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소나무 >
- 2020년 4월 27일 정리
< 1. 초원의 세계 >
1. 기마 유목민의 탄생
** 동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과도기)의 문화
* 기원전 2500년-1800년경 카스피해와 흑해 북방에 얌 문화
* 기원전 3000-2000년경 우랄 산맥 동쪽 예니세이 강 상류에 아나파시예보 문화
** 청동기 시대의 문화
* 기원전 2000년-1500년경 볼가 강 하류 지역과 흑해 북부 연안에 카타콤 문화가 발생
* 기원전 1700년경 볼가 강 하류 유역에 스루브 문화 발생-> 흑해 북안 전역으로 확대
* 기원전 2000-1000년경 우랄, 남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 안드로노보 문화 발생
* 기원전 16-15세기경 초원 지대 동쪽 끝에 샤자덴하층문화가 발달
* 기원전 13-12세기경 동부의 남시베리아와 몽골 고원에서 카라수크 문화 발달- 사슴돌
** 스키타이 이전 시대
* 기원전 10-9세기경이 되면 초원은 더욱 건조해지고 초원 지대의 농경-목축민은 양극화 된다.
* 기원전 9-8세기 기마 유목 문화 선 스키타이 문화
- 흑해 북부 연안을 중심으로 하는 체르노고로프카형 문화+ 북카프카스를 중심으로 하는 노보체르카스크형 문화
* 기원전 7세기경 기마 유목민인 스키타이 등장
2. 스키타이와 시베리아 문화권
* 스키타이
- 남시베리아에서 볼가 강을 건너 흑해 북부 연안으로 이주하여, 원래 거기에 살고 있던 킴메리오이를 몰아내고 그 지역을 차지했다고 한다.
- 기원전 8세기말 부터 7세기까지 서아시아 침략
* 스키타이 3요소
- 마구(등자형 재갈과 3개 또는 2개의 구멍이 있는 재갈멈치), 무기(하트형 날밑이 특징인 아케나케스식 검)와 가시가 달린 두 날 또는 세날 화살촉, 스키타이 양식의 동물 문양
* 스키타이 시대구분
- 전기(기원전 7-6세기), 중기(기원전 5세기), 후기(기원전 4세기)
* 스키타이는 북카프카스에서 흑해 북쪽 연안에 걸쳐 거주하고 있던 집단의 명칭이며 언어적으로 이란 계통이었다.
- 스키타이 시대에 유사한 기마 유목 문화가 초원지대 동부에서 서부까지 널리 퍼져있었다.
3. 사르마타이와 흉노 시대
1) 기원전 4세기 카스피 해 북방 초원에 사르마타이 발흥
2) 사르마티아 시대구분
(1) 전기(기원전 4-2세기)
- 기원전 2세기 드네프르 강 유역에서 스키타이를 몰아냈다.
(2) 중기(기원전 2세기 말기-기원후 2세기 초기)
- 주요한 유적은 돈강 유역에 분포/ 다색상감, 중무장 기병이 특징
(3) 후기(기원후 2-4세기)
- 사르마티아 동쪽에서 알란이 등장(알란은 오늘날 오세트인의 조상)
3) 흉노
* 기원전 3세기 후반 흉노의 발흥
* 기원전 48년 동흉노와 서흉노로 분열
* 기원전 51년 동흉노 한에 복속
* 기원전 36년 서흉노 멸망
* 기원후 48년 동흉노의 분열
- 남흉노는 후한에 종속됨/ 북흉노는 서진
4. 민족 대이동 시대
1) 선비의 흥기와 5호 16국 시대
* 2세기 중엽 단석괴가 부족을 통합
* 중국 진대에 일어난 팔왕의 난을 계기로 흉노계와 선비계의 여러 부족이 중국 북부에서 중부까지 침입하여 독자적인 왕조를 개창하였다= 5호 16국 시대
* 386년 선비계의 탁발부가 북위를 건설
2) 고차와 유연의 흥망
* 북흉노가 서방으로 떠나고 선비의 가비능 정권이 무너진 후 고차와 유연이라는 유목민 집단이 몽골 고원에서 우월한 세력으로 군림했다.
3) 훈의 흥망
* 350년경 훈, 카스피해 북안에서 흑해에 걸쳐 살고 있었던 알란족을 습격
* 375년 훈, 흑해 북안에 살던 동고트 왕국을 침략
* 376년 훈, 루마니아 부근에 있었던 서고트를 압박-> 서고트의 이동
* 395년 훈, 서아시아 원정
* 451년 아틸라가 갈리아로 진격했으나 샬롱전투에서 패한 후 철수했다.
* 453년 아틸라 사망 후 급속히 쇠퇴
5. 고대 투르크 시대
1) 돌궐의 발흥과 서진
* 552년 토문은 유연을 격파하고 이리 카간을 칭함
* 582년 알타이 산맥 부근을 경계로 동서로 분할
* 630년 동돌궐, 당에 의해 멸망/ 657년 서돌궐, 당에 의해 멸망
* 682년 쿠를룩, 돌궐 제2제국 건설
* 744년 위구르, 바스밀, 카를룩 연합공격으로 제2돌궐제국 멸망
2) 위구르의 문명화(정주화)
* 744년 위구르족을 중심으로 한 토쿠즈 오구즈의 연합이 제2돌궐제국 멸망시킴
-> 위구르 제국의 성립
* 755년 안사의 난(755-763) 발발
* 757년 위구르 태자 야브구, 낙양과 장안 모두 수복
* 757-758년경 카를룩 카간, 바이발릭 건설
* 840년 서북 몽골리아 키르기스 연합군이 오르콘, 툴 강 상류에 있는 위구르 핵심 지역을 급습하였다-> 848년 위구르 제국 멸망
3) 아바르, 불가르, 하자르
(1) 아바르- 유연의 후예? (567-804 Avar Khanganate)
* 아바르의 이동이 슬라브족의 이동을 야기함.
* 8세기말에서 9세기 초 프랑크 왕국 카를 대제에 격퇴당함
(2) 불가르- 투르크계, 동방에서 이주
* 632-668 고대 대불가리아
-> 하자르에 멸망
* 7세기- 1240 Volga Bulgaria(볼가 불가리아)
- 대불가리아 쿠브라트의 둘째 아들 코트락이 볼가 강 중류에 국가 건설
-> 1236년 몽골에 멸망
* 681-1018 First Great Bularia(불가리아 제1제국)= 도나우- 불가리아
- 쿠브라트의 셋째 아들 아스파루흐가 도나우강 건너 옛 모에시아 땅에 국가 건설
-> 슬라브에 동화
-> 비잔틴 제국에 멸망
(3) 하자르- 투르크계/ 발흥기 아랍의 북진을 저지(이슬람이 카프가스를 넘지 못하게 했다)
* 650-969 Khazars(하자르): 지금의 캅카스 지역에 위치
- 8세기 중엽 볼가 강 하구에 수도 이틸(Atil, 카스피해 북쪽에 위치) 건설
- 965년 키예프 대공국에 멸망
< 2. 오아시스의 세계 >
1. 농경, 도시 문명의 시작과 인도, 이란인의 확산
1) 중앙아시아 서부의 상황
* 기원전 6-5쳔년기 이후에는 오아시스 농경이 시작되었다.
