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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사

<최초의 역사 수메르> 정리

by iamcool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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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역사 수메르 by bluebird

- 2021119일 정리

 

 

< 1부 최초의 도시문명국 >

BC 6500-BC 3000

 

* 대홍수 이전 수메르의 중심지

8500년전 오우에일리-> 7400년전 에리두-> 6000년전 우루크->-> 슈루파크-> 4900년전 대홍수

 

1. 원수메르인, 정착하다

* 8,500년전 오우에일리에 원수메르인 정착

- 오우에일리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남부 최초의 농부였다(보리와 밀 수확)

- 강둑에는 대추야자가 많았다

* 오우에일리의 삶은 8,500년전부터 5,000년전까지 이어졌다(3,500년간)

 

2. 최초의 도시, 에리두

* 7,400년전 최초의 도시, 에리두

- 신전 건설

- 에리두의 신은 엔키(Enki/ 인간의 창조주)

* 에리두의 삶은 7,400년전부터 2,600년전까지 이어졌다(4,800년간)

 

3. 우바이드 문화, 퍼지다

* 7,000년전 에리두 북서쪽에 우르크 성립(7,000년전-1,300년전/ 5,700년간) & 에리두 바로 북쪽에 우바이드 성립

* 남부의 우바이드 문화가 북부 테페 가우라로 퍼져 나갔다

- 남부 우바이드 문화의 대표 도시는 에리두

- 북부 우바이드 문화의 대표 도시는 테페 가우라

* 우바이드 문화가 딜문(바레인과 그 주변), 마간(오만과 그 주변), 인더스강 유역까지 퍼져나갔다

* 우바이드 문화는 아직 발굴하지 못한 오우에일리 최초의 주거지층을 감안하면 최소한 8,500년전 이전에 시작해 5,800년전까지 지속되었다= BC 6500-BC 3800

 

4. 우루크, 에리두를 밀어내다

* 6,000년전 우르크, 에리두를 제치고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이 되었다

* 우루크의 가장 큰 마을인 에안나에 사는 사람들은 풍요의 여신인 위대한 인안나(Inanna)를 섬겼고 신전을 지었다

 

cf) 수메르 신 계보

1) 일곱 지배신과 그 외 신

(1) 4주신

* (An)- 하늘, 신들의 아버지/ 우루크/ 아누(Anu)

* 엔릴(Enlil)- 대기(바람)/ 니푸르(에쿠르)

* 엔키(Enki)- (초기에는 땅)/ 에리두(아브주)/ 에아(Ea)

* 닌후르쌍(Ninhursag)- (), 신들의 어머니/ 우루크(에키쉬누갈)/ 닌마(Ninmah)

 

(2) 3천신

* 난나(Nanna)- / 우르/ (Sin), 슈엔(Suen)

* 인안나(Inanna)- 사랑. 섹스, / 우루크(에안나)/ 이쉬타르(Ishtar)

* 우투(Utu)- / 시파르/ 샤마쉬(Shamash)

 

(3) 기타

* 닌기르수(Ningirsu)- , 서기, 사냥/ 라가쉬/ 니누르타(Niurta)

* 남무(Nammu)- 태초의 바다/ 우르

 

 

2) 계보

남무(Nammu)-> (An)-> 엔키(Enki/ 부인은 닌후르쌍)

-> 엔릴(Enlil)-> 난나(Nanna)-> 인안나(남편은 두무지), 우투(Utu)

-> 닌기르수(Ningirsu)

 

https://en.wikipedia.org/wiki/Sumerian_religion

 

5. 급변

* 5,770년전 마을이 10배 이상 늘어났다

- 서부의 반유목민, 북부의 농부, 바닷가 사람들이 남부로 모여 들었다

 

6. 경작지의 한계

* 이주민의 정착

- 페르시아만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바다에서 가까운 남부의 남쪽에 정착

- 북부나 서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남부의 북쪽에 정착

* 경작지의 한계

 

7. 쟁기와 짐수레 바퀴

* 쟁기와 짐수레 바퀴의 발명

 

8. 해양무역의 혁명

* 범선의 발명-> 해양무역이 번성

 

9. 청동기와 물레

* 청동기와 물레의 발명

- 청동으로 사치품 제작(무기에서부터 제기까지)

- 물레로 서민용 밥그릇 제작

 

10. 문자의 탄생지, 우루크

* 우루크의 에안나 신전에는 18단계의 주거지층이 있다

- 신전이 17번 개축되었다

* 우루크 석회암 신전의 4번째 주거지층에서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 출토

- 5,500년전 우루크에서 이미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11. 거래기억장치, 물표

* 1만년전 사람들은 물표를 만들어 냈다

- 북부인들은 조약돌 물표/ 남부인들은 점토로 만든 물표를 사용

- 물표함과 물표뭉치 사용

 

