국의 성립

* 1346년 유력한 아미르인 카자간이 서차가타이의 군주인 카잔 칸을 살해하고 실권을 잡았으나, 1358년 사냥 도중 암살되었다.

* 모굴리스탄의 투글루크 티무르 칸이 카자간이 암살 당한 후 혼란에 빠져있던 마 와라 안나흐를 두 번에 걸쳐 공격하여(1360, 1361) 차가타이 울루스를 재통일했다.

* 1360년 티무르는 투글루크 티무르의 휘하에 들어가 조상들의 소유지였던 케슈 주변의 땅을 얻고, 1361년 바를라스족의 지휘권도 위임 받았다.

*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미르 카자간의 손자인 아미르 후세인과 함께 모굴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활동을 개시하게 된다.

* 1365년 사마르칸트의 주민들이 진격해 들어온 모굴군을 상대로 도시 방어전을 펼치자, 티무르가 나서서 이들(사마르칸트 주민들)을 격퇴하였다.

-> 이후 티무르와 후세인이 대립하나 티무르가 승리하게 된다.

* 1370년 티무르, 마 와라 안나흐르를 중심으로 차가타이 울루스 서부 지역에 티무르 제국 성립

* 1376년 티무르, 반란을 일으킨 술두스 부족과 잘라이르 부족을 진압하고 해체시킴

* 1379년 호라즘 전역을 지배

 

cf) 케슈(현 샤흐리 샤브즈/ 사마르칸트 남쪽에 위치)

 

2) 티무르의 서방 원정

* 1335년 이래로 훌레구 울루스(일칸국)는 분열 상태에 빠져 있었다.

* 티무르는 1380년부터 일칸국의 계승 국가인 쿠르트조(Kartids), 사르베다르조(Sarbadars), 잘라이르조, 무자파르조를 차례로 정복

* 1395년 티무르는 톡타미슈(조치 울루스의 왕자)를 격파하고 볼가 강변의 수도 사라이를 파괴했다.

-> 킵차크 한국(조치 울루스)을 속주로 만들었다.

 

cf) Map of the post-Ilkhanate dynasties

https://ko.wikipedia.org/wiki/%EC%B6%94%ED%8C%90_%EC%99%95%EC%A1%B0#/media/파일:Chupanid_-_Jalayerid_dyansty_13371432_ad.PNG

 

https://en.wikipedia.org/wiki/Ilkhanate#/media/File:IranaftertheIlkhanate.png

 

3) 7년 원정

* 13997년 원정 시작

* 1401년 다마스쿠스 점령

* 1402년 오스만 제국과 앙카라 전투에서 승리

* 1403년 티무르, 제국 전역을 일족들에게 분봉

* 1405년 명 원정 시도하다 사망

 

cf) 티무르의 정복 활동(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170페이지)

* 1370-72 모굴 원정

* 1372-73 호레즘 원정

* 1375-77 킵차크 초원 원정

* 1384-86 서부 이란 및 캅카스 원정

* 1386-95 이란 및 킵착 초원 원정(1395년 주치 울루스의 사라이 파괴)

* 1398-99 인도 원정

* 1399-1404 7년 원정(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술탄 바야지드 생포)

* 1404-1405 중국 원정(1405년 티무르 사망)

 

4. 티무르의 후계자들

1) 3대 샤 루흐 때 전성기

* 1405년 수도를 헤라트로 이전(사마르칸트-> 헤라트)

 

2) 7대 아부 사이드

* 1451년 투르크멘 아르군족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우즈베크의 아불 하이르 칸의 도움을 받아 사마르칸트 정복

* 1458년 제국의 재통일 완수

* 1469년 백양조와의 전투 중 살해 당하였다

 

3) 1469년경? 사마르칸트 정권과 헤라트 정권으로 분열(티무르 제국 성립한지 약 100년 후)

* 8대 아흐마드는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한 마 와라 안나흐르만 확보했을 뿐, 호라산은 우마르 샤이흐가의 후세인이 헤라트의 후견에 힘입어 통치하게 되었다.

* 14948대 아흐마드 사망 후 왕자의 난 발생

- 구세력인 바를라스족과 신흥 세력인 아르군족의 대립

* 1500년 우즈베크의 샤이바니 칸이 사마르칸트 정복

* 1507년 우즈베크족, 헤라트 정복

 

cf) 카라코윤루(1375-1468)와 아크코윤루(1378-1501)

(1) 카라코윤루(1375-1468, 흑양왕조)

* 오늘날 아제르바이젠, 아르메니아, 북서 이란, 동터키, 북동 이라크에 있었던 시아파 무슬림 오구즈 튀르크 국가이다.

* 백양왕조에 멸망

 

(2) 아크코윤루(1378-1501, 백양왕조)

* 오늘날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동부 터키, 이란의 부분, 북부 이라크를 통치하던 페르시아 수니 오구즈 투르크 부족 연합이다.

* 흑양 왕조를 통일하였으며, 훗날 사파비 왕조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5. 샤이반조의 시대

 

** 간단 정리 (1)

* 15세기 전반 차가타이 칸국의 white hordes에서 우즈베크라 불리는 유목 집단이 활동

* 1428년 아불 하이르가 오늘날 카자흐스탄 지역에 우즈벡 칸국(1428-1471)을 창립

* 아불 하이르에 반발하여 기레이와 자니 벡이 일부 유목 집단을 이끌고 jeti su 지방으로 이주하여 카자흐 칸국(1456-1848)을 창립하고, 1511년 즉위한 카심 시기에 세력 확장

* 아불 하이르가 죽자 우즈베크 유목민들은 앞서 모굴리스탄 변경으로 본거지를 옮긴 카자흐에 합류했다.

* 1500년 우즈벡인, 서투르키스탄으로 대거 이주

 

** 간단 정리 (2)

* 1428-1471 우즈벡 칸국-> 1506-1785 부하라 칸국= 1506-1598 샤이바니조+ 1599-1785 잔조-> 1785-1920 부하라 에미레이트(망기트조)

* 1465-1848 카자흐 칸국

* 1511-1920 히바 칸국(호라즘)

* 1709-1876 코칸드 칸국(페르가나)

 

1) 우즈벡 칸국과 카자흐 칸국의 성립

* 15세기 전반에 조치 울루스 동부(차가타이의 white hordes)에서는 우즈베크라고 불리는 유목 집단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 1430-31년 조치의 다섯째 아들 시반의 후예인 아불 하이르, 호라즘 정복하고 시그낙, 사우란, 우즈켄트 등지를 장악

-> 1428-1471 Uzbek Khanate의 성립

* 1446년 아불 하이르는 킵차크 초원 동부를 통일

-> 1466년 아불 하이르, 시르 강 중류 지역의 오아시스 도시를 지배

-> 주치의 후손 기레이와 자니 벡이 아불 하이르에 반발하여 이곳에 살던 유목 집단을 이끌고 텐산 북방의 모굴리스탄 초원(jeti su)에 이주했는데, 그들을 우즈베크 카자흐 또는 카자흐로 불렀다.(-> 오늘날 카자흐 민족의 기원)

= Kazakh Khanate 1465-1848

* 아불 하이르가 죽자 우즈베크 유목민들은 앞서 모굴리스탄 변경으로 본거지를 옮긴 카자흐에 합류했다.

