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리스, 로마사
2020년 9월 8일 정리 완료
< 아테네와 로마의 정치 형태 >
1. 아테네의 정치 형태
왕정-> BC 680년 귀족정-> BC 561년 참주정-> BC 508년 민주정
2. 로마의 정치 형재
BC 753-BC 509 왕정 로마-> BC 509-BC 27 공화정 로마-> BC 27-AD 476 제정 로마
< 그리스와 로마의 전쟁 >
1. 그리스의 전쟁
기원전 492-448년 페르시아 전쟁/ 기원전 431-404 펠로폰네시스 전쟁/ 기원전 334-323년 동방원정
2. 로마의 전쟁
* 기원전 343-----1차 삼니움 전쟁-----341년/ 340년-라틴전쟁-338년
* 기원전 326-----2차 삼니움 전쟁-----304년
* 기원전 298--3차 삼니움 전쟁--290년 280년--피로스 전쟁--275년
* 기원전 264---------------포에니 전쟁(118년간)--------------146년
< 이야기 그리스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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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의 정치 형태
왕정-> BC 680년 귀족정-> BC 561년 참주정-> BC 508년 민주정
1. 에게 문명의 발견
** 에게 문명
* 에게 문명의 시작- 기원전 3000년경 에게해의 섬과 연안 지역에서 금속과 돌을 함께 사용하는 에게 문명 시작
* 에게 문명= 크레타 문명(= 미노아 문명, 기원전 1600~1400년경 전성기)+ 미케네 문명(기원전 1400~1200년경 전성기)
* 기원전 1400년경
- 크레타 섬의 붕괴
- 문명의 중심이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로 이동
- 미케네 문명은 그리스인이 크레타 문명을 정복하고, 그 문명을 모방해 만든 것이다.
* 기원전 1200년경
-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미케네 왕국 붕괴, 그리스 암흑 시대 돌입
2. 다시 살아나는 미케네 문명
** 미케네 문명은 정치적으로 통일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미케네와 같이 성채를 중심으로 하는 다수의 소왕국들이 분립되어 있던 세계였다.
** 에게 문명의 3개 문자
1) 기원전 1700년 무렵까지 쓰여진 그림문자/ 그리스인이 아니다.
2) 기원전 1800~1500년경 선문자 A- 해독 불가/ 그리스인이 아니다.
3) 기원전 1500~1200년경 선문자 B- 해독 가능/ 그리스인- 그리스어의 초기 형태
** 기원전 1200년경 미케네 문명의 붕괴- 바다민족? 도리아인?
-> 암흑시대의 도래(기원전 1100~800년)
3. 테라 섬에서 일어난 일
** 기원전 16세기 테라 섬(산토리니)의 화산 분출
- 크레타섬의 붕괴시기인 기원전 1400년경과 약 1세기의 간격이 생긴다.
4. 그리스 세계의 팽창과 코린토스의 번영
** 기원전 814년 페니키아인, 북아프리카 튀니지아에 카르타고 건설
** 기원전 750년경 무렵 부터 그리스인은 서쪽에 식민지 건설 시작
* 그리스 세계에서 참주가 가장 먼저 출현한 것도 폴리스들에서였다.
** 코린토스의 대두
* 바다와 육상의 요충지
-> 상업과 수공업(도기 제조)의 발달
-> 최대의 도기 수출국
* 참주정의 대두- 킵셀로스와 그 아들 페리안드로스 시기에 전성기
* 기원전 6세기 중엽 참주정 붕괴- 아테네의 도기가 진출하면서 코린토스도 쇠락
5. 기원전 776년 올림피아 제전 시작
* 기원전 776년 올림피아 제전 시작- 처음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부에 국한된 소규모 경기
* 기원전 6세기경 폴리스까지 참여하여 그리스의 민족제전이 되었다.
* 올림피아 제전을 통해 민족의식이 싹틈.
6. 스파르타의 체제
1) 기원전 10세기 이후 도리아인의 일부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라코니아 지방에 정착
2) 기원전 7세기 무렵 ‘스파르타적’ 체제로 전환= 리쿠르고스 체제
* 2명의 왕- 군사령관과 최고 사제의 역할에 한정, 왕권은 약한편
* 장로회(게루시아)- 두 명의 왕 포함 30명의 원로들로 구성
* 감독관들(에포로이)- 기원전 6세기경 부터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됨/ 민회와 장로회를 운영/ 임기는 1년이고 중임 불가
* 민회(에클레시아)- 30세 이상의 모든 스파르타 시민이 참석
3) 그리스 최강의 육군국가 스파르타
7. 초기의 아테네
1) 아테네의 정치형태의 변화: 왕정-> 귀족정-> 참주정-> 민주정
2) 기원전 680년경 아테네 귀족정 수립(왕정에서 귀족정으로)
* 전설적인 왕 테세우스가 왕정을 폐지하고 귀족정이 되었다.
* 기원전 8세기 후반 귀족들은 왕의 권력을 박탈하였다.
* 기원전 682/1년에 왕은 임기 1년의 행정관이 되어버렸다.
- 3명의 아르콘에 의해 통치
- 수석 아르콘(최고 행정관, 입법), 폴레마르크(군사), 바실레우스 아르콘(왕 아르콘, 종교)
* 기원전 7세기 중엽 6명의 아르콘(사법) 되어 총 9명의 행정관이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3) 가족에 기초한 귀족정 사회
* 이오니아인의 공동체였던 아테네는 전체 4부족으로 구성되었다.
* 부족> 형제단(프라트리아/ 제사 공동체)> 씨족(공동 신)> 가족(오이코이)
4) 킬론의 참주 기도/ 엄격했던 드라콘의 법/ 솔론의 개혁
* 기원전 632년 킬론의 참주 기도 실패
* 기원전 621년 드라콘은 아테네 역사상 최초의 법전을 만들었다(처벌이 엄격했다).
* 기원전 594년 솔론의 개혁- 부채 탕감, 노예 해방, 토지 수확량을 기준으로 전체 시민을 4등분으로 구분
* 기원전 561년 페이시스트라토스가 헌법을 위반하고 참주가 되었다.
8.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
1) 참주의 의미
* 고대 그리스에서는 귀족들의 지배에서 민주정으로 넘어가는 기원전 7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각지에서 참주가 출현
2) 기원전 561년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정을 수립
*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정치는 독재적이기보다 민주적이고 합법적이었다.
9. 신탁과 인간
* 신탁이란 직접 신의 말씀을 듣는 방법이다.
* 신탁소 중에서도 특히 영험하다고 알려진 곳은 델포이(현재 델피)였다.