12. 점토판과 인장

* 점토판과 인장-> 5,500년전 수메르의 상형문자

 

13. 상형문자와 설형문자

* 5,500년전 우루크에서 문자 사용

- 상형문자에서 설형(쐐기)문자로 진화했다

 

14. 문명의 조건

* 문명은 농부의 오두막에서 시작되지만, 오로지 도시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다

 

15. 문명 탄생지, 우루크

* 수메르는 최초의 문명국이었다. 우루크는 최초의 문명도시였고, 문명의 도가니였다

 

16. 대사제, 왕이 되다

* 가뭄+ 유프라테스 강줄기가 서쪽으로 이동

-> 도시로 밀집

-> 큰 운하 건설

-> 도시민의 삶을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

- 이미 6,000년전 부터 우루크 사제-왕이 존재

 

17. 최초의 도시문명국, 수메르

* 도시 형성

- 대부분의 도시는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지만 몇몇 도시는 티그리스강 주변에 세워져 있었다

- 수메르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 문명이었다

- 수메르는 가뭄을 이겨낸 최초의 도시문명국이었다

 

 

 

 

< 2부 최초의 역사 >

BC 3000-BC 2600(1-5)

BC 2600-BC 2334(6-30)

 

* 대홍수 이후 수메르 초기왕조

1) 4,900년전-4,600년전 수메르 초기왕조의 전반기(영웅시대)

키쉬 1왕조-> 우루크 1왕조

 

2) 4,600년전-4,355년전 수메르 초기왕조의 후반기

4600년전 라가쉬와 움마의 에덴쟁탈전(250년간)

4550년전? 키쉬의 메실림이 집권- 라가쉬와 움마의 평화조약

4500년전? 우르와 움마의 라가쉬 협공-> 라가쉬의 승리

4450년전? 라가쉬의 에안나툼은 엘람, 수바르투, 우루크, 우르를 정복하고 수메르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라가쉬 1왕조 7대 엔메테나는 성군이었다

라가쉬 상가 왕조의 9대 엔엔타르지와 10대 루갈안다의 폭정

움마 12대왕 루갈자게씨가 수메르를 통일

BC 2334년 악카드인 사르곤의 아카드 왕국 성립

 

1. 유프라테스강과 수메르인의 운명

* 수메르는 물의 나라였고 수로의 나라였으며 운하의 나라였다

- 가뭄은 극복할 수 있었으나 홍수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2. 슈르파크의 비국

1) 4,900년전 수메르에 대홍수 발생

- 슈르파크의 멸망

- 유일한 생존자는 지우쑤드라

 

2) 수메르 왕조 기록의 홍수 이전 통치자들(수메르 문명과 역사 77p 참조)

(1) 에리두: 아룰림-> 아랄가르

(2) 바드티비라: 엔멘루안나-> 엔멘갈안나-> 양치기 두무지

(3) 라라크: 엔시파지안나

(4) 씨파르: 엔멘두르안나

(5) 슈르파크: 우바라-투투-> 지우쑤드라

 

cf) 지우쑤드라= 우트나피쉬팀, 아트라하시스

 

3. 키쉬의 부상

1) 대홍수 이후 키쉬가 부상

- 키쉬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가깝게 만나는 곳

 

2) 자본의 이동 경로

(1) 북부의 자본의 이동 경로

마리-> 씨파르-> 키쉬-> 남부의 도시

(2) 남부의 자본의 이동 경로

남부의 도시-> 키쉬-> 씨파르-> 마리

 

cf) 마리- 4,900년전 수메르 북서쪽, 지금의 시리아 땅에 있던 유목민들이 유프라테스강 서편에 세운 도시

 

4. 왕조의 시작

1) 6,000년 전부터 우루크에는 이름모를 사제-왕들이 있었다

- 우루크는 대홍수 이전 약 1,000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국가 였고, 문자를 발명하고 역사시대를 연 문명의 발상지였다

- 그러나 <수메르 왕명록>의 필경사는 대홍수 이전의 우르크와 통치자에 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2) 대홍수 이후 키쉬 1왕조와 우르크 1왕조(수메르 문명과 역사 275p)

- 4,900년전에서 4,600년전 초기 왕조의 전반기 영웅시대

 

(1) 키쉬 1왕조(BC 30-26세기)

* 5,200년전 키쉬가 건설되었다

* 4,900년전 키쉬에서 왕조가 열렸다

- 300년 동안 23명의 왕이 키쉬를 다스렸다

- 13대왕 에타나는 모든 외국 땅을 통합했다

- 22대왕 엔메바라게씨는 수메르 동쪽의 엘람을 굴복시켰다

 

(2) 우루크 1왕조(BC 28-27세기)