* 기원전 2천년기까지는 청동기 시대에 진입
* 기원전 3천년기 말경까지 원 인도인이 마르기아나와 박트리아로 남하
-> 코페트아우의 신석기-금석 시대 주민인 원 드라비다인 사회로 이주
-> 간다라로 진출
-> 이어 원 이란인이 남하하여 카스피 해 서쪽 연안과 시베리아 남부로 확산
-> 이동의 결과로 언어와 사람의 형질 모두 원 인도-이란인에 압도당했다.
cf) 중앙아시아 서부 지역 명칭
* 박트리아= 토하리스탄
- 북아프가니스탄의 박트라(현 발흐)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 호라즘
-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에 속하는 아무다리아 강 하류 지역
* 소그디아나
- 아무다리아 강과 시르다리아 강 사이를 흐르는 자라프샨 강(아무다리아 강 지류) 유역
* 페르가나
- 시르다리아 강 상류 지역
2) 중앙아시아 동부의 상황
* 기원전 2천년기 무렵 인도-이란계가 초원 세계 동부와 톈산 남쪽까지 진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 동쪽에서 온 몽골로이드와 혼혈
2. 중앙아시아 서부의 이란계 사회와 그리스 문화의 영향
1) 메디아와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 기원전 7세기 말경 메디아는 아시리아를 토벌하고, 이란 고원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 박트리아와 파르티야를 취하고, 서쪽으로 아나톨리아 동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다.
* 기원전 6세기 경 메디아 왕국에서 자립한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차지하고 박트리아, 마르기아나를 비롯하여 중앙 아시아 서부 지역과 간다라를 정복했다.
-> 기원전 4세기까지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가 중앙아시아 서부를 지배
2) 알렉산드로스의 원정
*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가 중앙아시아 서부를 정복
3) 그리스 문화의 확대(셀레우코스조, 그레코 박트리아, 아르사케스조 파르티아)
* 알렉산드로스 사후 기원전 4세기 초 인도 서부에 마우리아조 성립
-> 알렉산드로스의 부장 셀레우코스 니카토르가 세운 셀레우코스조가 제국을 계승
-> 기원전 3세기 후반 셀레우코스의 아들 안티오코스 1세가 중앙아시아 서부를 통치
-> 기원전 3세기 중반경 중앙아시아 서부의 동쪽에 그레코 박트리아, 서쪽에 파르티아 자립
4) 그레코 박트리아 왕국의 멸망과 북방 유목민
** 월지(인구어족)- 스키타이의 한 지파로 이해
* 원거지지는 하서회랑(감숙 서부지역)
* 기원전 176년 흉노 묵특의 공격을 받고 텐산 북방의 일리 강 유역(jeti su지역?)으로 이주하여 대월지로 알려졌다.
* 기원전 141년경 아무다리아 강을 건너 그레코 박트리아 왕국을 멸망시킴
* 기원전 136-129년경 대월지 전체가 소그디아나에서 박트리아에 이르는 지방을 제압
5) 쿠샨조
* 1세기경 대월지 5흡후의 하나인 귀상(구샨)이 다른 흡후들을 제압하고 쿠샨조를 세움.
* 카니슈카 1세, 영토를 넓히고 불교를 권장
6) 쿠샨조 멸망 후의 중앙아시아 서부
* 226년 쿠샨조, 사산조의 속국이 됨
* 350년경 월지의 일족 또는 쿠샨 계통으로 추정되는 키라라가 남하하여 약 100년간 박트리아에서 간다라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했다= 키다라-쿠샨
-> 5세기 중엽 헤프탈에 멸망
* 5세기 중엽 이란계 혹은 투르크계 에프탈이 발흥
-> 6세기 중엽 사산조와 돌궐의 협공으로 멸망
7) 소그디아나 그 주변-서돌궐 시대와 현장의 견문
* 583년 돌궐 동,서로 분열
* 657년 서돌궐 당에 멸망
* 소그드인은 기원전 6-5세기부터 그 이름이 알려지고 있으며, 외세 지배 아래서도 독자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 소그디아나의 종교는 7세기경 조로아스터교가 대세
* 박트리아 지방은 7세기경 불교가 성행
4. 중앙아시아 동부-혼합 문화의 형성
1) 타림 분지의 오아시스
* 타림 분지에는 북방ㅇ과 서방에서 온 원 이란-인도계(아리안계)와 코카소이드계(인도-유럽계) 언어 사용자들이 살았다.
* 오아시스 동부에는 몽골로이드 계통의 사람이 거주
2) 오아시스의 언어 문화권
*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4세기에 걸쳐 타림분지 남변 일대에는 간다라어-카로슈티 문화권이 있었다.
* 5세기에서 10세기까지 타림 분지 서북부와 호탄을 비롯한 서남변 오아시스에서는 중기 이란어의 동부 방언에 속하는 툼슈크-사카어와 호탄-사카어가 쓰였다.
* 5-8세기 타림 분지의 북변에서 투르판 분지에 이르는 여러 오아시스에서는 토하라 A어, 토하라 B어가 사용되었다.
- 토하라어는 그리스어나 라틴어와 같이 켄툼계 서방 언어로 인도-유럽계 언어 가운데서 가장 동쪽에 위치하는 언어이다.
- 박트리아의 토하라(토하로이)와는 별개다.
3) 둔황
* 기원전 2세기 둔황에는 월지가 있었다.
-> 월지는 흉노에 패해 서쪽으로 이주하고, 그 일부가 소월지라는 이름으로 하서지방에 남았다.
-> 기원전 2세기말 한나라는 흉노를 제압하고 하서 4군을 설치했다.
-> 4세기에는 둔황 교외에 막고굴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 5호 16국 시대부터 남북조 시대(4세기 중엽부터 6세기 말기)에는 하서 지방에 호와 한의 여러 정권(5량 왕국= 후량, 북량, 남량, 전량, 서량), 그리고 북방 초원의 유연, 고차, 남박의 토욕혼 등이 뒤섞여 살았다.
-> 수, 당 때 하서와 둔황에 한인이 다수 거주
-> 780-848년 토번이 둔황을 직접 지배
-> 848년 장의조, 사주에 독립 정권 수립
= 한인 장의조 정권(-> 후에 조씨에게 정권이 넘어감-> 후에 사주 위구르를 칭함)
-> 894년 감주 위구르(하서 위구르) 성립
-> 1036년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에 사주 위구르 멸망
-> 1227년 몽골 제국에 서하 멸망 후 하서지방은 몽골 제국에 편입 & 쇠퇴
5. 외부 세력의 투르판 분지와 타림 분지 진출
1) 한나라의 영향
* 전한의 서역 경영
-> 전한이 쇠퇴하자 곧바로 흉노가 남하하고, 오아시스 나라들이 한나라에서 이반하기 시작했다.
* 93년 반초의 서역 평정
-> 그러나 후한의 서역 경영의 전성기는 20여년 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이후 후한은 서역을 방기
2) 한나라 문화의 유입과 남북의 유목 세력
* 기원전 3세기-2세기경 거사전국은 위와 서진의 간섭을 받았다.
* 5호 16국 시대 327년 전량이 투르판 분지를 지배하면서 한문화 유입 & 386년 간쑤에 후량 건립
* 450년 북위에 패한 북량의 저거안주가 도주하여 고창을 점령, 거사전국의 멸망
-> 460년 한인 괴뢰정권 감백주 정권이 성립(고창국: 감-> 장-> 마-> 국)
-> 640년 고창국, 당에 의해 멸망
-> 당, 고창에 서주를 두고 안서도호부를 설치 & 한자 문화가 오아시스에 침투
* 755-763년 안사의 난을 기점으로 당의 투르판 분지와 타림 분지의 지배는 쇠퇴
3) 티베트
* 7세기 송첸감보, 토번을 건국- 불교의 전파
* 7세기 후반 토번은 당에 대항하기 시작
* 8세기 말 티송 데첸, 불교를 국교로 정함 & 타림 분지에 진출
-> 인도 불교와 중국 불교의 대립
-> 논쟁에서 인도 불교의 승리
* 9세기 토번은 내부적으로 불교에 대한 보호가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각지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조가 급속하게 쇠퇴했다.