* 1511년 카자흐, 카심 칸 즉위

- 카자흐는 자니 벡의 아들인 카심 칸의 치세에 시르다리야 북방의 초원을 장악하고 그 이남 지역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 16세기 초 모굴은 우즈베크에게 타슈켄트를 빼앗기고 카자흐에게 본거지인 이리 강(일리강)도 넘겨주면서 활동의 중심을 타림 분지의 오아시스 지대로 옮겼다.

-> 17세기말 준가르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가 1759년 청조에 의해 정복당하고 만다.

 

cf) 시브르 칸국(1468-1598)

: 아불 하이르 칸과 함께 남하하지 않은 샤이반의 다른 후손들은 시비리 칸국을 다스렸다.

 

cf) 1440-50년 키르기스, 오이라트의 압력을 피해 예니세이 강 상류에서 텐산 북방으로 남하

 

2) 샤이바니조의 성립

= 우즈벡의 남하와 부하라, 히바, 코칸드 칸국의 정립

 

* 아불 하이르의 손자 무함마드 샤이바니(1451-1510)가 분열된 유목민을 재통합

-> 1500년 티무르조의 사마르칸트 정복하고 정착= 샤이반조/ 우즈베크인, 서투르키스탄으로 대거 이주

-> 1507년 티무르조 헤라트 정권 멸하고 호라산까지 지배영역을 넓혔다.

-> 1510년 사파비조의 샤 이스마일과 전투를 벌이다가 메르브 전투에서 사망

 

cf) 무갈조의 성립

* 1512년 티무르가의 바부르는 우즈베크군에게 패배한 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부터 인도로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다.

-> 1526년 파니파트에서 로디조군을 격파하고 델리와 아그라를 점령하여 무갈조를 창건

 

3) 부하라 칸국(1506-1785)

= 1506-1598 샤이바니조+ 1599-1785 잔조

* 1557년 압둘라의 통일 이후 부하라 칸국으로 불림

: 부하라가 거점이었기 때문에 16세기 이후 부하라 칸국이라고 부른다.

* 1583년 압둘라, 칸으로 즉위

* 1588년 헤라트 점령하고 더 나아가 호라산 전역을 지배

* 1593-94년 히바 칸국 지배하에 있던 호라즘을 정복

* 1598년 압둘라 사망 후 혼란

* 1599년 샤이반조의 남계 혈통이 단절되자 압둘라 2세의 조카인 바키 무함마드가 즉위하여 새 왕조인 잔조(Janid dynasty/ 아스트라한조를 계승)를 개창

* 1740년 이란의 나디르 샤(아프샤르 왕조의 창시자)가 마 와라 안나흐르를 정복하면서 잔조는 쇠망

 

cf) 자니 왕조= 토카이 티무르 왕조= 아슈타르칸 왕조

 

cf) Emirate of Bukhara(1785-1920)

* 1747년 나디르 샤가 죽고 망기트조가 권력 장악

* 1785년 칭기스칸계가 아닌 망기트조가 수립

 

4) 호라즘 지방에 히바 칸국의 성립(1511-1920)

* 1510년 샤이바니 죽음

* 1512년 아불 하이르 칸의 직계가 아닌 다른 가계에 속한 일바르스 칸이 호라즘 지방에서 정권을 장악

* 1740년 히바 칸국, 나디르 샤의 침공을 받음

* 18세기 왕권이 약화 되었으며, 우즈베크의 콩기라트족이 재상이 되어 실권을 장악했다.

* 1804Kongrad dynasty 성립

* 1873년 러시아가 정복하여 러시아 제국의 보호국이 된다.

* 1920년 멸망

 

5) 페르가나에 코칸트 칸국의 성립(1709-1876)

* 1733년 밍 부족(우즈베크족의 한 지파)의 수령 압둘 카림 비이 부하라 칸국으로부터 독립, 코칸트 칸국의 성립

* 1763년 코칸트 칸국에서 이르다나 비이, 스스로 칸을 칭함

 

cf) 세 나라 모두 칭기스 칸의 혈통을 잇는 칸가의 힘은 약했으며 실권은 우즈베크 아미르들의 수중으로 넘어가 있었다.

 

6. 유목 정권의 중앙아시아 지배

* 16세기 이후 중앙아시아는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가장 큰 원인은 유목민이 갖고 있던 군사적 우월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 5, 근대의 태동: 식민지 경험, 혁명, 민족 >

 

1. 강대국의 중앙아시아 지배의 시작

 

1) 18-19세기 청의 동투르키스탄(= 신강) 정복

* 청조는 중국 전역, 몽골, 티베트로 영토를 확장한 후 18세기 중엽에 준가르의 내분을 틈타 이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다.

* 1758년 타림 분지 전역을 점령

* 1759년 동투르키스탄을 신강이라는 이름으로 청조의 새로운 영토에 편입

* 1865-1877 야쿱 벡 정권 성립

- 1870년 코칸드의 군인 야쿱 벡이 신강에서 정권을 탈취하여 강력한 무슬림 정권을 유지하기도 했으나, 1878년 청조는 이를 재정복하고 1884년 신강성을 설치했다.

 

2) 19세기 러시아의 서투르키스탄(= 러시아령 투르키스탄+ 카자흐 초원) 정복

* 1820년대 러시아는 소, 중쥐즈에 직접 통치를 도입

* 1847년 러시아, 대쥐즈 병합-> 카자흐 초원은 러시아의 일부가 되었다.

* 1891년부터 카자흐 초원은 옴스크에 소재한 스텝 총독부 관할 아래 놓이게 된다.

* 1865년 코칸드 칸국의 타슈켄트를 점령하고 1867년 이곳에 투르키스탄 총독부를 설치했다.

* 1868년 러시아가 부하라 아미르국을 정복하고 1873년 러시아 보호국으로 만든다.

* 1873년 러시아가 히바 칸국을 정복-> 부하라와 히바는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다.