10.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 기원전 524년 클레이스테네스가 아르콘 역임
- 기원전 511년 스파르타와 알크마이온 가문이 결탁하여 참주정 붕괴
-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이라 불리는 정치 개혁을 추진하여 민주정(民主政)의 기초를 확립
1) 부족제도의 재편성
* 혈연에 기초한 4개의 부족-> 지연에 입각한 10부족으로 개편
* 500인 협의회 도입
- 이들은 민회에 제출할 법안 마련 및 최고 행정통제권을 지녔다.
*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으로 이제 프리트리아를 대신하여 공적 기능을 담당하게 된 것은 데모스(기초 행정 단위)였다.
2) 도편추방제의 실시
* 기원전 487년 최초 실시(기원전 416년 폐지)
* 참주의 출현을 예방한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유능하고 지도적인 인물까지 희생될 위험도 컸다.
11. 페르시아 전쟁과 아테네 제국의 탄생
- 기원전 492년 페르시아 전쟁 개시
** 기원전 492년,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년- 기원전 448년, 45년간): 페르시아 <-> 그리스
* 20 여년간, 3차 전쟁 모두 그리스 승리
* 이오니아: 그리스 식민시-> 기원전 7세기 중반 리디아에 종속->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에 종속
* 이오니아(당시 페르시아 영토)의 반란-> 아테네 원정군 사르디스 파괴-> 페르시아, 아테네 원정
(1) 1차: 마라톤 전투(아테네+ 플라타이아 <-> 페르시아)
(2) 2차: 테르모필레전투(영화 300), 살라미스 해전/ 스파르타의 지원이 결정적
(3) 3차: 플라타이아 전투/ 이오니아를 그리스에 내줌.
1) 이오니아의 반란
* 기원전 499년 밀레토스의 참주 대행자 아리스타고라스가 페르시아에 반란의 기치를 들었다.
-> 에레트리아와 아테네가 지원군 파견
-> 밀레토스 함락
2)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
*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는 이오니아 반란에 지원군을 파견한데 대한 보복으로, 아테네와 에레트리아에 정벌군을 보냈다.
*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의 승리
* 기원전 490년~480년 10년간의 정전
* 기원전 481년 스파르타를 맹주로 하는 스파르타, 아테네 동맹 체제 실현
3)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의 전투 & 살라미스 해전
(1)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지역에서 벌어졌던 페르시아군과 그리스 연합군 사이의 전쟁으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을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 대부분이 크세르크세스 왕이 이끈 페르시아군에게 전멸당하였다.
(2) 살라미스 해전
* 제3차 페르시아 전쟁 중인 BC 480년 9월 23일, 아테네 함대를 주력으로 한 그리스 연합해군이 살라미스 해협에서 우세한 페르시아 해군을 괴멸시킨 해전.
4) 기원전 479년 프라타이아 전투
* 플라타이아이 전투(Battle of Plataea)는 페르시아 제국 크세르크세스 1세의 원정 후 기원전 479년 8월 페르시아 잔존 세력과 페르시아 측에 붙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에 대항하여 스파르타, 코린트, 아테네 등 그리스 연합군이 싸워서 이들을 격퇴한 전투이다.
* 기원전 449년 페르시아와 평화조약 체결
5) 민족적 자각과 자유의 찬가
6) 기원전 477년 델로스 동맹의 결성
* 기원전 477년 아테네를 맹주로 하는 공수동맹이 델로스섬에서 결성되었다.
7) 아테네 제국
* 기원전 449년 페르시아와 평화조약 체결
* 기원전 454년 동맹금고를 아테네로 이전
8) 스파르타의 불안감
* 기원전 445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30년 평화조약 체결
12. 고전기(기원전 5~4세기) 폴리스와 아테네 민주정
1) 스파르타에도 문화가 있었을까
* 고전기 문화적인 융성은 특히 아테네에서 두드러졌고, 또 하나의 초강대국 스파르타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2) 폴리스의 공공생활
* 아고라- 시장
* 아크로폴리스- 수호신의 신전이 위용을 자랑하는 성역
3) 아테네 민주정의 서막을 열다
* 아테네 민주정은 성년 남자 시민이 참가하는 민회가 국정 전반에 걸쳐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 민회- 1인 1표의 투표 방식, 다수결의 원칙
4) 아테네 민주정의 진전
* 기원전 487년 9명의 아르콘을 선출하는 방식이 선거에서 추첨제로 바뀌었다
-> 아르콘의 권위 실추
-> 10인으로 구성된 장군들(스테라테고스)이 실권을 얻음.
* 기원전 462년 에피알테스의 개혁
- 기원전 462년 귀족적 평의회가 그때까지 지키고 있던 권한들 중 살인죄의 심리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500인 평의회와 민회 법정에 넘어감.
5) 에피알테스와 아레오파고스 평의회
* 아레오파고스 평의회는 전직 아르콘으로 구성된 귀족 집단
- 광범위한 재판권과 행정관들에 대한 선출권 및 감독권을 행사
* 기원전 462년 에피알테스 개혁에 따라 아레오파고스 평의회는 살인사건의 재판권과 몇 가지 종교적 권한을 제외한 모든 정치적, 사법적 권한을 박탈 당하였다.
- 귀족 평의회의 권한이 500인 평의회와 민회, 법정으로 넘어감.
6) 아테네 민주정의 완성, 페리클레스 시대
* 기원전 461년 아테네, 스파르타 동맹 파기/ 페리클레스, 아테네 정계의 지도자로 선출됨.
* 기원전 454년 아테네로 델로스 동맹금고 이전
* 기원전 451년 페리클레스, 아테네 시민권 취득자격 제한(양친이 모두 아테네 시민인 자로 제한), 아테네의 민주정 완성
7) 시민, 거류외인, 그리고 노예
* 시민- 대부분 종소 자영농/ 정치인인 동시에 주무장보병 내지 함선의 노잡이 수병
* 여성- 지위가 낮았다/ 부동산 소유나 참정권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었다.
* 거류 외인- 상공업 종사, 부동산 소유 불가
* 노예- 솔론 이래, 시민이 다른 시민을 채무 노예화 하는 것이 금지되고, 구매 노예를 많이 부리게 되었다/ 노예는 해방되면 거류 외인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8) 그리스인의 가족생활과 여성의 이미지
* 가족의 재산과 토지는 가장이 관리했고, 그가 죽은 후에는 장남이 물려 받았다.