6. 톈산위구르 왕국
1) 왕국의 탄생
* 803년 위구르 제국, 고창을 정복
- 위구르의 서천은 타림 분지의 투르크화에 결정적으로 기여
* 840년 위구르 제국의 멸망
* 851년 톈산 위구르 왕국의 성립-> 중앙아시아 동부의 투르크화
* 10세기 카라한조가 이스람을 수용하고 카슈가르에 진출하고, 이어 11세기에 호탄과 쿠차 방면으로 진출-> 톈산 위구르 왕국의 타림 분지 역영은 축소
2) 왕족과 왕국 체제
* 톈산 위구르 왕은 12세기 초기까지 유목 세계의 수령이 칭할 수 있는 카간이나 칸의 칭호를 사용했다.
3) 종교와 문화
* 10세기 이후 토착의 전통 불교를 믿기 시작했다.
* 소그드 문자를 모방한 위구르 문자를 사용
* 아랍 세력의 침략으로 본국과 연락이 어렵게 되면서 예전의 활력을 상실한 소그드인을 대신하여 위구르인이 스스로 동서 교역의 담당자로 등장했다.
4) 몽골 제국 형성에 대한 공헌
* 1132년 서요의 속국이 됨
* 1209년 몽골에 복속
-> 몽골과 위구르의 집단적인 공생 관계 급속히 진행
* 13세기 말 니굴린 왕은 투르판 분지를 떠나 간쑤로 이동
< 3장. 중앙유라시아의 이슬람화와 투르크화 >
* 중앙아시아는 그 서부의 아나톨리아나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이슬람화와 투르크화가 동시에 일어난 지역이다. 그 가운데 미 와라 알 나흐르에서는 투르크화에 앞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고, 파미르 동쪽, 특히 동투르키스탄 서부 지역에서는 아나톨리아처럼 두 가지 현상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1. 이슬람화의 진행
1) 이슬람 세력의 중앙유라시아 진출
* 7세기 말 이슬람 세력(우마이야조)의 중앙유라시아 진출
2) 소그드, 투르크, 아랍
* 소그드의 역사
: 기원전 6-5세기 오아시스 도시 존재
->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후 박트리아에 속함
-> 강거, 에프탈, 서돌궐의 영향을 받음
-> 에프탈 멸망 후 서돌궐에 복속
-> 서돌궐이 당에 멸망하자 당에 복속
3) 쿠다이바의 정복
* 705년 호라산 총독 쿠다이바 기용
* 709년 쿠다이바, 부하라 정복
4) 쿠다이바 이후 마 와라 알 나흐르
* 740년대 중반 페르가나를 포함한 아무다리아 강과 시르다리아 강 사이의 지역은 아랍 지배에 들어갔다.
* 751년 압바스조의 아랍군 탈라스 전투에서 승리
5) 이슬람화의 시작
* 아랍군이 마 와라 나흐르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면서 이 지역의 이슬람화가 시작되었다.
* 8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이슬람화가 확대되고 심화되었다.
6) 마 와라 나흐르 언어의 파르스화
* 공식적인 문어로 아랍어, 공통의 구어로 다리어(이란 서남부 파르스 지방의 이란어)가 사용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페르시아어(파르스의 언어)가 탄생하였다.
7) 사만조의 성립(이슬람)
* 9세기 경 압바스조 제국 변방에 반독립적인 지방 왕조가 등장
- 800년 북아프리카의 아글라브조 성립
- 821년 호라산에 타히르조 성립
* 875년 마 와라 알 나흐르에 사만조 성립
- 사만조의 조상 사만 후다는 이슬람을 수용
- 굴람이라 불리는 투르크계 노예병이 군인과 관료가 되었다.
* 960년 가즈나조의 성립
- 사만조의 호라산 총독이었던 알프 테긴이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나를 중심으로 세운 투르크계 이슬람 왕조
8) 아랍- 페르시아 문화의 발전
* 마 와라 알 나흐르의 언어 방면의 파르스화는 사만조 치하에서 완성되었다.
* 사만조에서는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로 씌여진 많은 작품이 발간됨
2. 투르크화의 진행
1) 투르크족의 이슬람화
* 중앙유라시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 카라한조의 이슬람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2) 카라한조와 투르크- 이슬람 문화의 발생
* 999년 카라한조, 사만조를 멸망시킴
* 11세기 중엽 카라한조는 동, 서로 분열
* 투르크- 이슬람 문화의 발생
3) 오아시스 정주 지대의 투르크화- 동투르키스탄
(1) 투르크화- 급속하게 투르크화
* 동투르키스탄의 동부 지역의 투르크화는 840년 위구르 제국 해체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 서부지역의 카라한조는 9세기 말 카슈가르를 점령하고 이슬람을 수용한 후, 11세기 초기에는 호탄, 그리고 중기에는 쿠차까지 지배 영역을 넓혔다.
(2) 이슬람화- 완만하게 이슬람화
* 동투르키스탄의 이슬람화 과정은 완만하게 진행되었다.
* 특히 동투르키스탄 동부 지역에서 이슬람교는 오랫동안 불교와 공존했다.
* 1513년 동투르키스탄의 이슬람화가 완성되었다.
4) 오아시스 정주 지대의 투르크화- 서투르키스탄
= 서투르키스탄의 투르크화는 완만하게 진행
* 10세기 중엽 시르다리아 강 북쪽에 있던 오구즈 연합체에서 셀주크가 분화
-> 1055년 바그다드에 입성
* 1077년 아무다리아 강 하류 지역의 호라즘에서 아누슈 테긴이 호라즘 샤를 자칭하고 지배자가 되었다. 호라즘은 투르크의 전통을 강고하게 지켰고, 북방 초원에서 투르크계의 킵차크 부족을 불러들여 군사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투르크화가 크게 진전되었다.
* 미 와라 알 나흐르의 카라한조는 호라즘 샤에게 점령된 1212년까지, 그리고 페르가나의 카라한조는 나이만족에게 점령되는 1211년까지 존속했다.
-> 몽골 정복과 함께 투르크의 대거 유입
- 정주화한 투르크계 유목민과 원주민의 융합이 본격화
* 15세기 말 이후 샤이바니 칸이 이끄는 우즈베크 집단의 침입은 유목민의 정주화를 더욱 촉진시켰다.
* 호라즘, 페르가나, 타슈켄트 주민은 대체로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두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 마 와라 알 나흐르의 주민은 대부분 페르시아어를 사용했지만, 두 언어를 사용한 사람이나 투르크어를 모국어로 쓴 사람도 있었다.
< 4. 몽골 제국과 티무르 제국 >
1. 몽골 제국의 성립
1) 칭기스 칸의 등장
* 1206년 대몽골국 탄생
- 95개의 천호로 편성
- 천호는 몽골 유목민의 군사, 정치, 행정, 사회의 기초가 되는 조직
2) 대몽골 울루스의 확대
* 1209년 고비 사막 남부의 서하를 속국으로 만듬
* 1209년 톈산 위구르 왕국 복속
* 1211년 톈산 서부의 카를루크 복속
* 1218년 서요 멸망
* 1225년 호라즘 멸망
3) 우구데이 카안의 치세
* 1234년 금 멸망
* 1235년 우구데이, 수도 카라코룸 건설
* 1240년 바투, 러시아 정복
* 1242년 2대 우구데이 사망
4) 톨루이 가문의 복권- 훌레구의 자립(일 칸국)
* 1246년 3대 구유크 집권
* 1251년 4대 뭉케 집권(톨루이의 장남)
* 1258년 훌레구, 압바스조의 바그다드 함락
* 1260년 훌레구, 아인잘루트 맘루크조에 패배
2. 쿠빌라이 정권
1) 쿠빌라이의 즉위
* 1259년 뭉케 급사
* 1260년 쿠빌라이, 개평부에서 황제 즉위/ 1261년 아리크 부케, 카라코룸에서 황제 즉위
* 쿠빌라이와 아리크 부케와의 제위 계승 전쟁 발발
-> 1264년 아리크 부케, 쿠빌라이에게 투항
2) 중앙아시아의 분쟁
* 1269년 탈라스 회맹
- 차가타이 가문의 바라크, 우구데이 가문의 카이두, 베르케 사후 조치 가문의 뭉케 테무르의 대리인
* 1270년 바라크의 서아시아 원정
-> 일칸국의 아바가가 바라크 군대를 분쇄
-> 바라크 실권을 잃고 살해당함
-> 차가타이 가문은 우구데이 가문의 카이두에게 의탁
-> 차가타이의 수령 두아(바라크의 아들), 카이두에 의탁
-> ‘카이두의 나라’가 성립
* 1287년 동방 3왕가를 거느린 테무게 옷치긴 가문의 수령 나얀의 반란
* 1294년 쿠빌라이 사망 & 테무르 즉위
* 1300-1301년 몽돌 고원 서부와 알타이 일대에서 카이두와 원나라 군대가 충돌
-> 카이두 패배하고 사망
-> 차가타이 가문의 두아와 카이두의 아들 차파르는 테무르에게 복종을 맹세
-> 1305년 제국의 분쟁 종식
3) 대도의 건설과 남송 정벌
* 1266년 쿠빌라이, 대도 건설을 명함
* 1271년 쿠빌라이, 국호를 대원으로 변경
* 1279년 남송 멸망
4) 쿠빌라이의 경제 정책
* 쿠빌라이 정권의 재원은 극단적으로 상업 이윤에 치우쳐 있었다.