* 1876년 코칸드 칸국 멸망

* 1881년 유목 투르크멘에 대한 괴크테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은 완료되었다.

 

cf) 소쥐즈, 중쥐즈, 대쥐즈

https://en.wikipedia.org/wiki/Zhuz

 

2. 러시아의 지배의 실상: 제국이 가져온 근대와 모순

* 옴스크의 스텝 총독부에서는 내무부 관할하의 민정, 타슈켄트의 투르키스탄 총독부에서는 육군부 관할하의 군정이 시행되었다.

-> 치안과 징세에 중점을 두었으며 무슬림 사회의 전통적인 제도들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간섭하지는 않았다.

* 공업화와 도시화, 공교육의 보급

* 중앙아시아에 러시아 농민을 입식 시킴

-> 러시아 내륙의 경작지 부족을 보충하고 중앙아시아에서 재배되는 면화를 러시아 면화 공업의 원료로 사용

-> 주민들이 쫓겨나기도 했으며 유목민의 전통적인 유목 루트가 차단되기도 했다. 면화 생산의 과도한 확대로 식량 생산이 줄어들었으며 기근의 피해도 심각해졌다.

 

3. 러시아 제국 지배하의 중앙아시아 사람들

 

1) 러시아 지배에 대한 저항

* 1837년부터 카자흐의 통일을 목표로 부자 240년간 계속된 케네사르의 반란

* 1892년 투르키스탄에서 일어난 타슈켄트의 콜레라 폭동

* 1898년 안디잔 봉기

 

2) 카자흐 초원의 민족 운동

- 카자흐 초원에서는 러시아와 유럽 문명을 수용하여 카자흐 사회의 발전을 지향하는 카자흐 민족운동의 흐름이 형성되었다.

* 카자흐 지식인 1세대의 대표 초칸 발리하노프

- 러시아 방식의 교육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

* 20세기 초 오렌부르크 등에 모여 민족운동을 전개

 

3) 투르키스탄의 자디드 운동

- 투르키스탄에서의 개혁 운동은 이슬람 개혁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무슬림 사회로서의 발전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 1880년대 기존의 마크탑 대신에 새로운 방식의 학교를 보급하고 이를 통해 러시아 제국내 무슬림들의 지위 향상을 도모하려는 교육 개혁 운동이 확산되었다.

* 여기에 찬성하는 개혁주의자들을 자디드, 그들의 운동을 자디드 운동이라고 부른다.

-> 이 안에서 투르키스탄의 자치를 요구하는 투르키스탄주의 운동이 출현하게 된다.

 

4. 제국의 붕괴와 러시아 혁명: 중앙아시아의 소비에트화

1) 세 차례의 러시아 무슬림 대회

* 1905년 러시아 혁명 발발

* 세 차례의 러시아 무슬림 대회 개최

- 1905년 제1, 1906년 제2, 1907년 제3

* 1907년 제정의 반동은 무슬림 민족 운동의 발전을 크게 악화 시켰다

 

2)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 이족인 동원령 반포

-> 1916년 반란이 발생

 

3) 19172월 혁명 발발

-> 니콜라이 2세 퇴위 & 임시정부 수립

-> 투르키스탄 총독부도 기능 정지

* 오렌부르크에서는 알리한 보케이한이 주도하는 카자흐인 독립 정당 알라슈당이 결성

* 투르키스탄에서는 자디드 지식인들이 투르키스탄의 자치를 목표로 슈로이 이슬라미야’, ‘투르크 연방 주의자당을 결성

 

4) 191710월 혁명 발발

-> 레닌이 이끄는 볼세비키가 정권을 잡음

-> 타슈켄트 소비에트 정권 수립

* 11월 투르키스탄의 코칸드에 투르키스탄 자치 정부 출범

-> 타슈켄트 소비에트로부터 반혁명으로 낙인찍혀 적군과 아르메니아인 부대에 의해 괴멸됨

* 12월 오렌부르크에서 보케이한을 수반으로 하는 알라슈 오르다 자치 정부 수립

-> 1920년 알라슈 오르다 활동 중지

* 1920년 부하라와 히바에 인민혁명이라는 형태로 소비에트 정권이 탄생

 

5) 러시아 혁명의 결과, 과거 러시아 제국에 속했던 중앙아시아에는 키르기스(카자흐)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20-1936), 투르키스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18-1924), 호라즘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1920-1924),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1920-1924)이 성립되었다.(129페이지 참조)

 

cf) 소비에트 초기의 중앙아시아 국가의 수도

* 키르기스(카자흐)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1920-25 오렌부르크-> 1925-29 키질오르다-> 1929-36 알마아타

* 투르키스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타슈켄트

* 호라즘 인민 소비에트 소비에트 공화국

: 히바

*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

: 부하라

 

5. 중앙아시아 민족별 국경 확정: ‘민족국가의 탄생

1) 1922년 소연방이 성립되고 중앙아시아 남부 지역을 휩쓴 바스마치 운동이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대부분 진압됨

-> 중앙아시아에 새로운 행정 구분을 도입할 필요성이 제기

 

2) 1924-1925년 중앙아시아 민족별 국경 획정= 2의 혁명

* 투르키스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호라즘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을 해체하고 이들 영역을 민족별로 재편성하여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타지크 자치공화국, 카라 키르기스(후에 키르기스) 자치주로 만들고, 키르기스(후에 카자흐) 자치 소비에트 공화국의 남부 경계선의 위치도 재설정하였다.

* 국경획정 이후 근대적인 민족으로서 우즈베크인과 타지크인이 성립되었다.

* 이후 소련령 중앙아시아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이라고 불리게 된다.

 

6. 20세기 전반기의 신강

* 1911년 중국, 신해혁명/ 1912년 중국 임시정부(1912-1913) 수립 & 청 멸망

* 1912-1944년 신강의 군벌 통치(양증신, 금수인, 성세재)

* 1933년 호탄에서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선포(1933-1934)

* 1944년 삼구혁명

-> 신강성 연합 정부 발족(동투르키스탄 공화국/ 1944-1949)

-> 1949년 신강성 정부는 인민정부를 따를 것을 표명했다.

* 1949년 신강 인민정부 설립

 

 

 

 

<< 2부 중앙아시아의 사회 >>

 

< 6, 유목 민족 >

 

1. 기마 유목민의 등장

- 기원전 1000년 전후 유목민의 출현, 기마 문화 형성

* 중앙아시아 북부 초원 지대는 예로부터 유목민들이 주역을 담당했던 세계였다.

* 기원전 9세기경 승마가 일반적으로 보급되어 전업 유목민이 등장했다.