* 1대왕 메쉬키악가쉐르

* 2대왕 엔메르카르- 미지의 도시 아라타와 다투며 외교전에서 승리했다

* 3대왕 루갈반다/ 4대왕 두무지

* 5대왕 길가메쉬

 

5. 영웅-, 길가메쉬

1) 우루크 제1왕조의 성립(BC 28-27세기/ 12명의 왕)

* 키쉬와 우루크가 대립-> 우르크가 키쉬를 누르고 수메르 왕권을 차지

* 그러나 키쉬는 여전히 강했다

 

2) 우루크의 5대왕 길가메쉬가 키쉬를 물리침

 

6. 에덴쟁탈전

1) 에덴 쟁탈전

* 4,900년전 대홍수가 멈추자 라가쉬의 기르수는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나 큰 가뭄이 땅을 덮쳤다.

* 4,600년전 라가쉬와 움마는 라가쉬의 기르수(라가쉬의 성도)와 움마의 기샤 사이에 있는 구에덴나(에덴의 초입)에서 충돌

 

2) 에덴의 역사

* 5,200년전 수메르인이 에덴을 최초로 기록

* 4,600년전 에덴쟁탈전

* 2,600년전 히브리인이 에덴을 기록

 

7. 라가쉬의 개척자, 엔헤갈

* 4,600년전 라가쉬 1왕조의 첫번째 왕 엔헤갈은 라가쉬의 개척자였다

- 그러나 <수메르 왕명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 라가쉬와 움마는 4,600년 전부터 대략 250년 동안 싸웟다. 그러나 양국은 4,900년에서 4,600년전에 이미 이름 없는 왕들이 있었고, 에덴을 차지하기 위해 계속 대립했다

 

8. 메실림의 내정간섭

1) 4,550년전? 키쉬에서 메실림이라는 강력한 권력자가 나타났다

* 아답에 내정 간섭

- 메실림은 아답의 국가 행사에 사신을 보냈다

* 라가쉬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 키쉬 왕(루갈) 메실림은 닌기르수 신전의 건설자로 닌기르수 신을 위해 (왕홀을) 세웠다. 라가쉬의 지배자(엔시)는 루갈샤엔구르(라가쉬 제1왕조의 두번째왕)였다

 

2) 키쉬의 메실림은 라가쉬와 움마 휴전협정을 이끌어 내고 직접 경계비를 세웠다

- ‘수메르의 성도니푸르 사제단의 동의를 받았다(니푸르의 수호신은 엔릴)

 

9. 우쉬의 라가쉬 침공

* 움마 1왕조 첫번째 왕 우쉬가 수메르 최대국가 라가쉬를 침공했으나 라가쉬가 승리

- 저자는 이때 라가쉬의 왕은 루갈샤엔구르라고 기술

 

10. 우르-난쉐의 비상

* 4,500년전 라가쉬에 우르-난쉐가 집권

- 우르-난쉐는 라가쉬 1왕조의 3대왕이자 우르-난세 세습 왕조의 시조이다

- 우르-난쉐는 라가쉬의 성도 기르수에 바가라 신전(난기르수를 모시는 신전)을 세웠고, 수로를 건설했다

 

11. 우르와 움마의 라가쉬 협공

1) 4,550년전 우르에서 메스안네파다라는 왕이 왕조를 열었다

- 우르 1왕조의 창시자

 

2) 우르와 움마의 라가쉬 협공-> 라가쉬의 승리

- 이때 우르의 왕은 메스안네파다 이거나 그의 아들 아안네파다이다.

- 움마의 왕은 파빌갈투쿠

- 라가쉬의 왕은 우르-난쉐

 

12. 최초의 왕실 가족

* 우르-난쉐는 우르 및 움마와의 전쟁 이후 신전을 건축을 하였다

- 움마의 전쟁포로 대상인 후르삭쉐막이 신전 건축에 사용할 나무를 딜문에서 구해왔다

 

13. 에안나툼의 신통한 출발

* 라가쉬 1왕조 4대왕 아쿠르갈은 유약했고 단명했다

* 아쿠루갈의 아들 5대왕 에안나툼은 신들의 축복 아래 집권

 

14. 움마의 반기

* 아쿠루갈 왕 재임시 움마의 침략-> 아쿠루갈 사망?