* 중앙 정부는 세입의 주요 부분을 소금의 전매와 상세에 의존했다.
3. 몽골에 의한 평화
1) 서방 3왕가
(1) 주치 울루스
* 1357년 주치 울루스, 자니벡 사망 이후 대혼란
* 1377년 톡타미시, 좌익 울루스의 지배자가 됨
* 1381년 톡타미시, 좌우익 통합
* 1395년 티무르, 톡타미시 격파 & 아스트라한과 사라이 파괴
* 15세기 중반 카잔 칸국(볼가강 중류), 아스트라한 칸국(볼가 강 하류), 크림 칸국(크림 반도)로 분열
* 우랄 강 동쪽의 킵차크 초원에서는 조치의 다섯째 아들 샤이반을 조상으로 하는 샤이반 울루스가 아불 하이르에 의해 통일 되었다. 그 가운데서 일단의 유목민이 그의 지배를 벗어나 모굴리스탄(톈산 산맥 서부의 북쪽 기슭) 변경으로 이동하는데, 이들이 카자흐(카자크)라는 이름으로 불린 유목민들이다.
(2) 훌레구 울루스
* 2대 아바가 칸, 킵차크 칸국의 베르케 군대를 격퇴하고, 차가타이 가문의 바라크 군대까지 분쇄하여 국가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 개혁 군주 7대 일 칸, 이슬람 개종 & 개혁 정치 단행
* 1335년 아부 사이드 사망 & 훌레구 울루스 해체
2) 차가타이 울루스의 자립
* 1306년 카이두의 후견을 받았던 두아는 차파르(카이두의 아들)를 물리치고 차가타이가의 주권을 확립
* 1310년 차파르, 카안 울루스에 투항
-> 우구데이 칸국의 영토는 카안 울루스와 차가타이가 분할
* 마 와라 알 나흐르를 중심으로 오아시스의 풍요로운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세력(차가타이)과 세미레치에(zhetysu, 현 카자흐스탄의 남동부)를 중심으로 하여 전통적인 관습과 법에 의거하여 유목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세력(모굴)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3) 몽골의 이슬람 수용- 몽골 왕족 개종에 수피가 관여
* 일족 중 최초의 이슬람 개종자는 조치 가문의 베르케
* 1295년 훌레구 울루스의 가잔 칸, 쿠브라비 교단에 개종
* 1331년 차가타이 울루스 타르마시린 즉위 & 이슬람 우대 정책 실시
* 티무르의 개종
4) 동서 문화의 교류
5) 몽골 제국의 해체
* 1368년 홍건군의 수령 주원장, 명 건국 & 토곤 테무르 몽골 초원으로 퇴각
* 1387년 잘라이르부 무칼리 국왕의 자손인 나가추, 명에 투항
* 1388년 부이르 호수 회전에서 명, 투구스 테무르(토곤 테무르의 손자)의 군대 궤멸 시킴
& 투구스 테무르, 아리크 부케의 후손 예수데르에게 피살(쿠빌라이 직계의 왕통이 단절, 북원의 멸망)
* 1434년 서몽골의 토곤, 동서 몽골 전체 통합
* 토곤의 아들 에센은 칭기스 가문과 혼인을 통해 권력을 더욱 강화함과 동시에 동서 양 방향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 1449년 토목의 변
* 1487년 바투 뭉케, 다얀 칸으로 즉위
-> 약화된 동몽골을 통합하고 모두 6개의 만호로 나누어 자식들에게 분봉했다.
* 1542-1543년 알탄 칸, 오르도스 흡수 & 차하르부 장악
-> 요동에서 감숙, 청해에 이르는 지역 장악
* 1604년 차하르 왕가에서 릭단이 대칸으로 즉위
* 1634년 릭단 칭하이 원정 도중 사망
* 1635년 릭단 칸의 가족, 후금의 홍타이지에게 투항 & 원의 멸망
4. 티무르 제국의 성립
1) 티무르의 대두
* 1340년대 차가타이 울루스, 동과 서로 분열
* 1346년 유력한 아미르인 카자간이 서차가타이의 군주인 카잔 칸을 살해하고 실권을 잡았으나, 1358년 사냥 도중 암살되었다.
* 모굴리스탄의 투글루크 티무르 칸이 카자간이 암살 당한 후 혼란에 빠져있던 마 와라 안나흐를 두 번에 걸쳐 공격하여(1360, 1361) 차가타이 울루스를 재통일했다.
* 1360년 티무르는 투글루크 티무르의 휘하에 들어가 조상들의 소유지였던 케슈 주변의 땅을 얻고 바를라스족의 지휘권도 위임 받았다.
* 1365년 사마르칸트의 주민들이 진격해 들어온 모굴군을 상대로 도시 방어전을 펼치자, 티무르가 나서서 이들을 격퇴하였다.
* 1370년 티무르, 마 와라 안나흐르를 중심으로 차가타이 울루스 서부 지역에 티무르 제국 성립
2) 티무르 정권의 확립
* 1378년 티무르, 수도 사라이를 손에 넣어 조치 울루스의 지배권을 탈취
* 1379년 호라즘 전역을 지배
- 티무르, 수피조의 수도 우르겐치 함락시킴
3) 티무르 제국의 건설
* 1335년 훌레구 울루스의 9대 아부 사이드 사망 & 훌레구 울루스 해체 & 분열
* 티무르는 1380년부터 일칸국의 계승 국가인 쿠르트조, 사르베다르조, 잘라이르조, 무자파르조를 차례로 정복
* 1395년 티무르는 톡타미슈를 격파하고 볼가 강변의 수도 사라이를 파괴했다.
-> 킵차크 한국(조치 울루스)을 속주로 만들었다.
* 1396년까지 티무르는 서방 원정을 거의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4) 명나라 원정 계획
* 1398년 티무르, 델리 점령
* 1402년 오스만조의 술탄 바야지드 군대를 앙카라에서 분쇄
* 1405년 명 원정 중 티무르 사망
5) 티무르 정권의 성격
5. 티무르의 계승자들(교양인을 위한 중앙아시아사 104p 참조)
1) 샤 루흐 정권의 성립
* 티무르 사후 분쟁과 반란이 시작
* 1417-1447년 3대 샤 루흐가 재 통일
- 가장 안정된 시기(티무르조의 르네상스)
* 이란 서북부에서 흑양부(카라 코윤루) 세력이 강력해짐
2) 티무르 제국의 분열
* 울룩 벡 사후 7대 아부 사이드가 혼란을 수습
-> 1458년 제국의 재통일 완수
-> 1469년 백양조와의 전투 중 살해 당하였다
* 울룩 벡 사후 티무르 제국은 사마르칸트 정권(마 와라 알 나흐르)과 헤라트(호라산) 정권으로 나뉘어 졌다.