13.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세계
1) 아르키다모스 전쟁
-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그리스 내전)이 터지다(기원전 431년- 기원전 404년, 약30년간)
* 기원전 431년 스파르타, 아테네 침략
* 기원전 430년 아테네 전염병 창궐
* 기원전 429년 페리클레스 사망
2) 미틸레네 사건과 멜로스 대학살
* 미틸레네의 주도하에 레스보스섬의 전체 도시들이 아테네와의 동맹을 파기
-> 아테네의 무력진압에 굴복
-> 민회에서 관용을 결정
* 멜로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중립
-> 아테네가 종속을 요구했으나 거절
-> 아테네의 공격으로 무조건 항복
-> 기원전 416년 아테네, 멜로스 대학살
3) 풍운아 알키비아데스
4) 기원전 404년 아테네의 무조건 항복-> 펠로폰네소스 전쟁 종결
* 기원전 411년 스파르타, 페르시아와 동맹을 맺음
- 델로스 동맹에서 탈퇴하려는 이오니아 도시들에 대한 페르시아의 종주권 인정
* 기원전 405년 스파르타, 흑해 입구인 펠레스폰스의 아이고스포타모이에서 대승
*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에 무조건 항복, 펠로폰네소스 전쟁 종결
-> 아테네에는 스파르타의 주둔군을 배경으로 ‘30인 참주’라 불리는 과두 정부가 들어섰다.
-> 이 과두 정부는 공포정치를 자행
* 기원전 403년 아테네에 민주정 부활
*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 불경죄로 기소 & 독배를 마심
5) 스파르타의 패권
6) 코린토스 전쟁과 ‘왕의 평화’
** 기원전 395-386 코린토스 전쟁
* 스파르타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아테네·코린토스·아르고스가 동맹(同盟)하여 페르시아의 지지를 받으며, BC 395년 스파르타에 반기를 들었다.
* 기원전 386년 코린토스 전쟁 종결
- 스파르타의 안달키다스가 페르시아와 안탈키다스의 화약을 맺음
- 소아시아와 키프로스는 페르시아에 귀속되고, 그리스 도시들은 자치독립을 허용
7) 테베의 패권
* 기원전 383년 스파르타, 테베 점령
-> 스파르타, 테베에 친스파르타 과두정권 수립
* 기원전 371년 테베, 레욱트라에서 스파르타 격파
-> 테베, 메세니아 분리 독립을 성공시킴
8) 아테네의 부흥
* 기원전 378년 제2차 아테네 해상 동맹 성립
* 기원전 357년 동맹시 전쟁(social war, 기원전 357-355) 발발
- The Social War, also known as the War of the Allies, was fought from 357 BC to 355 BC between Athens with the Second Athenian League and the allied city-states of Chios, Rhodes, Cos and Byzantion
-> 키오스, 로도스, 코스가 동맹에서 이탈해 독립
9) 이소크라테스와 데모스테네스
* 기원전 346년 이소크라테스, 전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의 지휘 하에 결집할 것을 제안
* 데모스테네스는 반 마케도니아의 입장에 섰다.
14. 마케도니아 왕국의 그리스 제패
- 마케도니아 왕국(기원전 808년~기원전 168년)
1)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 기원전 359년 필리포스 2세, 마케도니아의 왕 즉위 & 군제개혁 단행
2)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의 결전
*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
- 카이로네이아 전투(기원전 338년)는 보이오티아의 카이로네이아 근교에서 벌어진 전투로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아테나이-테바이 연합군을 상대로 싸워 압도적으로 승리한 전투이다.
-> 마케도니아를 맹주로 하는 범그리스 연맹 성립
3) 범그리스 연맹 결성
* 마케도니아, 범그리스 연맹 결성
* 기원전 337년 페르시아 원정
15. 마케도니아의 자연조건과 초기역사
1) 곡창, 삼림 및 광물자원
* 테르메만을 에워싼 비옥한 연안 평야 지역은 예로부터 마케도니아의 곡창지대이며, 내륙에 펼쳐진 산악들은 양질의 목재를 제공하는 삼림지였다.
2) 기후, 동물, 그리고 지형
* 연안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 내륙 지방은 대륙성 기후
3) 마케도니아에 관한 전설
* 마케도니아인과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리스족이 공통의 조상에서 나온 후예라고 함.
* 아르고스에서 이주해온 테메노스 가문의 3형제가 마케도니아에 정착했다고 함
-> 이들 테메네스 자손 중 하나가 마케도니아 최초의 왕 페르디카스 1세라고 함.
4) 수도 아이가이의 건설
* 기원전 7세기 중엽 페르디카스가 토착의 마케도니아 왕가 아르게아다이 씨족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고 왕국을 세움= 테메노스 왕조
* 수도는 아이가이(현재 베르기나)
5) 마케도니아의 초기 왕정
* 마케도니아 역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왕정이 최후까지 폐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6) 알렉산드로스 1세에서 아르켈라오스 1세까지
* 알렉산드로스 1세는 페르시아 왕의 사절을 살해함
* 페르디카스 2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에 복잡한 외교정책으로 자국의 세력 확대를 꾀했다.
* 기원전 5세기 말 아르켈라오스 1세는 개혁왕
- 전쟁 준비, 수도를 아이가이에서 펠라로 이전
16. 신도스의 무덤과 베르기나의 왕묘, 그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 베르기나는 고대의 수도 아이가이였다고 생각됨.
17. 알렉산드로스 대왕(알렉산드로스 3세)의 동방원정과 헬레니즘
1) 원정의 원인과 경과
*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 암살됨, 알렉산드로스 대왕 즉위
* 기원전 334년, 마케도니아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시작(기원전 334년- 기원전 323년, 11년간)
(1) 페르시아와의 세 번의 전투
a) 기원전 334년 그라니코스 전투 승리
b) 기원전 333년 이수스 전투 승리
* 이수스 전투 이후 기원전 333년 시리아 정복
-> 기원전 332년 페니키아 와 이집트 정복 & 알렉산드리아 건설
c)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 승리
-> 기원전 330년 아케메네스 왕조 멸망
(2) 327년까지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지방을 포함해 전 이란을 평정
-> 325년 인더스강 까지 평정
-> 323년 알렉산드로스 사망
2) 군량과 병참
3) 동방원정의 의미와 영향
(1) 기원전 322년~281년 디아도코이 전쟁
(2) 기원전 310년, 3개로 분할됨: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사망-> 제국의 분열
a) 안티고노스 왕국(마케도니아, 기원전306-기원전168)
-> 기원전 147년 로마의 속주가 된다.
b) 셀레우코스 왕국(시리아왕국, 이란- 소아시아, 기원전 312-기원전63)
-> 기원전 2세기말 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소왕국으로 전락
-> 로마에 멸망
-> 셀레우코스 왕국 동쪽으로 파르티아 왕조와 박트리아 왕조가 세워짐.
c)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이집트, 기원전305-기원전30)
-> 로마에 멸망
(3) 기원전 287년 아테네 봉기, 마케도니아 점령군으로부터 민주정 회복
4) 헬레니즘 세계의 탄생
: 헬레니즘 시대= 기원전 323년(알렉산드로스 사망)~기원전 30년(아우구스투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통일한 시점)
(1) 그리스어가 통용, 아테네의 표준화폐가 국제화폐로 유통
(2) 개인주의 경향
* 헬레니즘 철학은 인간이 겪는 고통과 악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다.
