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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차이- 나무위키 인용
베다에서 푸라나로[편집]
이상에 서술한 것처럼 힌두교는 고대 또는 상고 시대의 브라만교에 기반하였지만, 특히 굽타 제국 시대 이래 작성된 수많은 문헌에 기반하여 고대 후기 내지 중세에 새로이 성립한 것이다.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차이는 거칠게 말해 '베다에서 푸라나(Purana)로'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베다 성전의 의미를 명료화하거나 쉽게 설명하기 위해[23] 브라만들이 서사와 비유를 곁들여 작성한 푸라나 문헌들이 굽타 시대와 그 이후에는 오히려 사실상 베다를 밀어내고 교리의 중심이 되었다. 베다 중심의 원-힌두교(브라만교)와 푸라나 중심의 힌두교 간 차이는 매우 크며, 간단히 정리하면 이하와 같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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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가 교리의 중심이던 시대에 신은 어느 정도 추상적인 존재였지만, 푸라나의 시대에는 신의 형상이 인간과 흡사하게, 때로 인간보다 매우 강력해 보이는 모습으로 매우 다양하고 자유롭게 묘사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신의 형상을 직접 묘사하는 신상 제작이 활발해졌고, 신상은 사원과 집의 특별한 장소에 위치하며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푸라나의 시대 이전에도 테라코타 등으로 만든 작은 신상은 존재했지만, '신상을 안치하기 위한 사원 건립'은 굽타 시대 이후에나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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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숭배하는 태도도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베다가 중심인 시절, 숭배자가 모든 의례를 문헌의 절차에 맞게 준수하면 신은 숭배자가 원하는 바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믿었으으로 둘의 관계는 다소 기계적이었다. 그러나 푸라나의 시대에 숭배자는 단순히 절차를 준수하는 존재가 아니며, 적극적이고 개인적인 헌신으로 신을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때 숭배자는 일상적으로 행하는 의례를 통해 자신이 숭배하는 신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게 되며, 다소 역설적이게도 일종의 '신의 후견인'과도 같은 위치에 선다. 푸라나의 시대에 숭배자는 이렇게 개인적으로 아끼고 사랑할 자신이 숭배하는 신을 개인적인 선호나 가문의 결정 등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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