* 1500년 우즈베크의 샤이바니 칸(조치의 후예)이 사마르칸트 정복
* 1507년 우즈베크족, 헤라트 정복
3) 티무르 제국의 행정 기구
* 티무르 제국의 행정 기구는 투르크계 군인과 타지크계 정주민을 겨냥한 이원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4) 우즈베크 유목 정권과 카자흐
* 15세기 전반 조치 울루스 동부에서 ‘우즈베크’라 불리는 유목민 집단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 통솔자는 조치의 다섯째 아들 샤이반의 후손인 아불 하이르 칸
* 1428년 아불 하이르는 킵차크 칸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 1446년 아불 하이르, 킵차크 초원의 동부 지역 통일 & 시르다리아 강 중류 지역을 점령
-> 시르다리아 강 중류 유역을 근거지로 하고 있던 일단의 유목민들은 아불 하이르의 압박으로 케레이 칸과 자니 벡 칸을 따라 모굴리스탄 변경으로 이주
= 우즈베크-카자흐 or 카자흐(오늘날 카자흐족의 기원)
* 1456년 아불 하이르는 중앙아시아 초원에 진출한 칼미크(오이라트)와 싸워 패하고, 그 권위가 크게 실추되었다
* 아불 하이르가 죽자 우즈베크 유목민들은 앞서 모굴리스탄 변경으로 본거지를 옮긴 카자흐에 합류했다. 카자흐 집단은 킵차크 초원의 유목민을 휘하로 받아들여, 자니 벡의 아들 카심 칸 시대에는 강력한 유목 국가로 성장했다.
* 아불 하이르의 손자 무함마드 샤이바니(1451-1510)가 분열된 유목민을 재통합
* 1500년 우즈벡인, 서투르키스탄으로 대거 이주
cf) 카자흐의 대쥐즈, 중쥐즈, 소쥐즈
* 대쥐즈(세미레치에 지방)/ 중쥐즈(오늘날 카자흐 초원의 중부)/ 소쥐즈(카자흐 초원의 서부)
5) 샤이바니조의 지배
* 아불 하이르의 손자 무함마드 샤이바니(1451-1510)가 분열된 유목민을 재통합
-> 1500년 티무르조의 사마르칸트 정복하고 정착= 샤이반조/ 우즈베크인, 서투르키스탄으로 대거 이주
-> 1507년 티무르조 헤라트 정권 멸하고 호라산까지 지배영역을 넓혔다.
-> 1510년 사파비조의 샤 이스마일과 전투를 벌이다가 메르브 전투에서 사망
* 1511년 바부르, 샤 이스마일의 도움을 받아 사마르칸트를 회복
* 1512년 우즈베크군 바부르군을 물리치고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를 수복
-> 바부르는 중앙아시아 지배를 포기하고 카불의 자기 왕국으로 돌아갔다
-> 1526년 바부르, 파니파트 전투에서 승리하고 무갈조를 건국
(1) 부하라 칸국(1506-1785)
* 1557년 압둘라의 통일 이후 부하라 칸국으로 불림
: 부하라가 거점이었기 때문에 16세기 이후 부하라 칸국이라고 부른다.
* 1583년 압둘라, 칸으로 즉위
* 1588년 헤라트 점령하고 더 나아가 호라산 전역을 지배
* 1593-94년 히바 칸국 지배하에 있던 호라즘을 정복
* 1598년 압둘라 사망 후 혼란
* 1599년 샤이반조의 남계 혈통이 단절되자 압둘라 2세의 조카인 바키 무함마드가 즉위하여 새 왕조인 잔조(1599-1747/ Janid dynasty/ 아스트라한조를 계승)를 개창
* 1740년 이란의 나디르 샤가 마 와라 안나흐르를 정복하면서 잔조는 쇠망
* 1756년 칭기스칸계가 아닌 망기트조가 수립= Emirate of Bukhara(1785-1920)
(2) 호라즘 지방에 히바 칸국의 성립(1511-1920)
= 1511-1804 Arabshahid Dynasty (Yadigarid Shabanid Dynasty)+ 1804-1920 Qungrat Dynasty
* 1510년 샤이바니 죽음
* 1512년 아불 하이르 칸의 직계가 아닌 다른 가계에 속한 일바르스 칸이 호라즘 지방에서 정권을 장악
* 1740년 히바 칸국, 나디르 샤의 침공을 받음
* 18세기 왕권이 약화 되었으며, 우즈베크의 콩기라트족이 재상이 되어 실권을 장악했다.
* 1804년 Kongrad dynasty 성립
(3) 페르가나에 코칸트 칸국의 성립(1709-1876)
* 1733년 밍 부족의 수령 압둘 카림 비이 독립, 코칸트 칸국의 성립
* 1763년 코칸트 칸국에서 이르다나 비이, 스스로 칸을 칭함
6) 샤이바니조의 국가 체제
7) 유목 정권과 교단
* 중앙아시아 정치와 사회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수피 교단은 낙슈반디 교단이었다.
8) 15-16세기의 문화
9) 중앙유라시아 세계의 쇠퇴
* 티무르 제국이 멸망한 후 이란에 시아파 사파비조와 중앙아시아에 수니파 샤이비나조가 서로 대립
* 16세기 이후 서서히 진행된 중앙유라시아 쇠퇴의 가장 큰 원인은 중앙유라시아 유목민이 갖고 있었던 군사적 우월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 5. 티베트 불교 세계의 형성과 전개 >
1. 티베트 불교와 왕권
1) 티베트 불교의 왕권 사상
* 육도
https://ko.wikipedia.org/wiki/%EC%9C%A1%EB%8F%84_(%EB%B6%88%EA%B5%90)
* 보살
- 보살은 수행을 완수하여 완전히 부처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일체의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한 자비심으로 인하여 육도윤회의 세계에 남아 일체의 생명이 있는 것을 ‘부처의 경지’로 인도할 때까지 스스로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서원한 존재를 말한다
* 십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02110&cid=50763&categoryId=50784
* 보살왕 사상은 티베트 불교 세계에 수용되어 역사적으로 여러 명의 보살왕을 배출했다
- 고대 티베트의 송첸 감보 왕, 티송 데첸 왕/ 몽골의 쿠빌라이 카안, 알탄 칸/ 청조의 강희제, 건륭제
2) 고대 티베트의 전륜성왕 송첸 감보
* 7세기 송첸 감보 토번을 건국
* 관음보살이 티베트 왕가에서 태어나 전륜성왕이 되어 불교를 전파하고 평화롭게 했다
2. 티베트 불교와 몽골
1) 몽골 제국의 전륜성왕 쿠빌라이 카안
* 티베트 불교를 국가적 차원에서 도입한 최초의 몽골 군주는 원조를 창시한 쿠빌라이 카안이다.
2) 전륜성왕 알탄 칸에 의한 티베트 불교의 부흥
* 14세기 후반 겔룩파 창시
* 15세기 다얀 칸의 등장
- 동몽골을 통일하고 오이라트 토벌
- 동몽골의 여러 부족을 좌익(차하르, 할하, 우량칸)과 우익(오르도스, 투메트, 융시예부)으로 재편
* 16세기 알탄 칸
- 티베트에서 제3대 달라이 라마 소남가초를 초청하여 쇠퇴해 가던 티베트 불교를 몽골 땅에서 부활시킴
* 몽골에 전생 사상이 보급됨에 따라 몽골 사회도 티베트와 똑같이 변하기 시작했다.
* 이러한 티베트 문화는 몽골인을 통해 만주인에게도 전해졌다.