* 다양한 외래 종교의 유입
(3) 왕조 숭배
< 이야기 로마사 >
= BC 753-BC 509 왕정 로마-> BC 509-BC 27 공화정 로마-> BC 27-AD 476 제정 로마
1. 이탈리아와 로마는 어떠한 모습이었는가
* 기원전 2000년경 라티움 평야에 양을 사육하고 전사들을 양성하던 사람들이 정착
* 기원전 1000년경 이탈리아 철기 빌라노바 문화시대
- 에트루리아인,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 & 인도-유럽어족의 라틴인, 라티움 지역에 거주
* 기원전 1400년경 이탈리아 청동기 아펜닌 문화ㅣ시대
* 기원전 8세기경 이탈리아에 문명의 2대 중심지가 형성
- 남부에 그리스인, 중북부 투스카나에 에트루리아인에 의해 형성
1) 로마인의 삶의 터전은 이탈리아 반도였다
* 이탈리아 반도의 평야지역은 21.6%에 불과
2) 이탈리아에는 라틴어 이외에 수십 여개의 다른 언어들이 있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9D%BC%ED%8B%B4%EC%A1%B1#/media/파일:Iron_Age_Italy.svg
(1) 인도-유럽어계
* 라틴인- 라틴어
* 켈트인- 켈트어
* 삼니움인- 오스크어
(2) 그 외의 언어
* 북동부 지역 베네티인
* 중앙지역 움브리아인
* 아펜닌 산맥을 따라 분포되어 있던 사벨리인
* 남동부의 마사피인
* 북서부의 리구리아인
3) 로마인들의 조상도 원시인이었다
* 기원전 3000년 후반에 청동기 사용
* 기원전 2000년경 북부 이탈리아에 호상 주거형태의 촌락 출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등지의 이주민
* 기원전 13~10세기 아펜닌 산맥의 산등성이를 따라 반 유목민의 아펜닌 문화가 존재,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 미케네 문화가 발달
* 기원전 10세기 말 부터 철기시대 진입- 빌라노바 문화
* 기원전 7~8세기 페니키아인이 시칠리아와 사르디니아에 진출하여 도시 건설
4) 이탈리아 반도에 그리스인이 식민도시를 건설하다= 마그나 그라이키아
https://en.wikipedia.org/wiki/Ancient_Greece#/media/File:Griechischen_und_phönizischen_Kolonien.jpg
(1) 에트루리아, 칼키스- 이탈리아 반도 남부와 시칠리아에 식민시 건설
* 에트루리아인-> 쿠마이(Cumae)-> 네아폴리스(Neapolis)
* 칼키스(에트루리아 근처에 위치)-> 낙소스(Naxos), 메사나(Messana), 레기온(Rhegion)
(2) 도리아인- 시칠리아 남부 연안과 이탈리아 동남부에 식민시 건설
* 코린트-> 시라쿠사이(Syracusae)-> 카마리나(Camarina)
* 메가라(코린트 동쪽에 위치)-> 메가라 히블라이아(Megara Hyblaia, 시라쿠사이 북서쪽에 위치)-> 셀리누스(Selinus)
* 스파르타-> 타렌툼(Tarentum)
(3) 이오니아해 연안 아카이아계의 식민시
* 시바리스(Sybaris)-> 티레니아해 연안에 포세이도니아(Poseidonia, 나중에 파이스툼으로 개명)
* 크로톤(Croton)
* 메타폰툼(Metapontum)
(4) 포카이아인(이오니아 지방에 위치)
* 프랑스 남부 연안에 맛실리아 건설
* 코르시카섬 동부에 알라이에 건설했으나 카르타고인과 에트루리아인에 의해 포기
* 이탈리아 남부에 엘레아 점령
5) 로마의 모든 것은 에트루리아에서 모방하였다
* 기원전 8세기 에트루리아인이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
- 기원전 900년경~기원전 100년
* 12개 도시국가들이 ‘에트루리아 연합’을 결성- 종교적인 성격의 연합체
* 처음에는 왕정이었으나 기원전 6~5세기 동안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이 공화정으로 이행
* 기원전 8세기 지배권을 포강 평야, 라티움까지 확대
* 기원전 6세기 이후 이탈리아 북부 포강 유역에 진출
6) 로마와 라티움은 로마인의 원류였다
* 기원전 1000년경 로마인, 라티움 지역에 정착
2. 로마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 로마인의 역사는 전설로부터 시작되었다
2) 베르길리우스와 아이네아스
* 베르길리우스의 기록
-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네아스가 티베르강 하구에 도착
-> 이 지역의 지배자인 라티누스 왕의 딸 라비니아와 결혼하고 그곳에 최초의 도시를 건설
->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아이네아스를 계승하여 알바롱가를 통치한다
3) 로물루스와 레무스
* 아이네아스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아물리우스는 그의 형 누미토르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름
-> 누미토르의 딸이 낳은 아이가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음
-> 형의 딸을 강제로 여사제로 만듬
-> 전쟁의 신 마르스가 관계를 맺어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출산했으나 강에 버려짐
-> 늑대와 양치기에 의해 성장
-> 형제는 아물리우스를 축출하고 외할아버지(누미토르)를 다시 왕위에 복귀시킴
-> 형제는 그들이 버려지고 양육되었던 곳에 도시를 건설하기로 함
->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전쟁을 하고 로물루스가 승리
-> 로물루스가 왕으로 즉위하였고, 도시 이름은 로마라고 명명
4) 로마도 처음에는 왕들이 통치했다
** BC 753-BC 509 왕정 로마
* 기원전 753년 <아이아네스>에서 언급한 로마시가 창건된 해
* 기원전 600년경 로마 성립
* 기원전 509년경 최초의 집정관 타르퀴니우스 일파 공화제 창설
* 7명의 왕이 있었다.
- 처음 넷은 라틴족과 사비니족 출신이었고 마지막 셋은 에트루리아 출신이었다.