 

15. 신탁의 실현

* 에안나툼이 신탁을 받음

* 에안나툼이 움마군을 물리치고 승리함

 

16. 승자 에안나툼의 불안증

* 에안나툼은 경계비를 재건하였다

* 움마에서는 전쟁에 패한 이름 모를 왕이 처형되었고, 엔아칼레가 새로운 왕으로 옹립되었다

- 움마 1왕조의 4대왕

* 에안나툼은 에아나툼을 라가쉬로 불러 6번이나 재침 불허 약속을 신께 맹세하도록 했다

- 최초의 불평등 조약

 

17. 최초의 황제, 에안나툼

1) 에안나툼은 엘람, 수바르투, 우루크, 우르를 정복했다

= 에안나툼의 수메르는 최초의 제국이었고, 에안나툼은 수메르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 에안나툼은 엘람을 침략하여 우루와를 공략했다

* 에안나툼은 북방의 수바르투를 정복했다

* 에안나툼은 우루크와 우르를 정복했다

 

2) 에안나툼은 수메르의 패권을 손에 쥐자 라가쉬의 수호신 닌기르수를 기리기 위해 새 운하 룸마긴두를 건설했다

 

3) 전쟁의 여신 인안나는 에안나툼에게 라가쉬 왕권은 물론 키쉬 왕권까지 하사해 왕의 권위를 높여주었다

 

cf) 네 방위의 중요한 땅

- 니푸르를 기준으로 동쪽은 엘람, 서쪽은 마루투, 남쪽은 수메르, 북쪽은 수바르투

 

18. 흔들리는 제국

1) 속국의 반란을 겨우 방어

* 1- 엘람, 키쉬, 아크샤크의 침략

* 2- 엘람+ 수바르투의 침략

* 3- 키쉬+ 아크샤크+ 마리의 침략

 

2) 에안나툼 사망 후 에안나툼의 아우 엔안나툼이 집권

- 인안나의 이브갈 신전을 세웠다

 

19. 움마 왕, 우르룸마의 분노

1) 움마 왕 계보- 278페이지 참고

1대 우쉬/ 2대 파빌갈투쿠/ 3대 이름모를 왕(도는 우슈르두)/ 4대 엔아칼레/ 5대 우르룸마/

6대 일/ 7대 기샤키두/ 8대 에딘/ 9대 메안네두/ 10대 우사르-/ 11대 우-/ 12대 루갈자게씨

 

2) 움마 왕 우르룸마의 라가쉬 침공-> 패퇴

* 움마 왕 우르룸마는 불평등 조약에 반발해 라가쉬 침공

-> 라가쉬 6대 왕 엔안나툼 전사

-> 라가쉬 7대 왕 엔메테나가 전쟁에서 승리

-> 움마 왕 우르룸마 패퇴하고 자국민의 손에 살해 당함

 

20. 움마의 왕위 찬탈자

1) 자발라의 상가(신전 행정 총책임자)였던 이 움마의 왕위를 찬탈했다

- 일은 라가쉬 국경지대에 있는 신들의 제방과 언덕, 제단에서 물울 없애 버렸다

- 일은 라가쉬를 위협

 

2) 4,400년전 라가쉬는 우루크와 손을 잡았다

- 4,400년전 라가쉬의 왕 엔메테나와 우루크의 왕 루갈키니쉐두두가 역사상 최초의 외교조약을 맺었다

 

21. 성군 엔메테나

1) 엔메테나는 빚 탕감제도를 실시하여 노예해방을 했다

- 최초의 노예해방자

 

2) 엔테메나는 최초로 사회개혁 칙령을 발포하고 최초로 일부일처제를 선언했다

 

22. 왕이 된 이인자

1) 엔메테나 재위 시절 기루수의 상가였던 두두는 왕의 명령에 따라 기르수의 국경 근처에 있던 안타수라 신전을 개축했고, 구엔덴나의 살라(운하) 옆에 요새를 세웠다

 

2) 엔메테나가 죽고 그의 아들 엔안나툼 2세가 집권했으나 유약했다

 

3) 엘람이 라가쉬를 습격하자 두두의 아들 에엔타르지가 우르-난쉐 세습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위 찬탈= 상가 왕조

 

cf) 라가쉬 1왕조 계보- 290페이지 참고

1) 우르-난쉐 세습 왕조 이전

- 1대 엔헤갈/ 2대 루갈샤엔구르

2) 우르-난쉐 세습 왕조 6

- 3대 우르-난쉐/ 4대 아쿠르갈/ 5대 에안나툼/ 6대 엔안나툼 1/ 7대 엔메테나/ 8대 엔안나툼 2

3) 상가 왕조

- 9대 엔엔타르지/ 10대 루갈안다

4) 11대 우루카기나

 

23. 최악의 폭정

* 9대 엔엔타르지와 그의 아들 10대 루갈안다 재위 시절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다

 

24. 적폐의 치맛바람

- 구갈안다와 왕비 바라남타라는 담가르와 결탁하여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1) 루갈안다

* 라가쉬 땅 2/3를 차지

* 왕과 왕비의 가족을 상가로 임명하여 모든 신전을 통제

* 왕실의 사치를 위하여 딜문에서 구리를 대량으로 수입

 