 

2. 유목국가의 형성

* 스키타이

- 군사 집단 인 왕족 스키타이가 중심

* 유목민의 교역은 견마교역이라 부른다.(= 비단, = )

 

3. 유목국가의 구조

1) 흉노 국가 구조-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39 페이지 참조

* 선우 아래 24장이 있다.

-> 이들은 모두 만기라고 불렀다.

* 흉노 국가는 십진법에 기초한 사회, 정치, 군사 조직을 갖추고 있었으며, 군주를 중심으로 좌우에 양 날개를 배치하고 각각 영지와 영민을 소유한 24명의 만기와 이들에게 복속하는 집단들로 구성된 엽합체였다.

* 선우는 반드시 연제씨에서 선출되었고 그의 부인도 이미 정해진 복수의 혼인 씨족으로부터 맞아들였다.

* 흉노는 샤머니즘을 믿었다.

 

2) 이러한 흉노의 국가 체제는 그후 유라시아 초원을 차지하게 되는 모든 국가들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3) 돌궐의 구조

* 투르크 유목민이 성스러운 산으로 추앙하는 몽골 고원의 우튜켄 산을 본거지로 삼아 동서로 동면가한과 서면가한을 배치했다.

* 군주인 카간은 아사나씨로부터 선출되었고, 그의 부인은 아사덕씨였다.

 

4) 몽골제국의 구조

(1) 칭기스칸은 95개의 천인대를 조직

* 알타이 산맥을 따라 12개의 천인대로 우익을 배치/ 대흥안령을 따라 12개의 천인대로 좌익으로 배치

* 나머지 천인대 중 우익 만인대를 몽골 고원 서부에, 좌익 만인대를 몽골 고원 동부에 배치했으며, 중앙에는 케식이라는 1만명의 근위 군단과 함꼐 칭기스가 위치해 있었다.

 

(2) 칭기스 개인의 재산은 고원 중앙부에 배속된 네 개의 오르두(천막)로 나뉘어 있었다.

4) 군주의 칭호는 흉노와 선비가 선우를, 유연 이후부터는 카간(가한) ~()을 사용했는데, 유목국가들에서는 특히 군주의 군사적, 정치적 역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4. 유목민의 문화

1) 기원전 6-5세기 스키타이는 대규모 고분, 황금 장식품, 제사 용품 등을 남겼다.

 

2) 돌궐 문자와 위구르 문자

* 돌궐 문자는 소그드 문자를 응용하여 만들었다.

* 위구르도 돌궐 문자를 계승하여 만들었다.

 

3) 유목민들은 외래 종교나 문화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 원래 유목민들은 샤머니즘을 믿었다.

* 돌궐에 불교 전래

* 위구르에 마니교 전파

* 투르크계 하자르는 최종적으로 이슬람을 수용했지만 한때 유대교를 받아들인 적도 있었다.

* 10세기 볼가 강 중류 지역의 불가르나 카라한조의 지배를 받던 투르크 유목민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

 

 

 

 

< 7, 오아시스 농경사회 >

 

1. 오아시스 국가의 형성

*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지대에는 기원전 10-7세기에 이미 대규모 관개망을 갖추고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2. 오아시스의 사회

1) 원래 아리아계 주민이 거주

-> 8세기부터는 당시까지 조로아스터교나 불교, 마니교 등을 믿던 사람들이 서서히 이슬람을 믿게 되는 이슬람화 현상이 진행

-> 9세기부터 투르크계 주민의 이주가 시작되어 서서히 투르크화해갔다.

 

2) 오아시스 경제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농업 생산이었다.

 

3) 오아시스에는 일찍부터 성벽을 갖춘 도시들이 형성되었다.

* 도시 안은 몇 개의 마할라(거주구)로 나뉘어 있었다.

* 부하라 성벽 안은 열두 개 지구로 나뉘어 있었고 각 지구에는 20-100세대로 구성된 마할라가 20개 정도 있었다고 한다.

* 마할라는 오늘날에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정신 공동체로 살아 있다.

- 마할라는 상호부조 시스템+ 교대로 잔치를 벌이는 걉(gap)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공간+ 최말단 행정단위

 

4) 아리아 시대 오아시스의 주민 구성

= 자유인/ 노예(매매의 대상)/ 부자유인(인질, 포로)

* 소그디아나 도시 주민들은 귀인(기사), 상인, 직공(소공업자)으로 나뉘어 있었다.

-> 상인과 귀인이 국제적인 교역 활동을 했다.

 

5) 당 시기에 이르기까지 대상 교역(아마도 국제 상업)은 소그드인이 독점

* 국제 상인의 존재는 타림 분지 주변의 오아시스 국가에서는 발견되지 않음

 

3. 유목국가와 오아시스 사회

= 유목국가가 강성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아이스의 부가 필요했다.

 

1) 흉노는 기원전 2세기 전반에 중앙아시아 원정 과정에서 월씨를 꺽고 파미르로부터 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2) 552년 돌궐이 건국되자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는 돌궐의 우익을 통괄하는 서면가한 이스테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 555년 돌궐은 천산 산맥 동부 남쪽 기슭의 투르판에 있던 국씨고창국을 이미 지배하에 두었다.

* 이스테미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에프탈을 격파하고(536-567) 소그디아나를 수중에 넣었다.

* 583년 돌궐이 동서로 분열되자 서돌궐이 고창국을 지배

 

3) 오아시스 국가는 유목국가에게 안전보장을 기대했다.

* 중앙아시아의 상업민 소그드인은 강대한 군사력을 지닌 유목국가의 출현으로 교통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 8,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

 

1. 동서 교섭사와 중앙아시아사

 

2. 이동의 이유와 이동의 장

 

1) 이동의 이유

(1) 정신적 요인

* 종교적 열정에 의한 이동- 순례 행위

 

(2) 자연적 요인

* 기후변동 등에 의해 원래 살던 거주지에 계속 살아가기가 불가능해진 탓에 부득이하게 이동할 수밖에 없는 경우

 

(3) 사회적 요인

* 경제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이동- 상업 교역 활동

* 본래 소속되어 있던 사회에 어떤 형태의 변혁이 발생하여 지위를 박탈당하거나 박해를 받은 이들이 이동(유대교도의 디아스포라 등)하는 경우

 

3. ‘실크로드

1) 실크로드의 3개 루트= 초원의 길/ 오아시스의 길/ 바다의 길

 

2) 초원의 길

* 대략 동쪽의 몽골 초원으로부터 알타이 산맥, 카자흐 초원을 통과하여 아랄 해와 카스피 해 북쪽을 우회해 러시아 초원에서 흑해 북쪽 연안과 중앙 유럽으로 나아가는 띠 모양의 긴 지역을 가리킨다.