* 왕은 세습제가 아니었다.
5) 전설 속에도 실재성은 있다
6) 선사시대에 라티움 지역은 어떠하였는가
* 라티움 지역에 거주한 주민들은 트로이나 알프스 북부지역에서 남하해온 인도-유럽어족의 일파인 라틴인이다.
7) 로마는 에트루리아인의 지배 하에 있었다
* 기원전 6세기 내내 라티움은 에트루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 기원전 6세기 말엽 캄파니아의 그리스인들이 에트루리아인들을 정복했다
-> 로마인, 에트루리아 출신의 왕을 축출하고 공화정 체제를 확립시켰다.
3. 로마는 어떻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할 수 있었을까
= 효과적으로 잘 훈련된 군대+ 정복한 지역을 견고하게 조직화하고 통치
1) 정복의 도구인 로마군의 발전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 왕정시대에 로마군은 귀족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 기원전 5~4세기 무산자들을 제외한 모든 평민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서 군대에 입대할 수 있게 되었다.
2) 로마군은 시민들로 편성되었다
* 로마 시민들은 17세에서 46세까지 최소한 기병으로 10여 차례, 보병으로서는 20여 차례의 전투에 동원되었다.
3) 군단은 로마군의 기본단위였다
* 군단: 공화정 초기 2개-> 제2차 포에니 전쟁 기간에는 25개
* 갈리아 총독이었던 카이사르의 군대는 총 네 개의 군단으로 구성
* 하나의 군단은 평균적으로 약 3천~4천명 정도 였다.
4) 로마군의 진지구축과 전열배치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 로마군의 전투대형은 주로 3열 배치로 편성되었다.
5) 로마군의 군율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다
6) 카시우스 조약을 통해 라틴도시들과 로마가 하나 되다
https://en.wikipedia.org/wiki/Latin_League#/media/File:Ligue-latine-carte.png
* 라티움 동맹(기원전 7세기-기원전 338년)
- 라티움 동맹(이탈리아어: La Lega Latina, 기원전 7세기 무렵 - 기원전 338년)[1] 은 고대 로마 인근 라티움 지방에 있던 30여 마을과 부족들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이웃 지역에 대항해 서로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만든 연합체이다.
* 기원전 494년 평민과 귀족의 신분 투쟁 결과 호민관과 평민회 설립
* 기원전 493년에 로마인들과 라티움 동맹은 카시우스 조약(foedus Cassianum)을 맺어 상호 방위를 약속했다.
* 기원전 4세기 초엽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도시국가인 베이이와의 결전과 켈트인의 습격에 직면하자 라틴연합에 병력동원을 요청하였다.
-> 로마가 베이이를 점령하고 병합+ 그리스 식민시 투스쿨룸(Tusculum)을 병합
7) 카시우스 조약은 깨지고 로마와 라틴도시들은 전쟁을 했다
* 기원전 340년~338년 라티움 전쟁
- 라티움 전쟁(기원전 340년~338년)은 로마와 고대 이탈리아의 인접한 라티움 민족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라티움 동맹이 해체되고 라티움인에게 부분적인 권리와 다양한 수준의 시민권을 부여하여 라티움의 각 영토는 로마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8) 켈트인이 포강 유역으로 침입해오다
* 기원전 5세기 켈트인(갈리아인)이 포강 유역에 침입
-> 에트루리아의 도시국가를 정복하고 메디올라눔(Mediolanum, 현 밀라노), 보노니아(Bononia, 현 볼로냐)를 건설했다
-> 켈트인이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
9) 켈트인이 미래의 로마 제국에게 수치를 안겨주다
* 기원전 390년 켈트인, 에트루리아에 침입하고 로마 점령
10) 로마는 삼니움과 전쟁(기원전 343-290년, 53년간)을 시작하다
* 기원전 343-----1차 삼니움 전쟁-----341년/ 340년-라틴전쟁-338년
* 기원전 326-----2차 삼니움 전쟁-----304년
* 기원전 298--3차 삼니움 전쟁(295년 센티눔 전투)--290년 280년--피로스 전쟁--275년
* 기원전 264---------------포에니 전쟁(118년간)--------------146년
1) 사벨리인(Sabelli)- 아펜닌 산악지대에서 오스크어 또는 그것의 방언을 사용하는 민족
* 로마 북쪽- 사비니인(Sabini)
* 중앙지역- 마르시인(Marsi), 베스티니인(Vestini), 파엘리구니인(Paeligni), 마루키니인(Marruchini), 프렌타니인(Frentani)
* 라티움 동쪽- 볼스키인(Volsci), 아이퀴인(Aequi)
* 이탈리아 반도 남부- 루카니아인(Lucani)
* 캄파니아 지방의 오지와 산악지대- 삼니테스(Sammites)
2) 기원전 343년~290년 삼니움 전쟁
https://en.wikipedia.org/wiki/Samnite_Wars#/media/File:Roman_conquest_of_Italy.PNG
(1) 1차- 기원전 343-341년
* 기원전 354년 로마, 삼니테스와 우호조약 체결
* 기원전 343년 로마가 캄파니아의 도시국가 카푸아를 편입시키면서 1차 삼니움 전쟁 발발
* 기원전 341년 로마, 삼니움과 우호조약 체결
* 기원전 340년 라틴전쟁 발발(기원전 340-338)
* 기원전 338년 로마, 삼니테스와 연합해 라틴전쟁에서 승리-> 라틴 연합 해체
(2) 2차- 기원전 326-304년
* 기원전 327년 로마가 네아폴리스의 정치에 개입하여 네아폴리스를 종속시키려다가 삼니테스와 마찰
* 기원전 321년 로마, 카우디움 전투에서 굴욕당함
(3) 3차- 기원전 298-290년-> 로마 제3차 삼니움 전쟁으로 이탈리아 중부 정복
* 기원전 298년 삼니테스는 루카니아인에게 동맹을 제의했다가 거절 당하자 전쟁을 일으킴
-> 루카니아인(루카니아는 현 바실리카타)이 로마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전쟁 발발
-> 로마의 승리
* 로마가 센티눔 전투의 승리로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하다(3차 삼니움 전쟁 중 결정적인 전투)
= 기원전 295년 센티눔 전투
- 기원전 295년 로마가 센티눔(현 Sassoferrato)에서 여러 민족 연합군(삼니움인, 에트루리아인, 움브리아인, 세노세스족- 켈트)과 전투에서 승리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Sentinum
11) 피루스에 대한 승리, 로마의 이탈리아 반도 통일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B%A1%9C%EC%8A%A4_%EC%A0%84%EC%9F%81
** 기원전 280년~275년 피로스 전쟁
* 기원전 282년 그리스 식민시 투리이(Thurii)가 루카니아인의 위협을 받자 같은 그리스 식민시였던 타렌툼(Tarentum)에게 의지하지 않고 로마에게 구원을 요청
-> 로마세력 개입에 타렌툼이 에피루스 왕국의 피루스 왕에게 원군을 요청
-> 기원전 280년 로마, 헤라클레아 전투에서 피루스 군대에 대패
* 피루스 왕, 시칠리아 원정 감행
* 기원전 275년 로마가 베네벤툼 전투에서 승리-> 피루스왕은 귀국했고 타렌툼은 항복
-> 로마, 이탈리아 반도 통일
12) 정복지역들에 대한 로마의 통치술이 유감없이 발휘되다
(1) 로마령
= 로마 식민시(주민들이 로마 시민과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 자치도시(불안전한 시민권을 갖는다)
(2) 동맹시
* 로마 시민이 아니다.