2) 루갈안다의 왕비 바라남타라

* 내궁을 확장/ 넓은 땅과 신전을 차지

* 정치에도 적극 관여

- 자발라 북서쪽의 도시 아답과 교류

- 엘람과 교역

- 국가행사에 직접 참석

 

3) 왕과 왕비는 담가르와 결탁

* 왕의 담가르

- 담가르갈(대상인) 우르에무쉬/ 담가르(상인) 우르엔키

* 왕비의 담가르(상인)- 엔우다나

 

25. 개혁 실패

1) 라가쉬에서 우루카기나가 루갈안다를 제거하고 왕위 찬탈

* 정국 수습용으로 신전 개축

* 사회개혁 단행(부패척결, 세금 감면, 사면 단행)

* 라가쉬 종묘에서 제례를 올렸다

 

2) 우루카기나는 재위 2년에 스스로 루갈을 칭했다

-> 사회개혁 실패

 

26. 움마의 약진

* 움마 6대왕 일의 아들 7대왕 기샤키두가 국력을 키움

- 국경을 재정비

- 우르룸마의 딸 바라이르눈과 정략 결혼

 

27. 난세의 영웅

1) 움마 12대왕 루갈자게씨가 집권

- 니싸바의 사제/ 11대왕 우-우의 아들

 

2) 움마의 왕 루갈자게씨, 우루크의 왕이 되다

* 루갈자게씨, 남부의 남쪽 도시 6개를 통치

- 우루크, 우르, 라르싸, 움마, 자발라, 키안을 통치

 

28. 황제 루갈자게씨

1) 루갈자게씨, 라가쉬를 공격-> 라가쉬 1왕조 멸망/ 우루크 3왕조의 시작

- 라가쉬 1왕조의 마지막 왕은 11대 우루카기나

2) 루갈자게씨, 키쉬를 정복하고 수메르의 황제로 등극

 

29. 수메르 황제의 치욕

1) 악카드인 사르곤의 등장

* 우르크의 속국인 키쉬의 왕 우르-자바바(키쉬 4왕조 2대왕)의 신하였으나 반란을 일으켜 우르-자바바를 제거

-> 이후 양분된 키쉬를 통합

 

2) 사르곤은 우루크를 정복하고 루갈자게씨를 살해

 

30. 사르곤의 수메르 정복

1) 4,355년전(BC 2334) 사르곤의 아카드 왕국 성립

(1) 수메르의 땅 우르, 라가쉬, 움마를 차례로 정복

(2) 수메르 북동쪽에 있는 씨무르룸, 엘람과 무역 요충지로 유명한 아라와, 이란의 바락슘까지 정복

 

 

 

 

< 3부 수메르 암흑기 >

BC 2334-BC 2112

 

** 간단정리

* BC 2334년 악카드인 사르곤이 악카드 제국 건설

* 악카드 제국 4대 왕 나람-씬은 신으로 등극하고 정복전쟁을 벌였다

* BC 2154년 악카드, 구티인에 멸망

* 라가쉬 2왕조의 9대왕 구데아 수메르의 남부의 남쪽을 다스렸으나 구데아 사후 라가쉬 2왕조 쇠락

 

1. 악카드 제국과 사르곤의 식민통치

1) 사르곤의 식민통치(사르곤의 재위는 BC 2334-BC 2279)

* 속국의 통치자를 유지했으며 그 대신 악카드인 감시자를 배치했다

* 수메르어 뿐만 아니라 악카드어도 기록하도록 강요했다

* 수메르인의 신앙과 종교를 수용

- 여신 이쉬타르를 악카드의 국가 수호신으로 모셨다(이쉬타르= 인안나)

- 공주 엔헤두안나를 우르의 수호신 난나의 고위직 사제로 임명

 

2) 서부를 원정하여 조공을 받았다

 

2. 리무쉬와 수메르 독립전쟁

1) 사르곤 사후 사르곤의 아들 리무쉬가 집권(재위기간 BC 2278-BC 2270/ 9?)

 

2) 리무쉬는 각지에서 이러난 독립전쟁을 무자비하게 제압

* 아답, 자발라 봉기/ 움마, 키안 봉기/ 우르, 카잘루 봉기

* 엘람 땅의 바락슘, 자하라, 엘람, 구핀, 멜루하의 반란을 제압

 

3. 마니쉬투슈의 남방 무역전쟁

1) 리무쉬의 형 마니쉬투슈 집권(재위 BC 2270-BC 2255/ 15?)