 

2) 오아시스의 길

* 천산 북로

: 돈황- 하미- 투르판- 천산 산맥 북쪽- 이식쿨 호 북쪽 세미레치에 지방- 탈라스강 넘어 시르 강 유역

* 돈황- 하미- 투르판- 쿠차- 악수- 카슈가르- 페르가나- 트란스옥시아나- 소그드(사마르칸트, 부하라)- 아무 강 건너 이란 고원으로

* 돈황- 호탄- 야르칸드- 카슈가르- 페르가나- 트란스옥시아나- 소그드(사마르칸트, 부하라)- 아무 강 건너 이란 고원으로

 

4. 소그드 상인의 활동

* 소그드인은 오아시스의 길을 따라 각 지역으로 진출했으며 상업 활동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식민 활동을 전해했다.

* 각지에 퍼져 나간 소그드인들은 각지에 교역이산공동체를 형성했다.

* 중국 내 소그드인의 성씨는 안, , , 하 였다.

- 이들 성은 각각 안국(부하라), 사국(케슈/ 현 샤흐리삽스/ 사마르칸트 남쪽), 강국(사마르칸트), 하국(큐샤니야)처럼 소그드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5. 소그드인의 교역품

1) 중국과 유목 세력들 사이에 형성된 교역 관계는 견마 교역으로 총칭된다.

* 소그드인들은 유목 세력 지배층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 중앙아시아의 유목 국가로부터 중국으로 가는 사절 속에 상인들이 동행

* 소그드인들은 돌궐 유목 연합체의 두뇌 역할을 담당하였다.

 

2)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도시와 서방 및 남방에서 비단 수요가 증가

* 불교 사원과 불교 교단에서 비단이 필요

* 이들의 중개는 소그드인으로 대표되는 상인이 했다.

 

6. 위구르 상인의 등장

* 몽골 지배 시대에 유라시아에 뻗어 있던 교역 네트워크의 상당 부분은 무슬림 상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처음에 중앙아시아 동부 지역의 교역 루트에서는 불교를 믿는 위구르 상인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 9세기 이후 위구르가 오아시스 도시에 정주하고 목농 복합 국가를 형성하였는데, 당연히 위구르 왕국 치하에는 과거 소그드인들의 후손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7. 위구르 상인과 몽골

* 몽골과 위구르 상인은 공동 사업자가 되어 동서 물품 교역을 더욱 가속화시켰으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 13세기 후반 이후에는 중앙아시아 각지의 상업이 서방의 무슬림 상인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8. 대항해시대 이후의 중앙아시아 교역

= 몽골계 국가들의 분열과 붕괴 이후, 중앙아시아의 교역은 서서히 하강 곡선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왔다.

1) 16세기 초 티무르조가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서 유목 부족 우즈베크의 압력에 굴복

-> 이후 중앙아시아에 우즈베크, 카자흐, 위구르 등의 집단들이 각자의 정권을 수립하게 된다- 원거리 교역에 불리

-> 17세기 청조와 러시아 제국의 압력이 증가/ 청조 치하의 중앙아시아에 무슬림 반란으로 치안이 불안해짐

 

2) 유럽의 세력의 아시아 바다로의 진출이 시작되면서 해상 루트를 통해 대규모 교역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 유목민의 군사력이 유럽의 군사력에 뒤쳐짐

* 중앙아시아 세력들의 세분화와 다툼으로 폐쇄적으로 변함

-> 오아시스 정주민의 경제력 상실

 

 

< 9, 투르크이슬람사회의 성숙: 와크프 제도와 타리카 >

 

1. 이슬람 사회의 발전

1) 9세기경부터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

*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이슬람 문화가 이란 이슬람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것은 11세기 카라한조 시대였다.

 

2) 마 와라 안나흐르

(1) 짧은 호라즘 샤조의 지배기

(2) 몽골의 지배기

* 14세기 초 무렵에는 몽골의 지배자들이 투르크어를 사용하고 이슬람 사회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칸들도 생겨나게 된다.

(3) 티무르조 시대

* 이슬람 사회는 더욱 발전했으나 마 와라 안나흐르의 오아시스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란계 주민(타지크)들이 우세했고, 이란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 투르크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지배자들 밑에서 주민들은 페르시아어(타지크어)와 투르크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이중 언어 사용자들이었다.

(4) 그후

* 16세기 투르크계 우즈베크인이 이주

* 1924년 국경 획정 작업으로 인해 우즈베크 공화국과 타지크 공화국이 개별 민족 공화국으로 재탄생하기 전까지 투르크어와 페르시아어의 복합 문화가 계속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3) 사드르

* 티무르조에서 이슬람 사회의 종무장관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

* 사드르는 사이드(예언자 무함마드의 자손)와 울라마(법학자)를 통괄하고 와크프 운영을 감독하는 한편, 카디(법관)와 무흐타십(불법행위 조사 및 시장 감독관) 등 샤리아와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는 관리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었다.

* 티무르조는 사드르를 통해 이슬람 사회를 장악하려 했다.

 

2. 와크프 제도

1) 와크프란 이슬람법에서 규정한 재산 기진 제도이다.

* 와크프는 무엇보다 설정자의 신앙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으나 동시에 재산 보존의 의미도 간고 있었다.

 

2) 종교 및 공공 시설과 상업 시설 건설이 와크프 제도를 통해 이루어졌다.

* 위에서 서술한 종교 및 공공시설의 유지와 관리, 운영 역시 와크프에 의존하였다.

* 그밖에 와크프 제도가 타리카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3. 타리카

1) 타리카= 수피 교단

* 수피란 신과의 합일이라는 신비 체험을 추구하는 구도자

* 원래 수피즘은 압바스조 통치하에서 이슬람법이 체계화되어가던 8세기말-9세기, 신앙의 형식화에 대해 위기를 느끼고 행위의 내면성을 중시하는 운동을 전개한 데서 시작되었다.

* 수피즘은 11세기 말 수피로 전향한 가잘리의 노력에 힘입어 정통 이슬람 속에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 타리카라고 불리는 조직과 집단이 형성되었다.

* 타리카는 신에게 이르는 길을 가리킨다.

 

2) 12세기 무렵부터 수피의 도를 추구하여 사람들로부터 성자로 추앙받는 인물을 교조로 한 유파가 형성되기 시작

 

3) 15-16세기의 중앙아시아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타리카로는 낙슈반디야, 쿠브라비야, 야사비야 등이 있다.