3) 티베트 불교 세계를 지배한 제5대 달라이 라마의 권위
(1) 17세기 몽골의 상황
* 내몽골- 차하르 왕가를 비롯한 여러 집단
* 외몽골- 칭기스 칸의 후예인 할하 3집단(투시예투 칸, 자삭투 칸, 세첸 칸)
* 서몽골- 오이아트 3집단(호쇼트, 준가르, 토르구트)
(2) 만주인의 세력 확대
* 1637년 만주인, 차하르 왕가를 멸망시켜 내몽골을 병합
* 1643년 만주인, 명조를 멸망시킴
(3) 제5대 달라이 라마의 강력한 권위
* 1642년 제5대 달라이 라마는 호쇼트부 구시 칸의 도움을 받아 정적이었던 카르마-카규파를 제압하고 중앙 티베트의 패권을 장악
-> 제5대 달라이 라마의 권위는 티베트는 물론, 몽골과 만주 왕공들에게 큰 영향을 미침(특히, 몽골에 강력한 영향을 미침)
3. 티베트 불교와 청조
1) 강희제의 티베트 불교 세계에 대한 군사적 통합
= 1720년 청조의 티베트 평정/ 1723년 청의 티베트 병합
* 불경에서는 문수보살은 동방을 담당하는 부처로 되어 있다.
* 1682년 제5대 달라이 라마가 타계하자, 섭정 상게 갸초는 이를 숨기고 그의 권위를 빌어 계속 정권을 담당했다.
* 1686년 오이라트 준가르의 갈단은 할하의 젭춘담바가 달라이 라마에 대해 불경하다는 이유로 할하를 침공, 할하 왕공들은 청으로 도주 & 준가르 갈단, 청을 침공
-> 1697년 청 강희제의 친정으로 갈단을 괴멸 시킴
* 6대 달라이 라마는 청 소환길에 사망/ 호쇼트부의 라장 칸이 새로 옹립한 제6대 달라이 라마는 대중에게 지지를 받지 못함 & 티베트 왕의 방계인 칭하이 호쇼트부는 제7대 달라이 라마를 별도로 옹립
* 1717년 갈단에 이어 준가르부 수장이 된 체왕 랍탄, 라사를 점령
-> 칭하이 쇼호트인들은 강희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제7대 달라이 라마는 청의 보호를 받게 됨
-> 청은 태도를 바꿔 칭하이 호쇼트부의 협력을 촉구
-> 1720년 청과 호쇼트부는 티베트를 침공 & 라사에 고립되어 있던 준가르군은 철군
-> 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티베트 왕을 선출하도록 요청했으나 티베트 왕을 선출하지 못함
-> 1723년 롭장 단진이 반란을 일으키자 청이 이를 제압하고 티베트를 병합
2) 건륭제의 정복 활동을 통해 본 전륜성왕 사상
* 1755년 준가르 제압
* 1759년 신장 정복
* 1771년 토르구트 귀환
- 17세기 초기에 고향을 떠나 볼가 강 유역에 정착하여 유목하던 토르구트인들이 본거지인 일리 계곡(카자흐스탄 남동부)으로 돌아온 사건
* 1792년 구르카 전쟁
- 판첸 마라의 동생이 네팔의 구르카 군을 선동
-> 구르카군이 티베트를 침략한 것을 계기로 청 군대는 티베트의 혼란을 수습하고, 구르카를 원정하여 카투만두를 함락한 다음 조공을 약속받고 귀환했다.
-> 구르카 전쟁을 기점으로 하여 건륭제의 불교 신앙은 급속히 냉각 되었다
3) 티베트 불교 세계의 역사적 의의
cf)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 젭춘담바 쿠툭투, 창캬 쿠툭투
* 달라이 라마- 관음보살의 화신
* 판첸 라마- 티베트에서 달라이 라마 다음으로 권위를 가진 화신 라마승, 아미타불의 화신
* 젭춘담바 쿠툭투- 청 지배기 할하(외몽골) 지역의 라마교 수장
* 창캬 쿠툭투- 청 지배기 내몽골 지역 라마교 수장
< 6장. 중앙유라시아의 주변화 >
1. 청조의 발흥과 중앙유라시아 세계의 해체
* 1616년 누르하치, 여진족을 통합하고 후금을 건국
* 1636년 홍타이지, 나라 이름을 대청이라 개칭
* 1644년 청은 오삼계의 도움 받아, 이자성을 물리치고 베이징에 입성
* 1697년 외몽골을 청에 편입
* 1689년 청과 러시아, 두 나라간의 국경을 확정한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 헤이룽강(=아무르강, 흑룡강)을 국경으로 삼음
* 1720년 티베트 평정
* 1759년 건륭제, 신장과 시짱(티베트)을 영토에 편입시킴.
2) 청조의 몽골, 티베트 지배의 이념과 기구, 제도
3) 청나라의 몽골 지배와 몽골 사회의 변화
* 몽골에 한인 농민과 상인이 급증
4) 러청 관계와 몽골
*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
* 1728년 캬흐타 조약- 외몽골과 시베리아 지역의 국경이 결정
* 1891년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 철도 부설
5) 영국과 티베트
* 영국은 티베트를 자국의 보호국이나 식민지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 1906년 영국은 청 정부와 협정을 체결= 영국은 티베트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확인
6) 청나라 말기의 몽골과 티베트 정세
(1) 청나라 말기 몽골의 정세
* 1906년 청나라 정부의 관제 개혁 실시
-> 내몽골은 지지/ 외몽골은 반대
-> 1911년 외몽골은 러시아에 밀사 파견
-> 1911년 9월 러시아의 외교적 압력으로 신정책 추진 중단을 발표
-> 1911년 10월 10일 우창 봉기 발발하면서 청제국이 몰락 & 몽골은 독립 추진
(2) 청나라 말기 티베트의 정세
* 영국이 티베트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확인
* 1910년 청군, 라사로 진격
2. 동투르키스탄
1) 모굴리스탄 칸국
(1) 전기 모굴 칸국= 모굴리스탄 중심(영토는 톈산 산맥 남, 북)
* 1340년대 차가타이 울루스, 동과 서로 분열
* 1347년 투글루크 티무르, 동부의 칸으로 즉위= 전기 모굴리스탄 칸국 건국
(2) 후기 모굴 칸국= 톈산 남부가 중심(영토는 톈산 산맥 남쪽으로 축소/ 동, 서로 분열
* 15세기 후기 모굴리스탄 칸국은 새로운 유목 세력이 대두하면서 쇠퇴하기 시작
-> 근거지를 일리강 계곡에서 톈산 남부 오아시스 지대로 옮김
-> 모굴 칸국의 지배층은 점차 정주화와 이슬람화되면서 유목적인 성격을 상실해 갔다.
* 동, 서로 분열
- 1504년 만수르 칸 즉위(동부 칸가/ 투르판)/ 1514년 사이드 칸 즉위(서부 칸가= 카슈가르 칸국, 야르칸드 칸국/ 야르칸드)
* 1517년 동부 칸가의 만수르 칸, 하미 점령
* 1660년대 서부 칸가에서 욜바르스(백산당이 지지)와 압둘라(흑산당이 지지)의 대립
* 1680년경 준가르의 갈단, 카쉬가리아 정복
cf) 모굴리스칸, 망갈라이 수베
* 모굴리스탄: 톈산 산맥 북쪽
* 망갈라이 수베: 톈산 이남의 타림 분지
2) 수피즘의 영향
3) 청나라의 동투르키스탄 정복
* 1757년 준가르 멸망
* 1759년 동투르키스탄은 신장이라 칭해지고 청 제국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4) 민정과 현지 지배층
* 남로의 오아시스에서는 신장의 독자적인 제도인 이른바 ‘벡 제도’를 시행했다.
8 각 오아시스의 최고위 민정관은 하킴 벡이다.