 

2) 마니쉬투슈의 남방 무역전쟁

(1) 악카드의 북쪽은 무역로가 봉쇄되었다

- 북서쪽은 에블라가 강성

- 북쪽의 후리, 북동쪽의 룰루비와 구티 모두 호전적

(2) 그러므로 남쪽을 원정

* 안샨과 쉬리홈을 원정

* 바다를 건너 마간에서 은과 섬록암을 약탈

 

3. 나람-씬과 수메르 독립전쟁

1) 마니쉬투슈의 아들 나람-씬이 집권(재위 BC 2254-BC 2218/ 36)

 

2) 수메르 전역에서 독립전쟁을 일으켰으나 나람-씬에게 제압당한다

* 수메르 북쪽은 키쉬 왕 이프크르-키쉬를 중심으로 봉기

* 수메르 남쪽은 우루크 왕 아마르-기리드를 중심으로 봉기

 

5. 나람-씬의 과대망상

1) 나람-씬의 정복활동

* 서쪽 정복

- 에블라와 아르만 정복

* 북쪽 정복

- 후리를 정벌하고 수바르투 지역을 차지

* 동쪽 정복

- 엘람을 공격하여 굴복 시킴

- 엘람에 나람-씬이 요구하는 신전이 세워지고 공식어가 악카드어로 대체됨

* 북동쪽 정복

- 룰루비 정복

* 남쪽 정복

- 마간 정복

 

2) 나람-씬은 공주들을 여러 신전의 고위직 여사제로 임명하였다

 

6. 제국의 어두운 그림자

1) 나람-씬의 아들 샤르칼리샤리가 집권(25년간 재위)

- 니푸르 엔릴의 에쿠르 신전 개축을 마무리

- 바빌론에서 악카드의 국가 수호신인 이쉬타르와 왕실 수호신인 일라바를 모실 신전 공사를 시작

- 구티 왕 샤르라갑과 싸워 그를 사로 잡았다/ 바샤르 산에서 마르투인을 물리쳤다

 

2) 엘람과 라가쉬의 독립선언

* 수사의 군주이며, 엘람의 총독으로 있던 푸주르-인슈쉬나크가 독립을 선언하고 엘람의 왕으로 등극

* 엘람과 자하라가 침략-> 샤르칼리샤리가 겨우 방어

* 자그로스 산악지대에 사는 구티인이 출몰

* 라가쉬의 푸주르-마마가 라가쉬 루갈에 올라 독립 선언(라가쉬 2왕조의 시작)

 

7. 악카드, 사라지다

1) 샤르칼리샤리의 갑작스러운 사망

* 5대왕 샤르칼리샤리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무정부 상태(4명이 3년간 통치)

-> 이후 6대왕 두두와 7대왕 슈투룰이 집권

 

2) 악카드의 멸망(악카드 왕조의 존속 기간 BC 2334-BC 2154)

* 구티인이 침략으로 악카드 왕조 멸망

* 악카드의 멸망 이후 우루크가 잠시 왕권을 잡았다(우루크 4왕조)

 

 

8. 구데아, 희망을 품다

1) 구티인이 악카드와 수메르 남부의 북쪽을 지배

* 잠시 수메르 왕권을 잡고 있던 우루크 왕 우르-우투(우루크 4왕조 마지막 왕)도 구티에게 패배했다. 남부의 남쪽마저 흔들렸고, 수메르 왕권이 구티인에게 넘어갔다

-> 구티 왕 에르리두-피지르는 강력한 사방의 왕이었다

 

2) 라가쉬의 군주 우르-바바가 독립선언

-> 우르-바바(라가쉬 2왕조 8대왕) 사망 후 우르-바바의 사위 구데아(라가쉬 2왕조 9대왕)가 집권

 

9. 구데아의 꿈

* 구데아는 닌기르수 신전, 에닌누를 건축

 

10. 꿈이 이루어지다

* 에닌누 신전 완공

 

11. 유일한 빛이 저물다

1) 구데아, 수메르 남부의 남쪽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

* 구데아는 21명이나 되는 신들을 위해 신전을 신축하거나 개축했다

* 구데아는 정의롭고 평화를 사랑하는 왕이었다

 

2) 구데아가 죽고 그의 아들 우르-닌기르수 2세가 집권하면서 라가쉬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 4부 해방과 통일 그리고 종말 >

BC 2120-BC 2004

 

** 간단정리: 우루 3왕조의 통치기는 BC 2112-BC 2004이다

* BC 2120년 우루크 5왕조의 우투-헤갈이 구티의 마지막 왕 티리간을 제압했고 수메르는 해방을 맞이했다

* BC 2112년 우르의 총독이었던 우르-남무가 집권(우르 3왕조의 1대왕)하고 수메르를 통일

* 우르 3왕조 2대왕 슐기는 나람-씬 처럼 신이 되었고 전쟁광이 되었다

* BC 2017년 마리 출신 악카드인 이쉬비-에라는 독립선언 하고 이씬 왕조를 열었다

* BC 2004년 우르 3왕조는 자그로스 종족 연맹군(= 엘람 동맹군, 수바르투-엘람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1. 해방자, 우투-헤갈