4. 기원전 3세기의 로마
1) 기원전 3세기 로마 사회의 파트리키, 플레브스, 클리엔테스
* 파트리키- 겐스, 귀족집단
* 클리엔테스- 시민권은 없지만 노예가 아닌 신분이 불안정한 거주자, 피보호민
* 플레보스- 겐스의 성원도 아니고 클리엔테스처럼 피보호인도 아닌 사람들
2) 플레보스들은 정치적 평등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
* 성산 사건
- 기원전 494년과 기원전 449년에 로마의 평민이 귀족에 반항하여 로마 동북쪽에 있던, 성산(聖山)이라는 뜻의 몬스사케르(Mons Sacer)에 진을 치고 신시(新市) 건설을 선언한 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호민관(護民官) 제도가 정착되었다.
- 기원전 493년 호민관과 평민회 설립
* 기원전 3세기 중엽 파트리키와 플레브스는 지도계급인 귀족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3) 로마 정부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었을까
(1) 공직자들- 민회에서 선출, 임기는 대개 1년
* 공직자들- 재정관, 조영관, 법무관, 집정관, 감찰관
* 특수한 성격의 공직자- 호민관, 독재관
* 집정관-> 속주 총독, 법무관-> 지방장관도 가능
(2) 원로원
* 공직자의 자문기관이나 권한은 막강
* 최종적으로 공직자를 역임한 자로 구성
* 임기는 종신, 국정 전반에 대해 책임
(3) 민회
5. 기원전 3세기 로마인들의 생활과 종교
1) 가족과 도시국가에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는 순박한 사람들
(1) 로마인들의 일상생활
* 기원전 3세기까지 로마인은 농민으로서 생활해왔다.
(2) 가족생활
* 가부장 제도가 기본바탕
* 이혼 인정
* 노인은 로마에서 특별히 존경받았다.
2) 로마인들이 믿었던 종교들
1) 로마인들은 다소 미신적인 사람들이었다
* 로마의 신은 3만명
* 모든 것을 신에 의존
2) 로마인들도 가정에서 제사를 지냈다- 애니미즘적인 특성
* 가정의 출입문을 관장하는 야누스(Janus) 신
* 집 안에 있는 화로를 관장하는 베스타(Vesta) 신
* 베스타가 요리한 음식을 수호한 페나테스(Fenates)
* 조상의 영혼인 마네스(Manes), 가정의 신 라레스(Lares), 가부장의 수호신 겐니우스(Genius) 등
3) 도시국가에서 치러진 성대한 제사
* 제사는 도시국가의 주요 신들에 대해 시행되었다.
* 대부분의 신들은 에트루리아인들과 특히 그리스인들에게서 차용되었다.
6. 제국으로 가기 위한 로마의 전쟁
1) 카르타고와의 전쟁으로 제국의 첫발을 내딛다
(1) 카르타고의 성립
* 기원전 814년 튀로스(Tyros)에서 도래한 페니키아인들이 현재의 튀니지아에 하나의 항구를 건설하고 이것을 ‘새로운 도시’라고 명명하였다.
* 기원전 6세기 이후 고전기 최대의 무역도시로 급성장
* 기원전 3세기 서방에서 가장 번영한 무역도시가 되었다.
(2) 카르타고의 특징
* 해상권 장악- 군대는 용병(누미디아의 우수한 기병)으로 편성
* 처음에는 왕정이었으나 기원전 5세기경부터 원로원과 공직자가 통치
* 카르타고의 신들은 주로 페니키아의 신
2) 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241년)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1%EC%B0%A8_%ED%8F%AC%EC%97%90%EB%8B%88_%EC%A0%84%EC%9F%81
* 메시나는 라틴계 용병들인 마메르티니가 폭동을 일으켜 점유하고 있었다. 시라쿠사의 왕 히에론 왕이 메시나를 공격하자, 마메르니티는 카르타고와 로마에 도움 요청-> 로마와 카르타고의 충돌-> 로마의 승리
* 1차 포에니 전쟁 후 로마는 시칠리아, 코르시카, 사르데나를 얻음-> 로마는 최초로 해외 속주를 거느림(속주에서 공납을 받게된다)
3)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1년)
https://en.wikipedia.org/wiki/Second_Punic_War#/media/File:Hannibal_route_of_invasion-en.svg
* 기원전 218년 한니발이 에스파냐의 사군툼을 공격함으로써 시작-> 기원전 218년 트레비아강 전투(카르타고 승리)-> 기원전 217년 트라시메네 호수 전투(카르타고 승리)-> 기원전 216년 칸나에 전투(카르타고 승리)->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로마의 승리)
* 2차 포에니 전쟁 후 에스파냐를 속주로 편입
cf) BC 215-BC 148 마케도니아 전쟁
기원전 3~2세기 동안 지중해 지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고대 로마 제국과 마케도니아 왕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로마의 그리스 지배권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91052&cid=40942&categoryId=31787
4) 제3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149-146년): 카르타고의 패망
* 기원전 104년 로마는 북부 아프리카 전 지역을 지배
5) 동방정복으로 지중해 전역을 로마의 지배권 하에 두다
(1) 방어전쟁에서 정복전쟁으로
* 로마는 헬레니즘 왕국, 특히 마케도니아 왕국과 셀레우코스 왕국과 대립
(2) 로마가 거둔 여러 차례의 승리
* 기원전 189년 셀레우코스 왕국, 로마의 영토로 병합?