5) 호자들의 성전과 코칸드
* 1733년 밍 부족(우즈베크족의 한 지파)의 수령 압둘 카림 비이 독립, 코칸트 칸국의 성립
* 1820, 25, 26년 코칸드 칸국의 지원을 받은 자한기르의 저항
6) 무슬림 반란
* 1862년 섬서, 감숙 회민(이슬람을 신봉하는 한인) 반란
* 1864년 신장 무슬림 대반란
7) 야쿱 벡 정권
* 1865년 야쿱 벡, 카쉬가르로 넘어와 무슬림 정권 수립
* 1870년 야쿱 벡, 톈산 이남 전역을 지배
* 1877년 야쿱 벡의 무슬림 정권 붕괴
8) 청조의 재정복과 성 제도의 시행
* 1878년 청,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던 일리 계곡을 제외하고 신장 전역을 수복
* 1881년 일리 조약 체결
- 러시아 점령지를 청에 반환
* 1884년 청, 신장에 성 제도 도입
3. 서투르키스탄
1) 타타르인의 정복
* 1552년 모스크바 대공 이반 4세, 볼가 강 중류 유역의 카잔 칸국 정복
- 러시아의 중앙유라시아 정복의 시작
* 1556년 이반 4세, 볼가 강 하류 유역의 아스트라한 칸국 정복
* 반무슬림 정책 시행
2) 타타르 상인의 대두
* 18세기 말 예카테리나 2세, 이슬람에 관대한 정책 실시
- 러시아 영내 무슬림은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 타타르 상인의 대두
- 러시아의 동방 무역이 비약적으로 확대됨
3) 타타르-무슬림의 부흥
4) 카자흐 초원의 병합
* 16세기 말 러시아, 시비르 칸국(1490-1598)을 정복
* 1730년 소쥐즈, 준가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에 복속을 청원
* 1820년대 러시아는 소, 중쥐즈에 직접 통치를 도입
* 1847년 러시아, 대쥐즈 병합
5) 카자흐 초원의 변화
** 러시아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카자흐 초원 유목 사회에서 몇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1) 이슬람의 진전
- 타타르인에 의한 카자흐인의 이슬람화
(2) 19세기 후반에 세속적인 카자흐 지식인 제1세대가 탄생하고, 후대 카자흐 민족주의자와 연결되는 조류가 탄생했다.
(3) 1890년대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농민이 본격적으로 초원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초원의 민족 구성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6) 투르키스탄의 세 칸국
(1) 부하라 칸국
* 1599년 샤이반조의 남계 혈통이 단절되자 압둘라 2세의 조카인 바키 무함마드가 즉위하여 새 왕조인 잔조(Janid dynasty/ 아스트라한조를 계승)를 개창
* 1740년 이란의 나디르 샤가 마 와라 안나흐르를 정복하면서 잔조는 쇠망
* 1756년 칭기스칸계가 아닌 망기트조가 수립= Emirate of Bukhara
(2) 히바 칸국
* 1512년 아불 하이르 칸의 직계가 아닌 다른 가계에 속한 일바르스 칸이 호라즘 지방에서 건국
* 1740년 히바 칸국, 아프샤르 왕조 나디르 샤의 침공을 받음
* 18세기 왕권이 약화 되었으며, 우즈베크의 콩기라트족이 재상이 되어 실권을 장악했다.
* 1804년 Kongrad dynasty 성립
- 쿵그라트 부족의 엘튀제르가 칸을 선언
(3) 페르가나에 코칸트 칸국의 성립(1709-1876)
* 1733년 밍 부족(우즈베크족의 한 지파)의 수령 압둘 카림 비이 독립, 코칸트 칸국의 성립
* 1763년 코칸트 칸국에서 이르다나 비이, 스스로 칸을 칭함
7) 투르키스탄의 정복
* 1876년 코칸드 칸국, 러시아에 편입
* 러시아, 사마르칸트(1868년)과 히바(1873년) 점령
* 1881년 유목 투르크멘에 대한 괴크테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은 완료되었다.
* 1867년 타슈켄트에 투르키스탄 총독부 설치
8) 투르키스탄의 식민지화
* 투르키스탄에 대한 러시아 경제 정책의 기본 전략은 면화 생산을 확대하고 이를 중앙 러시아의 공업 지대와 확실하게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 1898년 안디잔 봉기 발발
9) 이슬람 개혁 운동의 전개
** 투르키스탄의 자디드 운동
* 1880년대 기존의 마크탑 대신에 ‘새로운 방식의 학교’를 보급하고 이를 통해 러시아 제국 내 무슬림들의 지위 향상을 도모하려는 교육 개혁 운동이 확산되었다.
* 여기에 찬성하는 개혁주의자들을 자디드, 그들의 운동을 자디드 운동이라고 부른다.
-> 이 안에서 투르키스탄의 자치를 요구하는 투르키스탄주의 운동이 출현하게 된다.
< 7장. 혁명과 민족 >
1. 몽골과 티베트
= 몽골 문제에는 러시아가 개입, 티베트 문제에는 영국이 개입
1) 몽골의 독립 선언과 국제 관계
* 1911년 12월 1일 몽골인, 외몽골 후레(현 울란바토르)에서 독립 선포
= 복드 칸국(대몽골국/ 1911-1924년/ 외몽골에 한정)
* 1915년 캬흐타 협정- 몽골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 인정
2) 티베트의 독립
* 1912년 티베트 왕국 성립(1912-1950년)
* 1913-14 심라 회의- 중국측의 서명 거부로 실패
3) 몽골의 인민혁명
* 1919년 중국의 압력으로 외몽골 자치 철회
* 1921년 몽골 인민당, 중국군을 축출하고 독립 정부 수립(몽골인민정부)
4) 초기 몽골의 인민 정권과 중소 관계
* 1924년 소련은 외몽골에 대한 중화민국의 종주권을 승인
*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 선포
* 1920년대 후반 이후 소련은 몽골인민공화국을 소련과 별개의 독립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 1930년대 집단화는 실패했지만, 한인 상인은 몽골에서 완전히 추방했음
5) 동아시아의 정치적 긴장과 몽골인
* 1930년대 동몽골은 일본이 장악
-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만주국 수립
* 1937년 몽돌 연맹 자치정부라는 괴뢰 정권 성립
* 1937년 할힌 골 전투
- 만주국과 외몽골 국경인 할하 강 주변에서 소련과 일본이 충돌하여 소련이 승리
6) 제2차 세계 대전의 종결과 몽골인의 운명
*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일본의 패망
* 1947년 내몽골자치구 인민정부 수립
- 내몽골자치정부 설립은 중국 공산당 지도 아래 내몽골인들의 숙원인 내몽골 지역의 재통합이 실현되었다는 데 일차적인 의의가 있다.
-> 나중에 중국에 편입
7) 티베트의 불안정한 지위
* 1950년 중공군, 티베트 침공 개시
* 1951년 ‘티베트 평화 해방에 관한 17개조 협의’
- 중국은 티베트 고유의 정치와 사회 제도, 그리고 달라이 라마의 지위를 보장하는 한편, 티베트도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이며 따라서 외교와 군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 들였다.
* 1959년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 설립
8) 동서 및 중소 대립과 몽골
* 몽골은 1930년대 후반부터 다시 완만한 속도로 집단화를 진행했다.
* 몽골은 1950년대 이후에는 공업화가 시작됐다.
-> 소련의 강력한 영향을 받음
2. 동투르키스탄
1) 신해혁명과 신장
* 1884년 신강성 성립 & 순무가 설치됨
* 1912년 일리에서 혁명파가 봉기함
* 1912년 양쩡신, 신장 도독이 됨
2)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 1912년-1944년 신강의 군벌 통치의 시대
: 1912-28년 양증신-> 1928-33년 금수인(진수런)-> 1933-44년 성세재(성스차이)
* 19333년 동투르키스탄 무슬림 공화국 성립(1933-34년/ 동투르키스탄 제1공화국)
- 타림 분지 서쪽 지역
* 1334년 마중잉, 동투르키스탄 무슬림 공화국을 봉괴시키고 소련으로 망명
3) 성스차이(성세재)의 독재
* 1933-44년 성세재(성스차이)의 독재
- 소련과 중화민국 사이에서 우세한 진형에 왔다갔다하는 기회주의자로 완전히 찍혀 몰락한다.