1) BC 2120년 우루크 5왕조의 우투-헤갈이 구티의 마지막 왕 티리간을 제압했고 수메르는 해방을 맞이했다

 

2) 214년만의 해방이다

* 수메르의 암흑기는 BC 2334(수메르 초기왕조가 사르곤에게 멸망당한 해)부터 BC 2120(우투-헤갈이 티리간을 몰아낸 해) 사이이므로 214년 동안이다

* 구티의 압제기간은 34년 동안이다

- 악카드가 멸망한 때가 BC 2154년 이고, 구티가 물러난 해가 BC 2120년이다

 

2. 통일 황제, 우르-남무

1) 수메르의 해방자 우투-헤갈이 사망하자 우르의 총독이었던 우르-남무가 집권- 우르 3왕조의 1대왕

 

2) 수메르의 통일

우르-남무는 수메르와 악카드를 차지하여 우르 왕, 수메르와 악카드의 왕이 되었다

 

3. 수메르 재건

1) 도로 정비와 운하 건설

 

2) 신전 건축

- 우르에 난나 신전 재건+ 지구라트 에테멘니구루건설

 

3) 우르 성벽 건설

 

4) 도량형 표준화/ 대사면

 

4. 우르-남무 법전

* 우르-남무 법전 선포

 

5. 슐기의 내치

1) 우르-남무가 구티와 씨무다르와의 전쟁에서 사망

 

2) 우르-남무의 아들 슐기가 집권(우르 3왕조 2대왕)

(1) 신전 재건

 

(2) 우르, 우루크, 니푸르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 우르-우루크-니푸르를 잇는 도로망을 정비

 

(3) 슐기 10년에 우르에 에후르쌍 왕궁을 지었다

 

(4) 왕자들은 대개 우르 3왕조가 통치하던 지방도시나 군정도시에 총독으로 가 있었고, 공주들은 난나를 모시는 여사제 또는 우르 신관이 되거나 정략결혼에 동원되었다

- 딸 엔니르지안나를 난나를 모시는 여사제로 내정

 

6. 슐기의 광기

1) 슐기의 재위기간은 48년이다

- 재위 20년까지는 수메르의 문예부흥 시대를 이끌었다

- 나머지 28년간은 전쟁광이었다

 

2) 재위 21년 슐기는 나람-씬 처럼 신이 되었고 전쟁광이 되었다

* 재위 20년 우르 사람들을 창병으로 징집

* 재위 21년 스스로 신으로 등극/ 데르 파괴

* 재위 24~27년 수메르 북동쪽 도시들을 파괴

* 재위 30~32년 수메르 북동쪽 도시들과 안샨을 파괴

* 재위 35, 36년 여러 곳에 난나 신전을 건립

* 재위 37년 장성 축성

* 재위 39년 푸즈리-다간에 자신을 위한 신전을 지었다

* 재위 42-48년 수메르 북동쪽의 도시들을 파괴

* 재위 48년 슐기 사망

 

7. 우르의 분열

1) 3대왕 아마르-씬도 슐기처럼 팽창정책을 펼쳤으나 단명

 

2) 4대왕 슈-씬도 단명

* 티그리스강 상류의 싸마눔 정벌

* 마르투(아무르)인을 막기 위해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성을 쌓았다

 

3) 5대왕 입비-(우르 3왕조 마지막 왕)

(1) 지방도시의 이탈

* 푸즈리쉬-다간, 우루크, 에쉬눈나, 씨무르룸, 수사, 엘람가 이탈

* 움마, 니푸르, 기르수-라가쉬가 이탈

* 데르도 이탈

 

(2) 도시들의 이탈과 여러가지 악재로 물가가 폭등

- 주식인 보리 가격이 60배까지 올랐다

 

8. 배신자, 이쉬비-에라

1) 입비-씬이 보리를 구하기 위해 신하 이쉬비-에라를 이씬과 카잘루로 급파했으나 이쉬비-에라는 돌아오지 않았다

* 이쉬비-에라는 마리 출신의 악카드인이다

 

2) BC 2017년 이쉬비-에라는 독립선언 하고 이씬 왕조를 열었다

* 이씬과 니푸르 장악하고 독립선언

* 입비-씬은 엘람을 약탈하였고 우르는 일시적으로 호황을 누렸다

* 마지막 보루인 카잘루 마저 위험

 

cf) 이씬, 카잘루

* 이씬(isin)

- 니푸르 남쪽 32km에 위치한 도시

* 카잘루(kazallu)

- 바빌론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유프라테스강 서안 도시

 