* 기원전 146년 마케도니아 왕국을 속주로 편입
* 기원전 120년 마르세이유, 로마의 속주로 편입
* 기원전 133년 페르가뭄(페르가몬) 왕국, 로마에 귀속
* 기원전 89-63년 미트리다테스 전쟁(로마 <-> 폰투스 왕국)-> 로마의 술라와 폼페이우스가 격퇴
* 기원전 63년 셀레우코스 왕국 병합
* 기원전 30년 이집트 병합
cf) 페르가몬 왕국
- 페르가몬 왕국 또는 아탈로스 왕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장군중 한명이였던 리시마코스의 사망 이후에 페르가몬을 지배했던 헬레니즘 왕조이다.
6)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서방으로의 팽창
1) 기원전 2세기경 스페인을 정복하다
* 기원전 133년 로마, 스페인 누만티아 전투에서 승리
-> 스페인에 두개의 속주를 설립
* 기원전 120년 프랑스 남부 지역을 속주로 삼고 나르보넨시스라고 명명하였다.
2)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기원전 58-51년)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0%88%EB%A6%AC%EC%95%84_%EC%A0%84%EC%9F%81
7.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1) 부유해진 로마인들
(1) 로마의 근간이었던 소농민들이 흔들리다
* 소농민의 몰락
(2) 지배계층들은 더욱 부강해졌다
* 원로원 의원들이 부강해졌다- 라티푼디움 형성
* 기사계급의 출현
(3) 로마에서 시민정신이 사라졌다
(4) 로마에서 노예의 역할은 다양했다
(5) 물질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로마는 타락해 갔다
* 사치풍조 만연
* 전통적인 신앙들이 쇠퇴하고 그리스와 오리엔트 기원의 새로운 신앙이 도입
8. 로마 공화정은 어떻게 사라졌는가
1) 그라쿠스 형제에서 폼페이우스까지(기원전 133-61년)
- 로마의 근간인 시민단의 재건을 위한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시도
(1) BC 133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개혁-> 실패
* 농지법 제안
- 페르가몬(Kingdom of Pergamon, 지금의 터키에 위치)의 영토를 평민에게 분배
- 토지 소유의 상한선을 정함.
(2) BC 123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개혁-> 실패
* 농지법을 완성, 시행 하려함
- 기사계층과 평민의 참여를 강화시키려 함
- 이탈리아 동맹시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려함
- 기원전 121년 학살 당함
* 기원전 111년 로마에서 농지법 성립. 공유지 소유면적 제한이 철폐되고 대토지 소유제 확대됨
2) 독재자로서 로마를 지배한 마리우스와 술라
(1) 기원전 107년 마리우스, 집정관에 선출됨
- 군사개혁(직업군인) 단행, 반도의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 부여
(2) 기원전 91-89년 동맹시 전쟁- 동맹시들이 반로마 전쟁을 일으킴
-> 전쟁 결과 이탈리아의 자유인 모두에게 시민권이 부여됨
(3) 기원전 88년 술라, 마리우스를 추방하고 집정관에 선출됨
* 기원전 83년 술라, 독재정치를 시행
3) 원로원의 보루였던 폼페이우스
* 기원전 71년 크라수스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진압
* 기원전 70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집정관에 선출됨
4) 카이사르와 로마 공화정의 종식
(1) BC 60-BC 53 1차 삼두정치-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의 삼두 정치
= 기원전 60년 카이사르는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비밀협약을 체결
* 기원전 58년 카이사르, 갈리아 원정 개시
* BC 53년 파트리아 정복에 나섰던 크라수스 사망하자 이집트를 세력 기반으로 하는 폼페이우스와 갈리아 원정을 끝낸 카이사르 사이에 내란 발생
-> 기원전 48년 카이사르, 파르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 군대 격퇴
* BC 49년 카이사르,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 & 폼페이우스 군대 격파
-> BC 45년 카이사르, 로마의 단독 지배자가 되고 개혁을 실시함
* BC 44년 카이사르 암살
(2) BC 43-BC 33 2차 삼두정치
= 카이사르 사후 옥타비아누스(카이사르의 양자), 안토니우스(카이사르의 부관이자 집정관), 레피두스를 중심으로 하는 2차 삼두정치가 성립
* 기원전 43년 2차 삼두정치 시작
* 기원전 42년 로마제국을 분할하여 안토니우스는 동방지역을, 옥타비아누스는 서방지역을, 레피두스는 아프리카지역을 지배했다.
* 레피두스를 타도하고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와 결혼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자식들에게 로마의 동방속주들을 분배해 주자 내란이 다시 발발
->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에 전쟁 발발
* BC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군의 승리
9. 기원후 1세기의 황제들
1) 로마 공화정을 제정으로 전환시키다
(1) 황제에 즉위한 옥타비아누스(재위 기원전 27-기원후 14년)
*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음. 원수정 체제의 창시
- 제국의 건설자로서 공화정체의 외관을 유지시키면서 권력을 단독으로 행사하여 군대, 재정, 속주행정 등을 체계화하였다.
* 기원후 9년 옥타비아누스, 게르마니아의 반란 진압 실패
(2) 정부와 행정기구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시녀였다
(3) 광대한 제국을 어떻게 방위할 것인가
* 군대- 로마시민은 군단에서 20년 동안 복무해야만 했으며, 비시민인 경우에 보병대로 25년 동안 복무하여야만 했다.
2) 1세기의 황제들
https://ko.wikipedia.org/wiki/%EB%A1%9C%EB%A7%88_%ED%99%A9%EC%A0%9C_%EB%AA%A9%EB%A1%9D
(1) 율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왕조의 황제들(기원전 27년-기원후 58년)
* 티베리우스(재위 14-37년)- 이우구스투스의 사업을 계승하여 완성시켰고, 속주의 번영을 증대시켜 국고를 충만하게 했다.
* 칼리굴라(재위 37-41년)- 잔인한 폭군
* 클라우디우스(재위 41-54년)
* 네로(재위 54-68년)- 잔인한 폭군
- 60년 바울, 로마에서 전도 활동
- 64년 로마에서 대화재 발생. 화재의 주범으로 크리스트교 박해
(2) 플라비우스 왕조의 황제들(기원후 69년-96년)
* 68-69년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 69-79년 베스파시아누스 즉위
- 플라비우스 왕조 시작
- 속주민이 입회한 원로원 재구성, 황제권 확립
* 79-81년 티투스
* 81-96년 도미티아누스
- 브리타니아와 다뉴브강 지역의 정복
- 유대인 반란 진압 및 예루살렘 파괴
10. 제정기의 로마와 속주의 관계
1) ‘로마의 평화’ 시대의 황제들
(1) 96년-192년 안토니우스 왕조의 형제들
- 5명의 황제가 양자계승으로 어려움 없이 제위를 계승
* 96-98년 네르바
- 96년 원로원 의원 네르바 즉위.