* 1944년 성세재, 국민당 정부에 의해 해임 & 우중신이 임명
4) 3구 혁명과 동투르키스탄공화국
* 1944년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발족(1944-1949년/ 동투르키스탄 제2공화국)
- 3구 혁명(일리, 알타이, 타르바가타이에서 혁명)과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성립
5) 신장 해방과 신장위구르자치구 성립
* 1949년 연립정부의 주석 부르한 샤히디가 국민당과 결별하고 공산당 지지를 선언
-> 신강은 중화인민공화국에 편입
* 1955년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성립
6) 한족 인구 증대와 문화 대혁명
* 한족 인구 증가 원인의 하나는 주로 퇴역 군인으로 조직된 신장군구생산건설병단 때문이다.
* 1950년대 말부터 1970년까지 20만명 이상의 투르크계 소수 민족이 소련으로 이주했다.
* 1966년 문화 대혁명으로 소수 민족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3. 중앙아시아
1) 1905년 혁명과 무슬림 민족 운동
* 1905년 러시아 혁명 발발
* 세 차례의 러시아 무슬림 대회 개최
- 1905년 제1회, 1906년 제2회, 1907년 제3회
* 1907년 제정의 반동은 무슬림 민족 운동의 발전을 크게 악화 시켰다.
2) 1916년 반란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 1916년 2월 니콜라이 2세 중앙아시아와 카자흐 초원의 동원령
-> 1916년 반란 발발
3) 2월 혁명과 자치 운동의 전개
* 1917년 2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의 붕괴 & 임시정부의 수립
* 1917년 5월 러시아 무슬림 대회 개최
- 연방파가 승리
4) 10월 혁명과 내전- 투르키스탄의 사례
* 1917년 10월 혁명
* 1917년 11월 투르키스탄 자치 정부 구성
-> 1918년 2월 붉은 군대와 아르메니아 군대의 공격으로 괴멸
* 소비에트 초기의 중앙아시아(교양인을 위한 중앙아시아사 129페이지)
- 러시아 혁명의 결과, 과거 러시아 제국에 속했던 중앙아시아에는 키르기스(카자흐)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20-1936), 투르키스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18-1924), 호라즘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1920-1924),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1920-1924)이 성립되었다.
* 1924년 투르키스탄투르크독립이슬람공화국 수립을 결의
* 1924년 ‘중앙아시아 민족 경계 획정’
5) 중앙아시아의 민족 경계 획정
= 1924년 ‘중앙아시아 민족 경계 획정’(1민족 1국가의 국민국가 수립)
= 교양인을 위한 중앙아시아사 131페이지
* 투르키스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호라즘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을 해체하고 이들 영역을 민족별로 재편성하여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타지크 자치공화국, 카라 키르기스(후에 키르기스) 자치주로 만들고, 키르기스(후에 카자흐) 자치 소비에트 공화국의 남부 경계선의 위치도 재설정하였다.
* 국경획정 이후 근대적인 민족으로서 우즈베크인과 타지크인이 성립되었다.
* 이후 소련령 중앙아시아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이라고 불리게 된다.
6) 사회주의 건설
7) 민족과 이슬람
* 소련, 이슬람을 탄압
< 8장. 현대의 선택 >
1. 몽골
1) 소련, 동구권의 민주화와 몽골
* 1989년 몽골, 민주연맹 결성
* 1992년 국호를 몽골인민공화국에서 몽골국으로 바꾸고 헌법을 개정했다.
* 1992년 첫 총선- 인민혁명당이 승리
* 1993년 대선- 민주 세력 후보 승리
* 1996년 두번째 총선- 민주연합이 승리
* 1997년 대선- 인민혁명당 후보 승리
* 2000년 총선- 인민혁명당이 승리
2) 몽골 국민 의식의 형성
* 1980년 이후 민주화를 경험함에 따라 몽골인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민족주의와 ‘국민’의식이 정착되고 있다.
2. 중국 변방
1) 내몽골
(1) 내몽골의 형성과 문화 대혁명 시기 내몽골
* 1947년 내몽골자치정부 수립
* 1956년 내몽골자치구 영역이 거의 완성
* 문화대혁명(1966-1976)을 통해 과거 지도층과 지식인들 몰락, 소수 민족의 문화 소멸 위기
* 1960년대부터 한인들의 대대적 이주
(2) 개혁, 개방과 내몽골
* 1970년대 말부터 중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개혁, 개방을 표방하고 민족 정책 역시 유연한 자세를 취했다.
* 내몽골은 중국의 에너지, 중화학 공업, 양모 방직 공업의 유력한 거점이 되었다.
* 내몽골에 사는 몽골족은 대부분 한화 되었다.
(3) 부랴트공화국- 몽골국 북쪽 바이칼 호 동남쪽에 위치
- 인구 105만 중 몽골계 부랴트인은 35만명
* 1727년 캬흐타 조약에 의해 러시아령이 되었다.
* 1920년 극동공화국 수립(1920-1922)
-> 1923년 부랴트공화국
* 1937-1938년 스탈린 시대 피의 숙청으로 티베트 불교 승려들과 민족주의자들이 처형됨
-> 전통 문화가 파괴됨
(4) 칼미크공화국- 볼가 강 하류에 위치
- 전체 인구 33만명 중 몽골계가 45%
* 토르구트인은 준가르 제국이 붕괴된 후 1771년 대부분 고향인 일리 지방으로 귀환했지만 이 때 잔류한 사람들이 칼미크인이 된다.
* 1935년 자치공화국으로 승격
* 제2차 세계대전시 소련 정부는 칼미크인들을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킴
-> 1943년 자치공화국을 폐지
-> 1957년 강제 이주자들이 귀환
-> 1958년 자치공화국 부활
-> 1992년 러시아연방의 한 공화국이 됨
2) 티베트
* 1912년 중화민국 성립
* 1913년 제13대 달라이 라마, 티베트 독립 선언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 1951년 중국, 라사 침입
* 1959년 티베트 사태 발발
-> 제14대 달라이 라마 망명, 티베트는 중국에 편입
* 1960년 달라이 라마, 북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 수립
3) 신장위구르자치구
(1) 1980년대 상황
* 1982년 중국 정부는 개방 정책을 채택
* 1989년 대규모 시위 발생
(2) 현재의 신장- 정치 권력, 한족, 소수 민족
* 현재 신장에는 13개 소수민족(한족을 합하면 14개)이 살고 있다.
3. 중앙아시아
1) 페레스트로이카와 중앙아시아
* 1989년, 1990년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민족 분규 발생
2) 지식인의 민족주의
3) 이슬람의 부흥
* 그러나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에서는 원리주의를 포함하여 이슬람 세력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4) 독립 후 중앙아시아 국가들
*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
-> 중앙유라시아 지역의 5개 공화국(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이 독립
* 1989년부터 1997년 사이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인구는 350만명에 이른다.
= 인재의 유출
5) 타지키스탄 내전
* 1992년 타지키스탄 내전 발발
- 보수적인 공산당 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라스타히즈 등 민족주의 조직, 민주당, 이슬람 부흥당을 비롯한 정치세력(반대파 연합) 사이의 대리
- 1993년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공산당 세력이 반대파를 제압함으로써 거의 종식 되었다.
6) 새로운 중앙아시아권의 성립과 과제
* 1993년 타슈켄트 회담에서 5개국 수뇌들은 새로운 지역 명칭인 첸트랄리나야 아지아(중앙아시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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