 

4) 낙슈반디야

 

(1) 낙슈반디야의 정치 참여

* 수행법은 철저한 재가주의

* 15세기 후반 호자 아흐라르는 술탄 아부 사이드의 귀의를 받아들이면서 샤리아에 입각한 국가 질서를 강화하려고 시도했다.

* 냑슈반디야의 정치 이론은 16세기에 마흐두미 아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아흐마드 카사니에 의해 정비되었다.

-> 그는 수피의 스승이 민중들뿐 아니라 군주나 그 측근들까지도 가르치고 계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낙슈반디야가 우즈베크 왕조들과 동투르키스탄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

* 특히 통투르키스탄에서 많은 모굴 칸들이 낙슈반이야의 스승들에게 귀의했다.

-> 흑산당과 백산당이 서로 대립 항쟁을 계속하면서 칸의 권력을 능가하게 되었다.

 

(2) 타리카의 힘을 지탱한 또 하나의 요소는 그들이 갖고 있는 경제력이었다.

* 호자 아흐라르는 중앙아시아 각지에 부동산을 소유하면서 많은 액수의 와크프 재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 부하라의 주이바리 일족은 많은 부동산을 소유했으며 많은 종교 시설과 상업 시설을 건설하는 등 도시의 건설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10, 현대중앙아시아사회: 사회주의 시대에서 지구화 시대로 >

 

1. 20세기의 사회주의 건설과 근대화

* 러시아령 중앙아시아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에 사회주의 체제로 진입

* 중국령 중앙아시아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 사회주의 체제로 진입

 

1) 1920년대 코레니자치야(현지화) 정책

= 민족어 교육과 현지 민족 관료의 등용이 권장됨.

 

2) 러시아화

* 1938년부터 소련 전역에 공통어 중시 정책이 시행되면서 러시아어 교육이 의무화 되었다.

* 중앙아시아 언어들도 키릴문자로 변경되었고 1950년대 말 이후로는 러시아화가 가속되었다.

-> 중앙아시아어는 민족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중 언어 사회로 변모

 

3) 1930년대 이후에 공식화된 민족문화민족사라는 이념은 그 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 시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4) 1920년대 후반부터 소련의 무신론 이념하에서 이슬람은 철저히 부정되었다.

->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는 소련의 무슬림 민족들을 전쟁에 동원하거나 중동 외교를 하는 데 선전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이슬람을 일정한 틀 안에서 옹호하고 이용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 그러나 도시 엘리트층 사이에서 탈종교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5) 1920년대 후반부터 시행된 농업 집단화(개인농의 콜호즈화)는 부농과 대규모 가축 소유자들을 말살시키도록 부추겼으며 소련 각지에서 곡물 생산의 격감과 대기근을 촉발시켰다.

* 특히 중앙아시아에서는 유목민에 대한 강제적인 정주화까지 시행되었다.

-> 유목민들의 생업은 정주형 축산으로 모습을 바꾸었고 유목의 소실이라는 문명적인 변화도 초래되었다.

 

2. 소련 체제의 마이너스 유산

1) 스탈린 시기의 대숙청과 민족 강제 이주는 중앙아시아에도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2) 2차 세계대전 당시 적대국에 협력할 우려가 있거나 스파이라는 의심을 받은 민족들의 강제 이주가 시행되었다.

* 그 결과 한국인과 독일인, 메스흐인(터키 국경에 가까운 그루지아 남부 메스헤티아 지방에 거주하던 이슬람을 믿는 그루지아인) 등이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했다.

 

3) 아랄 해의 비극

* 식량 대증산을 목표로 한 자연 대개조 정책아래서 무모한 농업 개발이 추진된 결과 풍요로웠던 아랄 해는 1960년대부터 불과 4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사라질 지경으로까지 축소되었다.

 

3.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과 소련의 해체

* 1991년 보수파의 8월 쿠데타가 실패함에 따라 연방 공산당의 권위가 결정적으로 실추되었고 소련 해체 움직임에 순간적으로 박차가 가해졌던 것이다.

* 831일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그해 말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5개국이 모두 독립을 획득한다.

 

4. 독립 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과제

1) 1992년 타지키스탄에서는 구 공산당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민주파 및 이슬람파의 연합 세력간의 내전이 발생

-> 내전이 종결되고 국민 화해가 이루어지기까지 5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2) 5개국 모두 장기 집권한 대통령이 있다.

* 우즈베키스탄: 1대 이슬람 카리모프 1990-2016년 재임

* 카자흐스탄: 1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1990-2019년 재임

* 키르기스스탄: 1대 아스카르 아카예프 1990-2005년 재임

* 타지기스탄: 4-7대 에모말리 라흐모노프 1994- 재임

* 투르크메니스탄: 1대 사파르무라트 니아조프 1990-2006년 재임

 

3)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민주화와 자유화가 비교적 진척

* 투르크메니스탄은 독재 체제, 우즈베키스탄도 강권 체제

* 타지키스탄은 내전 종결 후 반대파가 정권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을 표방하는 정당이 인정 받고 있다.

 

4) 각 나라에서 민족 영웅을 부각 시키는 경향이 있다.

* 키르기스스탄: 영웅서사시의 주인공 마나스

* 타지키스탄: 사만조 군주인 이스마일 사마니

* 우즈베키스탄: 티무르

 

5) 러시아 및 러시아 문화(특히 러시아어)와 거리를 두는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국가어의 알파벳을 키릴 문자에서 라틴 문자로 바꾸었다.

 

6)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가격 자유화를 단기간에 실현

-> 독립으로부터 10년 경과한 시점에서 경제 개혁이 러시아에 필적할 정도로 진척

* 타지키스탄도 1995년경부터 가격 자유화를 서서히 추진

* 우즈베키스탄고 투르크메니스탄은 국가의 강한 통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형태의 개혁을 선택

-> 개혁 진전도가 낮음

 

5. 세계화 시대의 문제들

1) 환경이나 자원 문제

*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걸쳐 있는 아랄 해의 고갈 문제

*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아무 강의 이권 문제

* 카스피 해의 자원 문제: 카스피 해의 영유권 문제, 파이프라인 설치의 이해관계

 

2) 이슬람 부흥

(1) 소련령 중앙아시아의 경우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이후부터 시작

* 1990년대 후반부터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 정세 등과 연계된 이슬람 과격주의의 출현이 중앙아시아 전체의 안보를 고려할 때 우려될 수 있다.

* 1990년대 후반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MU)는 이슬람 국가 수립을 목표로 활동했으며 중앙아시아 각국에 위협을 주었다.