9. 수메르, 사라지다

1) 우르 3왕조 멸망 직전의 3가지 세력

(1) 입비-씬의 도시 우르

(2) 이쉬비-에라의 이씬이 주도하고 키쉬, 에쉬눈나, 보르씨파가 합류한 세력

(3) 북방민족인 수바르투의 진눔이 주도하고 엘람, 수사, 니푸르, 카잘루가 동참한 세력

 

2) BC 2004년 우르 3왕조는 자그로스 종족 연맹군(= 엘람 동맹군, 수바르투-엘람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 입비-씬 재위 22(BC 2006)에 이씬 연합군이 쉬마쉬키 왕 킨다투와 수바르투 왕 진눔이 이끄는 자그로스 종족 동맨군을 물리쳤다. 그 덕에 입비-씬은 우르를 지킬 수 있었다

* 입비-씬 재위 23년에도 입비-씬은 외침을 간신히 버텨냈다

* 입비-씬 재위 24(BC 2004) 자그로스 종족 연맹군에 의해 우르 멸망

 

cf) 보르씨파

- 바빌론 남쪽 17km, 유프라테스강 동쪽 도시

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B%A5%B4%EC%8B%9C%ED%8C%8C

 

 

 

 

< '최초의 역사를 되찾은 기쁨 >

 

1. 이쉬비-에라의 본색

* BC 1992년 이쉬비-에라 우르의 엘람 주둔군을 몰아내고 우르를 차지

* BC 1987년 마침내 이쉬비-에라가 우르에 안착했다

 

2. 악카드인의 기질

* 이쉬비-에라는 마리 출신 악카드인으로써 노예이자 상인이었다

 

3. 과거사 청산 실패와 망국

 

4. 수메르의 배신자와 <수메르 왕명록>

* BC 1817년 이씬 왕조의 누르-닌슈부르가 <수메르 왕명록> 제작

- 의도적으로 라가쉬와 움마를 기록하지 않았다

 

5. 우르 3왕조판 <수메르 왕명록>과 역사왜곡

* 우르 3왕조판 수메르 왕명록에도 라가쉬가 기록되지 않았다

 

6. 우르와 라가쉬의 지역감정 싸움

* BC 2600년경 라가쉬의 왕이자 거부였던 엔헤갈이 곳곳의 땅을 사들여 라가쉬를 일으켰다

* BC 2500년경 라가쉬에서 우르-난쉐가 세습 왕조를 일으키자 라가쉬가 강력해졌다. 이 때 우르가 최초의 해전을 일으켰으나 라가쉬가 승리하였다.

* 수메르의 영웅 라가쉬의 왕 에안나툼이 수메르를 통일하자 우르는 라가쉬의 속국이 되었다

* 수메르 암흑기에 라가쉬는 구데아라는 성군을 배출했으나 우르는 기를 펴지 못했다

* 우루크 왕 우투-헤갈이 수메르를 해방시켰을 때도 우르는 우루크의 군정도시 내지 속국에 불과했다

* 우르 총독이었던 우르-남무가 수메르 최고 권력자가 되어서야 숙적 라가쉬를 무너뜨렸다

 

7. 수메르 역사에서 라가쉬의 증발

 

8. <수메르 왕명록> 역사왜곡의 진범

* 수메르 왕명록은 악카드 왕조에서 탄생했다고 보아야 한다

-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의 남쪽우루크에서 일어난 문명이었다. ‘남부의 북쪽중심지는 키쉬였다. 악카드의 사르곤은 키쉬에서 세력을 키웠다.

- 수메르 왕명록의 필경사들은 키쉬를 수메르 왕권의 출발지로 삼았다

 

9.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

* 이씬의 속국 라가쉬 총독으로 파견된 아무르인 군구눔이 이씬과 결별하고 라르싸를 건설

- 군구눔은 남부의 절반을 차지하게 됨

* 아무르인 수무-아붐이 바빌론(고바빌로니아)을 건설

* BC 1817년 이씬의 필경사 누르-닌슈부르가 국력이 땅에 떨어진 이씬을 위해 <수메르 왕명록>을 개작

* BC 1794년 라르싸의 림-1세가 다밐-일리슈의 이씬을 무너뜨리다

* BC 1763년 바빌론의 함무라비가 림-1세의 라르싸를 무너뜨리다

 

10. 라가쉬 애국 청년의 분노

* <라가쉬 왕명록>은 라가쉬 애국 청년의 어설픈 습작이었다

 

11. 대혼란

* 1872년 영국인 조지 스미스가 <길가메쉬 서사시>의 대홍수 이야기를 공개

 

12. 수메르족이 먼저냐, 셈족이 먼저냐

 

13. 유치찬란한 제국의 속성

* 1877년 프랑스인 샤르제크, 기르수-라가쉬 발굴

* 1922년 영국인 울리, 우르 발굴

 

14. ‘기억의 역사, ‘기록의 역사도 허구였다

 

15. ‘최초의 역사를 되찾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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