- 로마의 평화 시대 시작
* 98년-117년 트라야누스
- 다키아(Dacia)를 점령 등 정복, 병합 정책
- 대규모 공사 시행
* 117년-138년 하드리아누스
- 정복활동을 중단하고 광대한 제국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 동방지역 정복을 포기하고 국경선 강화
* 138년-161년 안토니누스
- 138년 귀족 가문 출신의 안토니누스 피우스 즉위
* 161년-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양자계승이라는 관습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아들인 콤모두스를 임명
- 오현제 시대 끝남
(2) 180년-235년 세베루스 왕조
* 177년-192년 콤모두스
- 180년 콤모두스 즉위. 잔인한 폭군으로 192년 암살당함.
* 193년 페르티낙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193년-211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군대의 지지로 황제에 즉위
* 211년-217년 카라칼라
- 212년에 제국의 전 주민에게 시민권을 인정
* 217년-235년 마크리누스, 엘라가발루스, 세베루스 알렉산더
- 231년 세베루스 알렉산드로 즉위. 황제의 전제 정치가 극에 달함
2) ‘로마의 평화’ 시대의 경제와 사회
(1) 경제생활
* 로마의 평화 시대의 경제는 여러가지 유리한 조건들로 인해 많은 이익을 얻어낼 수 있었다.
(2) 사회- Honestoes(부자들)와 Humiliores(시민계급)
* 부자들은 국가의 최고관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폐쇄적인 특권계급을 양성하지는 않았다.
* 서민계급의 경우는 매우 다양했다.
* 노예들의 처지는 개선되었고 해방되는 노예의 수는 증가했다.
3) ‘로마의 평화’와 함께[ 성장한 도시
(1) 도시화
* 라틴어와 크리스트교가 광범위하게 유포된 것도 도시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2) 도시의 모습
* 일반적으로 바둑판 무늬
(3) 제국의 상징으로써 로마 시의 위치
4) ‘로마의 평화’ 시대의 문화
*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하에서 황제와 찬란한 부자들과 마이케나스 등의 보호 덕택에 문학은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 로마의 축제일은 1년에 200일 이상
11. 로마 제국은 재건될 수 있을까
1) 예수와 그의 가르침
* 예수의 부활을 신봉하는 집단은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생겨났는데 예루살렘에서는 유대교적인 요소, 즉 유대인으로만 제한된 배타적인 집단이, 갈릴리에서는 비유대인에게도 개방된 헬레니즘화된 집단 등이 출현하였다. 후자의 집단은 크리스트교를 세계 종교로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cf)
* 기원전 37년-기원후 4년 헤로데 왕국- 로마 공화국의 종속국
* 기원후 4년-44년 헤로데 사두왕국- 헤로대 대왕 사망 후 헤로대의 아들과 누이에 의해 4개로 나뉘어 통치
https://ko.wikipedia.org/wiki/%ED%97%A4%EB%A1%9C%EB%8D%B0_%EC%82%AC%EB%91%90%EC%99%95%EA%B5%AD
2) 크리스트 교회
* 크리스트의 가르침은 우선 팔레스티나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리스-로마적인 동방의 대도시들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로 퍼져 나갔다.
* 도시 중심의 전도는 팔레스티나에서 소아시아, 그리스, 이집트 등지로 확대되어 갔다.
* 바울의 영향하에서 크리스트교는 점차 유대교로부터 독립했다.
* 50년대에 로마에 교회가 세워짐
* 2세기에 제국 전역에 파급
* 3세기에 교회회의에 집결하기 시작한 주교들의 상위에는 수도대주교와 총대주교(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 등이 출현하였다.
3) 크리스트교도의 박해란 무엇인가
* 초기 박해는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행되기도 했다.
4) 네로 황제의 박해
* 64년 네로, 로마의 대화재의 방화범으로 크리스트교도들을 처형
5) 크리스트교의 승리
*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크리스트교에 대한 대박해
*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기독교 공인(밀라노 칙령)
6) 후기 로마 제국
(1) 3세기의 위기= 군인황제 시대(235년-284년)
https://ko.wikipedia.org/wiki/%EA%B5%B0%EC%9D%B8_%ED%99%A9%EC%A0%9C_%EC%8B%9C%EB%8C%80
* 세베루스알렉산데르가 죽고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즉위한 때까지, 18명의 황제(공동통치자를 포함하면 26명)가 있었다. 이 중 천수를 누린 사람이 2명 뿐일 정도로 혼란한 시대였는데, 이 시대에 로마는 안으로는 대토지(大土地) 소유의 발전, 도시의 쇠퇴, 생산의 감퇴, 유통의 마비, 통화의 혼란 등이 있었으며, 밖으로는 동방의 페르시아와 북방의 게르만족의 침입에 시달렸다.
이 혼란과 위기의 시대를 수습한 것이 디오클레티아누스제(帝)의 도미나투스, 즉 전제군주제였다.
* 260년 갈리아 제국(260년-274년)과 270년 팔미라 제국(270년-273년)이 독립
- 258년? 갈리아, 독립적인 제국으로 발전
- 260년 발레리아누스 황제, 사산조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암살당함
- 270년 아우렐리아누스 즉위.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을 멸망시켜 로마의 질서 재건
(2) 로마 제국의 재정비
* 아울렐리아누스(재위 270-275년)- 갈리아제국과 팔미라 제국 멸망시키고 황제권 강화
*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284-305년)
- 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즉위
- 293년 사두정치 시작: 막시미아누스를 서방지역을 통치하는 아우구스투스로 임명
https://en.wikipedia.org/wiki/Tetrarchy#/media/File:Tetrarchy_map3.jpg
- 예비군 양성
- 301년 최고 가격령 선포, 토지대장 작성과 정기적인 재정시행으로 세금 징수 증대
- 303년 크리스트교 박해
- 305년 디오클레아니아누스, 막시미아누스 퇴위(두 명의 황제들은 4분령 통치제도의 견고성을 시험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3) 4세기의 황제들
* 콘스탄티누스(재위 306년-337년)
-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 인정
-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삼위일체설 인정
- 330년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노플이라 부름
* 율리아누스(재위 361-363년)- 크리스트교 박해
* 테오도시우스(재위 379년-395년)
- 신전을 폐쇄하고 이교도 박해. 크리스트교 제국 건설
- 사후 두명의 자식들은 로마 제국을 분리 시켰다.
*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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