 

(2) 중국령 중앙아시아에서는 1982개방정책이후에 시작

*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분리 독립운동이 이슬람주의와 연계되어 일부 과격화 되었다.

 

6. 9.11 사건과 그 후

(1) 2001911 테러 발생

 

(2) 2002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국, 알카에다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 침공 & 친미정권 수립

*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CIS 안보와 상해협력기구의 틀 안에서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어 군사기지와 공항을 제공하고 영공 통과를 허가하는 형태로 미국에 적극 협력했다.(영세중립국인 투르크메니스탄은 제외)

 

(3) 2003년 미국,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조를 이유로 이라크 침공(이라크 전쟁)

*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서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 자세는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 3부 중앙아시아의 문화 >>

 

< 11, 아리아시대의 중앙아시아 문화: 문화의 전파와 융합 >

 

1. 문명의 십자로

* 이슬람화 이전, 즉 아리아 시대의 중앙아시아에는 불교와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혼재해 있었다.

이들 종교 사상은 기본적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전해졌다.

* 과학기술과 공업기술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전해졌다.

* 중앙아시아 오아시스민과 유목민 사이의 관계가 심화됨에 따라 문자의 사용이 유목민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1) 쿠샨조와 불교전파

 

(1) 쿠샨조

* 기원전 6세기 혹은 5세기 인도에서 불교 탄생

*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 기원전 3세기 박트리아 왕국의 성립

-> 그리스계 문화의 유입

* 기원전 1세기 박트리아 지방에 쿠샨조가 성립

* 기원 전후 중앙아시아 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는데, 첫 도착지는 북서인도, 이른바 간다라 지방이었다.

- 당시 인도 불교는 대승불교의 탄생과 불상의 출현이라는 두가지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2) 기원 전후 대승불교와 불상의 탄생

a) 대승불교의 탄생

* 쿠샨족이 원래 믿던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적인 것일 가능성이 크다.

* 대승불교는 아마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b) 불상의 탄생

* 간다라의 불상은 그리스와 로마식 기법을 사용했다.

* 마투라의 불상은 인도 고유의 조형 미술 전통을 계승한 것이었다.

 

(3) 불교와 상인

* 불교 교단과 상업적 관계를 맺고 있던 상인들은 스스로가 불교도가 되어 교단의 보호자로서 사원을 도와주고, 교단이 필요로 하는 고가의 물품을 교역하였다.

 

(4) 중앙아시아의 불교

* 1-3세기 쿠샨조 시대에 이미 박트리아 지방에 불교가 전파되어 있었다.

* 중국에는 늦어도 후한 말기가 되면 불교가 도래해 있었고 삼국시대가 되면 다양한 도래승들이 중국에서 활약하게 된다.

* 불교 전파 초기에 중국에 건너온 도래승들 가운데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도시 출신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5) 대불의 출현

* 중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거대한 불상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대불/ 타림 분지 키질 석굴과 심심 석굴의 대불/ 돈황 막고굴의 대불/ 감숙성 천제산 석굴과 천수현 맥적산 석굴의 대불/ 대동의 운강 석굴의 대불

 

2. 그 밖의 종교

(1) 조로아스터교

* 기원전 1000년기에 페르시아에서 조로아스터교 발생

* 당 시대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경교(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유입- 이들 종교는 모두 소그드인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이란계 민족과 관련이 깊다.

 

(2) 마니교

* 3세기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기독교의 모체로 마니교가 탄생

* 마니의 직계 제자로 동방 포교를 책임지고 있던 마르 암모의 활동을 통해 중앙아시아로 전파되었다.

* 우선 소그드 지방으로 확대되었고 이를 받아들인 소그드계 주민들을 거쳐 동쪽으로 전파되었다.

* 그후 소그드인과 위구르인의 관계가 밀접해짐에 따라 마니교는 위구르인들 사이에도 퍼져 나갔다.

* 9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위구르 지배자들의 보호를 받은 마니교는 타림 분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 마니교는 일찍이 인도 혹은 중앙아시아에서 불교와 접촉하면서 그 영향을 받았다.

 

(3) 경교(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

* 경교는 페르시아나 중앙아시아, 중국에서 마니교나 불교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 중국 본토에서 경교는 9세기 무종의 탄압 이후 쇠퇴했으며, 해로를 통해 중국에 온 경교도들의 공동체가 9세기 황소의 난으로 괴멸적 타격을 받은 결과 모습을 감추었다.

 

3. 기술의 전파(동에서 서로 전파)

 

(1) 비단 생산 기술

* 인도에서는 굽타조 시대에는 비단이 생산되었다.

* 늦어도 7세기에는 페르시아에서 양질의 견직물이 생산되고 있었다.

 

(2) 제지술의 전파

* 105년 환관 채륜이 종이 발명

* 751년 탈라스 전투를 통해 서아시아와 이슬람 세계로 전파

* 10세기경 이슬람 세계에서 양피지가 차지하던 지위를 종이가 거의 대신하게 된다.

* 12세기 이후 유럽도 스스로 종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 12세기 스페인, 13세기 이탈리아, 14세기 독일에서 종이 생산을 시작

 

(3) 문자와 언어

a) 8세기 이전

* 8세기 이전 흉노, 유연, 에프탈 등 중앙아시아의 유목계 민족이 어떤 문자 문화를 누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4세기에 타림 분지 남쪽에서는 중기 인도어의 일종인 간다라어를 카로슈티 문자로 기록

* 3세기 이후 타람 분지 남쪽에서는 툼슈크 사카어와 호탄 사카어가 사용되었으며 문자로는 브라흐미 문자가 사용되었다.

* 3세기 이후 타림 분지 북쪽에서는 토하리어가 쓰이고 있었고 문자로는 브라흐미를 사용하고 있었다.

 

b) 8세기

* 8세기에 돌궐 비문이 고대 투르크어를 사용하여 돌궐 문자로 새겨졌다.

* 8세기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에서는 소그드인들이 사용한 소그드어와 소그드 문자가 널리 통용되고 있었다.

* 소그드 문자는 위구르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위구르 문자의 원형이 되었다.

* 위구르 문자는 그 후 몽골 시대에 개량을 거쳐 몽골 문자가 되었으며 만주 문자로도 계승된다.

 

(4) 문명의 요람

* 소그드나 박트리아 등 중앙아시아 문명의 서쪽 중심 지역은 동서남북의 문화와 문명의 영향을 받아 이를 흡수함으로써 융합 문화를 낳고, 더 나아가 이들 문화를 각 지역에 재수출함으로써 유라시아 대륙 각지에 더없이 풍요로운 문화를 꽃피운 문명의 요람과 같은 지역이었다.

 

 

< 12, 투르크이슬람문화 >

 

* 10세기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은 이슬람을 받아 들임

* 11세기 투르크어와 이슬람을 핵심으로 하는 독자적인 투르크 이슬람 문화를 만들어냈다.

 

1. 이란 이슬람 문화와 사만조

= 10세기 중앙아시아의 이란계 이슬람 왕조인 사만조의 궁정에서 이란 이슬람 문화가 발달

 

* 10-11세기 다수의 아랍어 어휘를 포함시킨 새로운 페르시아어 근세 페르시아어가 발달

* 근세 페르시아어는 오늘날까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2. 투르크 이슬람 문화

= 11세기 카라한조 시기의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어를 사용한 투르크 이슬람 문화가 탄생

 

* 11세기 카라한조 시기에 이슬람화한 투르크인들은 아랍 문자를 사용한 새로운 투르크어를 카라한조 투르크어라고 하며 그 언어를 중기 투르크어라고 불러 구별하고 있다.

* 이후 14-15세기의 티무르조나 오스만조 시대에 차가타이 투르크어, 오스만 투르크어가 탄생

 

(1) 대사종 유수프가 군주를 위해 쓴 도덕 지침서- 쿠타드구 빌릭(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지식)

* 벨라사군 출신의 투르크인 이슬람교도 대사종 유수프가 군주를 위해 쓴 도덕 지침서

- 아랍 문자를 사용한 투르크어(카라한조 투르크어)로 씌여짐

* 투르크 이슬람 문화의 탄생을 고하는 기념비적인 작품

 

(2)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가 쓴 <디완 루가트 앗 튀르크(투르크어 사전)>

* 가장 오래된 투르크어 사전

 

(3) 투르크인들은 투르크 이슬람 문화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이란 이슬람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았고, 이후 오스만조나 티무르조 시데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이란 이슬람 문화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

 

 

 

< 13, 티무르조 문화 >

 

* 중앙아시아는 14-15세기 티무르 제국 시대에 여러 면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 중앙아시아의 문화도 이 시대에 최고조에 달했다.

 

1. 티무르의 문화 활동

* 1220년 몽골 군, 사마르칸트를 파괴

* 1370년 티무르는 중앙아시아 서부(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지 일대)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 이후 사마르칸트의 성벽(1371년 혹은 1372년 완공)과 내성(요새), 궁전을 건설

* 1378, 1379년 케슈 성벽 완성/ 이후 궁전(악 사라이)사이드의 집도 건설

* 13965년 전쟁을 마치고 사마르칸트로 돌아온 티무르는 기존의 계획을 바꾸어 건축 활동의 중심을 사마르칸트로 옮기고 이 도시의 번영을 도모하였다.

-> 1396년 이후로 사마르칸트에 대규모 건설 활동 & 대바자르 정비

-> 강제 이주 정책 시행

-> 사마르칸트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2. 티무르조 초기의 문화 활동

* 3대 샤 루흐는 자신의 본거지인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에 머물면서 사마르칸트에는 장남인 울룩 벡을 파견하여 그 일대를 통치 시켰다.

* 샤 루호는 헤라트에서 많은 건축 사업을 전개했다.

* 샤 루호의 아들 바이순구르 미르자는 사본 제작 활동을 하였다.

* 티무르의 손자 이스칸다르 술탄의 천궁도가 유명하다.

* 티무르조 시대에 제국의 영내에는 천문학과 점성술이 발달했다.

 

3. 티무르조 말기의 헤라트

* 티무르조 문화는 티무르조 말기의 술탄 후세인 시대(재위 1470-1506)의 헤라트에서 궁정을 중심으로 왕족이나 유력자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 정점에 달했다.

 

1) 건축

* 술탄 후세인과 재상 알리 시르 나바이는 헤라트에 많은 건축물을 지었다.

 

2) 회화

*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그려진 회화는 모두 세밀화(미니어처)이다.

* 술탄 후세인 시대에 헤라트에서 최고의 화가 비흐자드가 활동했다.

 

3) 서예

* 술탄 후세인 시대에 헤라트에서 활약했던 술탄 알리 마슈하디가 유명

 

4) 문학

* 알리 시르 나바이는 많은 문학 작품을 남겼다.

 

5) 음악

* 이 시대에는 현악기인 카눈, 우드, 기자크의 명연주가들이나 관악기인 네이의 명인들이 배출되었다.

 

 

< 14, 중앙아시아의 문학 유산: ‘바부르 나마데데 코르쿠트의 서’ >

 

** 바부르

* 1497년 바부르, 사마르칸트에 입성하여 티무르조 사마르칸트 정권의 군주가 된다.

* 1500년 바부르, 우즈베크의 샤이바니 칸에게 정복당한 사마르칸트를 정복했으나 1501년 우즈베크에게 패배를 당해 다시 빼앗긴다.

* 1504년 바부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정복

* 1526년 파니파트 전투에서 인도의 로디조를 격파하고 무갈조를 건국

* 1530년 바부르 사망

 

 

 

 

< 4부 중앙아시아 연구의 과제 >

 

1. 중앙아시아의 시대 구분에 대해서

1)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 초원지대-> 파미르 동쪽 지대-> 파미르 서쪽 지대

*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는 먼저 초원 지대에서 시작되어 아리아계 유목민을 대신해 투르크계 유목민이 진출함에 따라 6세기부터 8세기에 이르기까지 완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파미르 동쪽의 오아시스 지대에서는 위구르의 서천과 카라한조의 성립과 동시에 12, 13세기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투르크화가 완료 되었다.

* 파미르 서쪽의 오아시스 지대는 카라한조 시대에 투르크화가 진전을 보았고, 16세기 우즈베크의 진출이 투르크화를 더욱 진행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이 지역에는 마지막까지 이란적 요소가 뿌리 깊게 남아 있던 탓에 완전한 투르크화는 실현하지 못했다.

 

2) 투르크 이슬람 시대에는 투르크화와 이슬람화라는 두 개의 중요한 현상이 진행됨으로써 투르크 이슬람 문화로 불리는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켰다.

 

3) 중앙아시아 제2의 전환기는 18세기와 19세기, 중앙아시아 북방의 러시아와 동방의 청이라는 강력한 국가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유지해왔던 독립적인 세계를 상실했던 시점이다.

 

2. 유목민의 정주화에 대해

* 유목민의 문명화를 원인으로 보는 견해를 소개한 바 있다.

 

3. 카라한조 역사의 해명에 대해

* 투르크화와 이슬람화의 주축 국가인 카라한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4. 새로운 사료의 발굴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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